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구조주의

existence_of_nothing 2021. 3. 20. 10:48

 

구조주의는 철학 사조 중 비교적 최근에 얘기된 사조이다. 물론, 얼마전까지 많은 이들이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많이 얘기하였지만 이제 다시 시들시들해 지고, 그 이후의 철학, 현재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체가 뚜렷하지 않다. 싸이버와 혼란스러운 미디어들의 폭증이 사실 현 시점의 문화적 대세인 듯 하다. 이미, 인문학 자체가 큰 위기 상황이고 특히 철학같은 순수 인문학은 요즘은 입지가 극히 좁아 보인다. 

 

소쉬르(페르디낭 드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구조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과학적담론이 우세하던 시기에 탄생하였다. 이전까지의 언어학자들은 주로 방언이나 언어의 지역적/시간적 변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었으며 보편적 언어구조에 대한 관심은 드물었다. 소쉬르는 언어의 저변에 존재하는 구조에 대한 연구("랑그")를 테마로 하며  "사회생활 내에서 기호의 삶을 연구하는 과학이 기호학" 이라고 주장한다.

 

시니피앙(기표)은 말/문자 혹은 표현된 기호이며 시니피에는 기호가 상징하는 혹은 기호에 연결되어야 하는 의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왜 "산(시니피에)"은 "산(시니피앙)"이어야만 하는가?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것을 기표의 자의성이라고 소쉬르는 설명한다. "산"은 변별적 차이인 "들"을 만나기 전에는 산이어야할 어떤 이유도 없다. 그러나 "들"을 만나면 "산"은 "산"이 된다. 즉, 기표의 차이로 인해서 그 의미가 부여된다. "산" 이 단독으로 존재할 때 산이어야 할 어떠한 본질적 이유도 없다.  "언어에는 결국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소쉬르는 말한다. 이 개념은 언어 이외에 가치체계 전반에도 적용되어, 본질주의를 거부하고 구조 혹은 변별적 차이가 본질을 결정한다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우리가 "개"라고 했을 때, 그 "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색즉시공을 연상시킨다.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자들은 역사에 따른 언어의 변화와 지역에 따른 방언구조의 차이와 유래를 주로 연구하였다. 즉, 시간과 지역에 따른 언어의 차이를 주로연구하였다. 이것을 통시태(Diachronic) 혹은 통시적 연구라고 한다. 소쉬르는 시간을 고정하고 그 시점에서 언어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한다. 이것을 공시성(Synchronic) 혹은 공시적 연구라고 부른다. 어려운 얘기로는 시공간을 무화시켜서 언어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한다고 한다.

 

언어를 만드는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랑그"라고 부르며, 사람들이 언어적인 형태 혹은 음성적인 형태로 말을 하는 행위를 "파롤"이라고 부른다. 파롤은 개인마다 다르며, 어떤 경우에는 분석이 불가능한 의미가 없는 발화도 가능하기에 소쉬르의 연구는 "랑그"의 분석에 집중된다. 이런 점에서 소쉬르는 그 당시 유행하던 과학적 연구 방법을 모사하고 있다. 즉, 문제를 분석가능한 단위로 쪼개고 단순화한다.

 

 

소쉬르는 사실 박사 학위 논문 외에 저서와 기타 공식적인 문서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일반 언어학 강의"도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사후에 정리한 것이며 소쉬르가 직접 주장한 것인지도 모호하며 아마 살아있었더라면 발표를 금했을 것이다. 따라서 소쉬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책이 아니라 그가 평소에 남긴 여러 기록들을 조각조각 모음으로 분석한다. 

 

소쉬르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다니다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거의 주장을 남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조주의라는 용어조차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일반 언어학"은 현재는 언어학적인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노엄 춈스키의 "변형생성문법"조차도 사실 정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언어학 자체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구조주의에서 소쉬르를 원조로 삼는 많은 근거들은 사실 그의 연구 결과 자체가 아니라 방법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소쉬르의 방법론, 즉, 언어를 표상이 아니라 언어가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측면에서 연구한 그 방법론은 그의 사후로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 바타이유, 보드리야르, 부르디외, 데리다, 푸코, 이리가레, 크리세트라, 라캉, 퐁티 등 아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의 의도와 다르게 그를 "구조주의"의 원조로 만들었다. 그 일등공신은 소쉬르의 방법론을 인류학에 적용하여 "구조인류학"을 만든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 에 있을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본인은 스스로 자신이 구조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에 반대했지만,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지역, 시간대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인류학적 특성이 있으며,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 관계 구조에 의해서 생성된 개인적/집단적 무의식에 기인한다고 얘기한다.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 구조를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과 결합하여 인간 주체 구조가 언어적 구조이며, 따라서 언어에 의해서 배제되는 소외가 욕망의 원인임을 지적한다.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1955>

 

구조주의는 1950년대 실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철학이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를 무, 타블로 로사(tabula rosa)로 묘사하고 적극적인 자유로 실존의 의미를 부여하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인간들이 실제로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인지는 의문일 수 밖에 없다. 1950~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구조주의가 시작되지만 실제 그 시작은 1900년 초, 소쉬르의 언어 구조주의, 마르크스의 경제/사회 구조주의,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에서 출발한다. 구조주의는 실존주의가 말하는 그러한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언어적 구조에 의해서 주체가 형성/억압되며 때로는 무의식이 주체의 본질임을 얘기한다.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무의식이 언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고, 언어에 의해서 포섭되지 못하는 그 무엇 때문에 결여가 발생하며, 욕망이 주체의 빈자리, 결여라고 얘기한다. 인간들은 결여를 메우기 위하여 끝없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지만 주체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1990)는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호명 (interpellation)이라고 얘기한다. 그냥 이름없는 한송이 꽃이 누군가 장미라고 이름 불러주면 그것은 장미가 된다.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사회 구석구석에 편재하는 권력 구조에 의해서 주체가 억업받는 "권력의 계보학"을 얘기한다. 여기서의 권력은 실질적으로 타인의 생사 여탈권을 쥔 무시무시한 권력뿐 아니라, 타인에게 주는 미세한 영향력까지, 예를 들면 지식의 권력화까지 얘기한다.

 

이러한 구조주의도 60년대를 기점으로 기점으로 힘을 잃고 60년대 후반부터 후기 구조주의 혹은 탈구조주의에 밀려난다. 라캉, 푸코, 알튀세르, 바를로등이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고  더불어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문제, 즉, "본질"의 빈자리에 "구조"가 권력으로 자리 매김함으로 인해서 개별 주체의 역할이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다시 "차이"의 주체가 자리잡음으로써 후기 구조주의가 등장한다.

 

구조주의와 마찬가지로 탈구조주의자로 불리는 많은 이론가들이 그 명칭을 거부하지만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주디스 버틀러, 자크 라캉, 장 보드리야르, 쥘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등이 탈구조주의자로 분류된다. 푸코와 라캉은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경계에 위치한 철학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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