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지막 날...
코로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은퇴 후의 생활을 simulation 해 보고 있다. 사무실과 집, 그리고 가족 외 많은 인간 관계가 단절되었다. 톡으로 연락을 하긴 하지말 말이다. 최근에는 속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고구마 3개, 요구르트 2개, 청국장 가루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법륜스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그 스님이 종종 고구마로 한끼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본다. 요즘의 내가 바로 그런 모습니다.
요즘, 방학 중이다. 사실 방학이라기 보다는 휴학에 가까울 것이다. 거의 모든 과학 밴드에 관심있는 글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요즘 주로 읽는 글들은 Horizon이라는 전문가들이 기고하는 글들이다. 그 글들은 어느정도의 background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고 그 분야의 내용을 조금 이해한다면 훌륭한 좋은 글들이 많다. 요즘은 박권 교수의 양자 역학 마지막 글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 마지막 날에 독백처럼 써 둔 글을 올려본다. 수식이 하나도 없으니 큰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
=========================
2020년의 마지막 날이다. 한해의 마지막 날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1월 1일을 그냥 한해의 시작으로 잡았기 때문에 어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오늘이 한해의 마지막 날이 된 것이고, 오늘 한해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이다.
우주는 거시적으로 볼 때 강한 인과율에 따라 움직임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어제까지 태양이 서쪽에서 떴다고 해서, 오늘 태양이 동쪽에서 뜨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내 얘기가 아니라 데이비드 흄의 얘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서쪽에서 태양이 뜨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고, 이제까지 우주는 그 믿음을 져 버리지 않았다. 우주의 저변에 수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시적으로 본 세상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큰 의미가 없다. 존재들은 운동이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운동을 할 뿐이고, 그것이 상대성이론을 위배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움직임들이 합해진 거시적인 운동, average된 운동은 우리에게, 우주가 강한 인과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파인만의 경로적분법은 양자역학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이 스핀네트워크의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loop quantum gravity는 얘기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나의 작은 움직임에 따라 수억 광년 떨어진 존재의 현재 시간은 수백년을 출렁인다. 내가 그 행성을 향해서 자전거를 몰다가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그 짧은 동작에 의해서 반대편 행성은 수백년의 시간이 뒤바뀐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존재들은 4차원 시공간에 이미 존재하고, 그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편 단편 잘라서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를 4차원 시공간에서 연결하여 인식하면 나는 내가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과의 network일 것이다. 현재 나의 몸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의 몸으로 재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타인과 나, 타 생물과 나, 생명과 무생명들은 모두가 4차원 시공간의 연결된 존재일 뿐이다. 그것을 3차원의 한 단면 단면으로 보고 나의 경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아의 개념이 탄생한다.
Ex nihilo nihil fit (nothing comes from nothing)…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오래 전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간단한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의미의 무게감은 엄청나다. 우주는 이미 주어져 있을 수도 있고, 지금 이 순간, 매 순간 재 창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인간들은 사실 알기 어렵다. 빅뱅 신화는 시간과 공간이 창조된 어떤 특정한 시점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신화라고 생각한다. 그 신화에는 어떠한 믿음이 기초하고 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그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누군가는 우주에 숨겨진 차원이 있다고 얘기하고, 어떤 이들은 그것은 망상일 뿐… 그러한 불확실한 이데아의 세상에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것은 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강하게 비난한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제로 파편화되고 분절화된다는 사실, 그들은 때로는 빠르게, 느리게 흐르기도 하고, 창조와 소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기이하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레알인가, 아니면 페이크인가. 페이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은 사실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입자가 3차원 공간에서 시간에 따른 운동을 하면 선이 된다. 즉, 0차원 점입자의 궤적은 선이다. 그 궤적이 어떤 모양일지는 운동방정식을 풀면되고, 만약 외부에서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휘어진 공간에서의 직선운동 geodesic equation에 의해서 기술된다. 1차원 끈이 3차원 공간에서 시간에 따라 이동을 하면 2차원의 면을 형성하고, 이것을 world sheet라고 부른다.
물리학자들은 대칭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몇번이나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그러한 대칭성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world sheet motion에서 Lorentz 불변 혹은 공변이 되기 위한 조건때문에, 우리의 우주는 갑자기 26차원 혹은 10차원으로 불어났고, 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하여 물리학자들은 Calabi-Yau라는 좁은 공간에 예쁘게 쑤셔넣었다. 그 공간은 인간들이 절대로 볼수 없는 영역이기에 어떤 얘기를 해도 상관이 없다.
현대 물리학은 Dirac 같은 소수 천재들이 물리학을 강한 수학적 도구로 설명하면서 부터 점점 이데아의 영역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Dirac은 전자를 하나의 입자의 움직임으로 묘사하지 않고, 스피너 공간의 행렬 구조로 전자를 묘사하였다. 상대론적인 슈뢰딩거 방정식에서는 반드시 음의 에너지가 등장하였고, 따라서 반입자의 기술이 필요해졌다.
입자들은 과거에서 미래로 운동을 하지만, 음의 에너지를 가진 반입자들은 파인만에 의해서 양의 에너지를 가졌지만 미래에서 과거로 이동하는 입자로 묘사되었다. 미래로 진행하던 입자는 미래에서 온 입자와 만나서 사라지고 에너지만 남는다.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면 미래로 진행하던 입자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과거로 이동하고 현재에 에너지를 남긴다. 즉, 원래 있던 것이 우리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것일 뿐..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해석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더이상 고체/액체/기체의 3상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칭이 어떤 모양으로 파괴되느냐, 어떤 대칭이 파괴되냐에 따라 물질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보는 다양한 모습들은 모두가 특정한 대칭 파괴 현상을 보여준다. 힉스장의 대칭파괴와 그로인한 게이지 장과의 결합에 의해서 boson 과 fermion 입자들이 질량을 가지게 되었다.
생명은 죽음과 삶의 대칭성에서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대칭 파괴 현상이다. 또한 생명을 이루는 분자들의 구조는 극단적인 chirality를 보여준다. DNA 나선 방향, 단백질의 접히는 방향등 수많은 현상들에서 대칭 파괴가 나타나고 그 결과 생명활동이 유지된다. 인간들은 대칭성을 파괴하고 자신과 타인을 비대칭적으로 파악한다. 그러한 비대칭 현상에 의해서 의식이 생기고 지금 이 순간도 많은 대칭 파괴된 자아들이, 행복하기에도 모자란 순간에도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뉴런 세포 하나 하나들에게 자아의 개념은 없다. 그들은 단지 주변으로 부터 전달받은 신호들의 인과 관계에 따라 자신의 뉴럴 신호를 발화할 뿐이다. 뇌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스파크들이 여기저기서 번쩍인다. 많은 인접한 세포들이 공통으로 발화하고 동조된 신호들은, 뉴런 세포들간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고 그 살아남은 하나의 짧은 생각을 만든다. 권력을 잡은 세포들은 그들의 신호 그룹을 만들고 그러한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어 자아라는 환상, emergent phenomonen을 만든다.
이제 한해도 사라져 간다. 올해는 많은 집착을 버리려고 했으나, 도리어 새로운 집착이 생겨 버렸다. 다가오는 해에는 조금 더 가지기 보다는 조금 더 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oo6JyjVD70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