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철학자들이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미학, 논리학등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중 많은 부분은 사실 상당히 주관적인 내용이 많고, 그 철학자가 가정하는 기본적인 가정에 기인하는 바가 많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려면 먼저, 철학자들의 용어사용을 이해해야 하고, 그 철학자가 사용한 언어의 맥락적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기에 좌파헤겔, 우파 헤겔처럼 극단적으로 한 철학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철학은 이렇게 모호해야 하고 이렇게 다중의 의미를 띄어야 하는 것일까요?
논리 실증주의가 등장합니다. 철학자들의 많은 얘기들, 특히 형이상학적인 많은 언사들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은 애초에 검증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데아.. 이데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데아를 가정하고 철학적 논지를 전개합니다. 그러한 수많은 말들,, 이데아를 전제한 수많은 얘기들은 의미가 있을까요?
의미란 무엇일까요... 진위 판정의 여부로 의미를 사용한다면, 그러한 수많은 말들의 향연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진위 판정은 그러한 가정을 믿느냐 아니냐에 근거하고, 그 외 아주 많은 주관적 부분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나의 행복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의미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겠죠? 어떠한 의미가 더 중요할까요? 그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을 지 모릅니다.
프레게의 철학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 우리가 말하는 수많은 말들이 과연 의미가 있는 말인지 아닌 말인지 부터 시작합니다. 그 기준은 진위 판정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로 정합니다. 즉, 문장으로부터 참과 거짓을 논리적 혹은 경험적(?)으로 밝힐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그 이후로, 러셀/비트겐 슈타인으로 연결됩니다.
프레게는 철학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 논리학과 수학의 통합을 시도합니다. 전통적으로 논리학과 수학은 다른 학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A는 B이다. B는 C이다.. 따라서 A는 C이다.. 논리학이지만, 수학으로는 A is in set B, B in set C, so A is in set C... 라는 형식적인 구조를 따르니, 사실 그 둘은 같다고 주장할 근거는 충분합니다. 그래서, 프레게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모든 문장을 수학적 기호로 옮깁니다.
하나의 예를 볼까요?
∃R[∀x(Fx→∃1y(Rxy ∧ Gy) ∧ →∀y(Gy→∃1x(Ryx ∧ Fx))]
어려워 보이죠.. 그러나 차근차근 보면 쉽습니다. 모든 F의 x에 대해서 유일하게 대응되는 G의 y가 있다... 즉, F와 G집합은 1대1 대응관계이다를 기호로 표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논리적 문장 하나하나를 기호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 이 작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죠 ^^. 일단 수(number)란 무엇인가에서 부터 막힙니다. 프레게는 데이비드 흄의 원리에 따라 F란 집합의 수란 'F라는 집합의 수는 F와 1대1 대응 관계인 개념의 외연(the extension of the concept equinumerous with F")' 라고 정의합니다. 즉, 수란 수에 대응하는 어떤 개념에 1대1인 관계에 있는 개념... 예를 들어 개가 한마리 있다면 {한마리 개},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면 {한마리 고양이} 요렇게 말이죠.. 이상하고 복잡한 정의긴 하지만 말은 되죠.. 그 다음에는 이를 기반으로 자연수를 정의하고 .. blablabla...
그러나, 이 부분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철학 러셀이 지적합니다. 유명한 러셀의 역설을 통해서요. extension이란, "개념을 만족하는 대상들을 하나로 묶은 하나의 전체이며 집합이다" 라고 정의하기에, 개념에 해당하는 집합이 존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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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역설이 있습니다. 그 명제는 이렇게 시작하죠.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
말이 좀 어렵죠?
그 집합에 속하는 원소는 집합인데, 그 자신은 그 자신의 원소가 아닙니다.즉
1. A={X | X is not in X} 입니다.
이제 질문은 그러면 A는 그 집합의 원소인가입니다.
1. 만약 그 집합의 원소라면, 그러면 자신이 자신의 집합에 속하지 않아야 하기에
가정인 그 집합의 원소라는 가정에 위배됩니다.
2. 만약 그 집합의 원소가 아니라면, A는 그러한 집합도 포함해야 하기에
즉, A는 A를 포함해야 하기에 가정 그 집합(A)의 원소가 아니라는 가정에 위배됩니다.
철학사/논리학사에 나오는 유명한 역설입니다. 개념은 있지만, 그 개념에 해당하는 집합이 존재하지 않고. 이 얘기를 들은 프레게는 멘붕... 논리 실증 주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러셀은 프레게의 논리 형식주의를 존중하고, 이를 계속 보완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 결고가 화이트헤더와의 공저인 "수학의 원리"로 출간됩니다.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는지(10년동안 매일 14시간씩 작업 ^^), 원래 하려고 했던 기하학과의 통합도 중도에 포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이전부터 많이 내려져오던 역설 중의 하나이죠.
이것은 사실 간단하게 얘기하면 다음 역설과 같죠.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1. 이명제가 참이라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야 하므로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도 거짓, 즉, 이 명제는 거짓이 됩니다.
2. 이 명제가 거짓이라면 나는 참말을 하고 있으므로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참인 명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말장난 같은 역설들은 역사에 반복해서 자주 나타납니다. 크레타섬 역설, 거짓말장이 역설, 러셀의 이발사 역설 등등등....
괴델이라는 유명한 수학자이면서 철학자가 "불완전성 정리" 라는 재미있는 논문을 냅니다 (어떤 수학자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자아 도취하고 다니는데 ^^). 그 전까지 수학자들은 수학이 완벽하며 가정을 잘 세우면 수학적으로 증명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가 주장하고 다녔죠. 그런데, 괴델은 어떤 수학적 공리체계도 그 체계안에서 증명을 못하는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현란한 수학적 기교로 증명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그 증명을 따라가시려면 아마 흰머리가 다발로 생길겁니다. 그런데, 증명의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증명못하는 명제는 있다"는 명제를 생각하죠. 수학이 완벽하다면 그 명제를 증명해야겠죠? 그러면 증명 못하는 명제는 있게 되니, 수학은 불완전하죠.. 만약 그 명제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 그러면 수학은 불완전하죠.. 어찌됬던 수학은 불완전하다..
모든 공리 체계는 그 체계안에서는 증명하지 못하는 명제가 적어도 하나, 실제로는 아주 많이 존재하죠. 그것은 그 공리 체계의 바깥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즉, 새로운 추상체계를 만들어야 하죠.
x^2+1=0, 이것은 실수의 공리 체계에서 답이 없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수의 체계를 만들어야 하죠. .그것이 복소수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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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에 관한 2권의 책을 소개한다. 하나는 요시나가 요시마사가 쓴 "괴델 불완전성 정리"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 레베카 골드스타인이 쓴 "불완전성"이다. 앞선 책은 수학적인 내용이 많이 기술되어 조금 더 어렵지만, 불완전성 원리를 좀 더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뒤의 책은 괴델이 활동한 시대 상황과 괴델의 전기에 가까운 책이다.
많은 물리학/수학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괴델도 24살의 젊은 나이에 불완전성 정리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아인슈타인과 많은 지적인 교류를 한다. 천재들의 특성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아인슈타인과 폰노이만 정도만 그를 이해해 주었다고나 할까... 고독과 정서적인 불안정은 그를 극단적인 피해망상으로 몰고 결국 타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식음을 전폐하고 아사하는 슬픈 운명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