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주역독해

existence_of_nothing 2021. 3. 31. 14:34

 

추석에 고향에서 시간이 좀 남아서 주역에 관한 나의 거부감을 체크하기 위하여 ebook을 몇권 구매하여 읽고, 유튜브 동영상을 여러번 시청하였다. 기본적으로 점서인 주역, 단 6개의 작대기와 그에 관련된 점사에 수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공자의 능력이 가히 가공할만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주역의 문자적 의미는 2개의 작대기의 나열 가능한 모든 수에 불과하다. 2개의 작대기는 1과 0을 표시할 수 있고, 그러한 조합이 6개 있기에 2자리의 8진수 혹은 6자리의 이진수이다. 나열 가능한 모든 수는 000000 부터 111111까지의 64종류이다. 

 

64개의 점괘가 가능하고 64개의 의미 붙임이 가능하다. 공자는 1과 0에 각각 양과 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11 10 01 00 에 태양, 소양, 소음, 태음이라는 4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111 011 010 001 110 101 100 000 에 각각 천택화뢰풍수산지(하늘, 연못, 불, 번개, 바람, 물, 산, 땅)의 8개의 사물의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에 사물이 8개 밖에 없겠는가.. 그리고 저 8개 조차도 세상을 대표하는 의미가 있을까? 물리학자가 의미를 붙인다면 최외곽 전자수에 따른 분류, 1가족부터 8가족까지를 부여했을 것이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말이다. 

 

인터넷에서 주역을 치면 산더미같은 글과 동영상 그리고 세칭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희안하게도 그 많은 이들이 얘기하는 주역은 세세한 차이만 아니라, 그 기본 가정부터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 크게는 주역을 점서의 기본에서 철학적인 의미를 붙인 것이냐, 아니면 철학적인 진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을 기록한 것이냐라는 플라톤적인 논쟁으로 귀착된다. 태극->음양->사상->팔괘 혹은 음양 오행의 조화를 우주의 근본 원리로 보는 것은 "의지", "절대정신", "모나드".. 등과 다를 바는 없다. 형이상학의 기본 형태일 뿐이다. 과학적 설명도 그 근본에는 그러한 믿음이 존재하리라. 현대 물리학의 설명은 사실 주역의 설명보다 더 기괴하기도 하다.

 

강병국의 "주역독해", 탁양연의 "주역철학", 김승호의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 그리고 윤홍식 선생과 김창식 선생의 동영상을 시청하였다. 그리고 문용직의 "주역의 발견"이라는 책도 일부분 읽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모두 각자의 얘기를 하고 있다. 철학과 인문학, 소위 문사철은 거시 담론을 전개한다. 거시 담론은 수만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그 중 정답은 없다. 어떻게 주장하던 모두 자신만의 답일 것이다. 과학적 담론은 진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인문학적 담론은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담론의 섬세함에 있을 것이다.

 

주역은 은나라의 점자 기록에서 시작한다. 주역은 점서로서의 기록인 경과 이것을 공자가 해석한 전으로 구성되며, 그 대부분의 일이 주나라때 이루어졌기에 주역이라고 부른다. 공자가 철학적 의미를 붙이기 전의 "역경"은 아래 그림과 같이 단순한 구조로 요약된다. 

 

먼저 이진 수 하나를 아래 (공돌이들은 LSB라고 부른다)부터 MSB 까지 쌓아올리면 아래 그림과 같은 작대기 기호가 생긴다. 이것을 괘라고 부른다. 이 6개는 아래 3개와 위의 3개로 구분 가능하고 그 각각을 소성괘(상괘/하괘)라고 하고 전체를 대성괘라고 부른다. 즉, 대성괘는 8진수 2개(소성괘)로 이루어진 64진수 1개이다. 그 각 자리를 효라고 하고, 가장 아래쪽부터 위쪽으로 1~6효라고 한다. 

