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양자역학 단상 본문
오도미터를 보니, 지난해 주행거리가 1900km 이다. 안 그래도 차를 별로 안 쓰는데,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서 집콕하다 보니 더욱 거리가 적다. 6년 주행거리가 3만 km를 넘지 않는다. 사실, 가끔씩 가는 골프장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별로 차를 쓸 일이 없다. 와이프가 가끔 출퇴근길에 이용하다가, 건강을 위해서 걸어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차량은 그냥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코로나가 염려됨에도 계속 지하철을 이용한다. 사실, 코로나 자체가 크게 염려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주변에 끼칠 불편함이 우려될 뿐이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한 모습이 아닐까.. 애들도 충분히 컸고,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니 사실 지금 당장 사라진다고 해서 아쉬울 것은 별로 없다. 애들이 어렸을 때에는 애틋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애들도 그냥 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천천히 걷다 보면, 많은 생각들이 정리된다. 그리고, 다양한 생각들을 다시 떠 올린다. 오늘은 공원에서 벤치를 하려고 누워있다가 하늘에 둥실둥실 떠 있는 구름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무엇이 나를 우주의 한 변방에서 다시 우주를 바라보게 했을까..대부분의 우주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사실은 많은 일이 일어나겠지만, 인간의 기준에서는 ^^), 지구라는 이 작은 곳에서, 그것도 얇디 얇은 지각의 표면에서는 어떻게 이리도 많은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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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은 참 재미있는 물리학 분야이다. 다른 분야는 100여년 정도 연구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 가정에 대해서 큰 어려움이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이 한 몸이고,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다르다는, 이해가 어려운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우주의 어느 곳에서는 빛도 빠져나갈 수 없는, 우리와 완전히 인과적으로 단절된 블랙홀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얘기해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우주가 태초에 땅콩보다 작았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수긍한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본 가정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의 불씨가 남아 있다. EPR 논쟁이 그 불씨의 핵심 중 하나이다. EPR 논쟁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지만, 그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밴친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써 둔 글을 다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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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R 논쟁은 local realism에 관한 논쟁이다. 간단히 얘기하면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이 동시에 하나의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안드로메다성운의 하나의 particle의 측정 행위가 지구에 있는 다른 particle의 측정에 동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물리 현상은 locally 하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실 양자역학을 제외한 모든 물리법칙은 local realism에 관해서 논쟁할 필요조차 없었다. 세상 거의 모든 물리현상은 미분 방정식에 의해서 기술된다. 이 또한 local realism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다른 얘기를 한다. 양자 얽힘 현상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우주의 양 끝단에 존재하더라도 얽힌 상태의 두 양자의 관계는 유지가 되고, 한 지점의 결과는 측정 즉시, 다른 지점의 존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사실 이까지는 local에 대한 설명만을 한 것읻. Realism.. 실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양자역학은 재미있는 얘기를 한다. Einstein은 실재란 물체의 고유한 성질이고 그것은 관측 행위에 무관하게 이미 정해져있던 상태의 발현이라고 얘기한다. 상자안에 공이 있다. 측정하기 전에는 당연히 그 공의 색이 무엇인지 모른다. 관측하니 그 공의 색은 빨간색이었다. Einstein은 원래 그 공의 색은 빨강색.. 그 공의 고유한 성질이라고 얘기한다. 양자역학은…? 글쎄요.. 그 공은 관측전에는 실재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다양한 모습으로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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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양자역학을 학문으로 확립한 1등 공신이다. 1905년을 물리학자들은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그 해에 변방의 3류 물리학자, 특허청 하위 공직자였던 아인슈타인은, 하나 하나가 노벨상 감인, 4개의 논문을 동시에 발표한다. 그 하나하나의 물리학적인 의미 뿐 아니라, 철학적 의미가 어떠했을 지는, 물리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이란 무엇인가, 물질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4개의 화두를 동시에 우리에게 던졌다.
막스 플랑크는 본인이 양자역학을 얘기했음에도 기존 관념에 사로 잡혀서, 기존의 물리학계의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끝끝내 빛의 양자화, 세상의 양자화에 대한 관념을 거부하고, 그것은 수학적 기교였을 뿐이라고 부정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파동의 양자화를 얘기하고 드브로이의 논문을 지지하며 물질의 파동화를 세상에 알렸다. 물질의 양자화(원자)를 얘기하고 이를 통해서 고체 비열 문제를 해결하였다. 대부분은 양자 물리학을 연구하던 이들이, 조금의 질문이 생기면 아인슈타인에게 달려가서 조언을 구했다.
그러한 아인슈타인도 끝내 인정하지 않은 양자역학의 가정이 있다. 그것이 바로 local realism이다. 유령같은 원격작용, 두 지점이 우주의 양끝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양자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양자의 상태가 인과율을 위배하고 동시에 결정된다고 하는, 그 생각에는, 혁명적인 그의 사고도 동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실재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을 넘어서는 파동 함수를 제안함으로써 양자역학을 정밀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그는 파동함수가 실제 입자의 움직임이라고 해석하고 그 해석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보른은 파동함수가 확률파임을 얘기하고 많은 이들이 그에 수긍하였다. 확률파... 확률이 흘러가고, 확률이 위상을 가지기에 복소수로 표현되고, 그들이 서로 간섭하여 확률적 간섭파를 생성한다... 참으로 기괴한 얘기에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은 끝끝내 동의하지 않고, 연합전선을 폈다.
그 절정에 해당하는 것이 "EPR" 그리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논쟁이다. 1926~1940년 사이를 물리학자들이 흔히 암흑의 시대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 사이에 양자역학과 관련된 수많은 형이상학적인 논쟁으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고, 큰 생산적인 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역학을 둘러싼 철학적 논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확률파의 개념, 인과율을 벗어난 양자 얽힘, local realism, 물리학의 학문적 의미 등등등,, 양자역학은 여전히 존재론적인, 형이상학적인 논쟁의 불씨를 포함하고 있다. 그만큼 양자역학은 기괴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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