 

소성괘에는 각각 앞서 설명한 사물(천지...)들이 부여되어 있고, 대성괘에는 괘의 이름, 괘명이 부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은  풍(바람)괘와 수(물)괘로 구성되고 이름이 환인 "풍수환"괘이다. 그리고, 그 괘의 의미를 설명하는 "괘사"가 있고, 각 효에 딸린 "효사"가 존재한다. 아래 그림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한다. 만약, 이것을 단순 점서로 해석한다면 8괘는 점의 결과이고, 6개의 효사는 6개의 발생가능한 미래일 것이지만 대부분의 주역 해석에서는 아래에서 부터 위로의 시간적 순서로 효사를 해석한다.

 

 

동전을 가지고 주역 점을 볼 수 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3개의 동전을 준비한다. 

2. 동전의 앞면에 3, 뒷면에 2라는 숫자의 의미를 부여한다. 3은 양이고 2는 음이다. (왜? 그냥 입닥하고 계속 진행하라... 사실 대학생때 우주의 신비가 담겨있다는 말을 듣고, 3일 정도 주역책을 읽다가 더이상 못읽고 집어 던진적이 있다. 왜 3은 양이고 2는 음인가.. 왜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인가... 의미를 붙이자면 수만가지 의미가 생기겠지만, 과학적으로는 그 2개는 서로 독립적인 사건일 뿐이다. 즉, 방편일 뿐이다. 왜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인가.. 방편일 뿐이다.)  

3. 이제 동전 3개를 던져서 숫자의 합을 구하면 6,7,8,9가 나온다. 짝수는 음의 기운, 홀수는 양의 기운을 뜻하고, 9가 가장 양의 기운이 강하고 7은 약하다. 그러나 주역 점을 위해서는 6/8은 -- 기호로 7/9는 - 기호로만 표시하면 된다.

4. 이제 이러한 실험을 6번 수행한다. 그러면 위의 그림과 같은 6효가 완성된 것이다. 이제 괘사와 효사를 table lookup 방식으로 읽어서 해석하면 된다.

 

자연 과학적으로 보면 사실, 이 64개의 패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완전 non-sense이다. 64개의 패턴에 6개의 점사를 붙여서 전체 384개의 이야기, 점의 결과를 기록해 둔것이 역경이다. 그러나, 뇌는 작화,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이기에 인간들은 이 단순한 패턴에 놀라운 의미를 부여한다. 일견,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능한 모든 이진수의 나열... 그 놀라운 의미.. 무의미해 보이는 의미 부여에, 상상력에 감탄할 뿐이다.

 

공자가 나이 48에 불쏘시개로 쓸려고 땔감으로 죽편을 구입했다고, "허걱.. 신비하도다"하고 다시 꺼내서 밤낮으로 연구하고, 그것으로 안되어 14년의 주유를 하면서 "지천명"을 외치게 한 책이 주역이라고 한다. 공자에게 있어서 주역은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주역과 상관 없이 이미 있었다. 인의 예지신을 그냥 의무론으로 얘기하면 누가 그것을 따르겠는가? 인의예지신이 필연적인 법칙이 되기 위한 스토리가 필요하고, 그 순간 주역이라는 선물이 등장한 것이다. 

 

강병국의 "주역독해"는 초반에 주역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2장부터는 64괘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소개한다. 사실 2장부터는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먼저 괘를 이루는 효를 아래에서 부터 위로 시간적으로 변화를 설명하고, 전체적인 괘를 설명한다. 주역의 많은 부분은 "... 하면 ... 할것이다"형태이다. 즉, 필연적인 운명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괘에 있다면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형태로 되어 있고, 대부분은 사실 중도.. 너무 과하지도 말고 너무 소극적이지도 말라.. 의 교훈이다. 

 

사실, 주역과 유학에 관한 나의 뿌리 깊은 불신과 거부는 이미 예측되어 있었다. 내가 아직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주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