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구조주의, 알튀세르

existence_of_nothing 2021. 4. 13. 08:59

 

알튀세르 (1918~1990)

 

 

구조주의는 기호와 언어로 생성된 자아, 주체를 대체한 구조등으로 인해서 주체의 주도적 역할이 상실된다. 이러한 구조주의의 보수적 이미지는 알튀세르에 의해 완화된다. 그는 평생토록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마르크스 주의를 재해석하고 쇄신하는 이에 전념했으며, 프랑스 공산당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중대한 이론적 기여를 한 전형적인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알튀세르가 아니었다면 마르크스 주의와 구조주의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었을 것이고, 프로이트가 말년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무의식과 마르크스주의의 접목은 이룰수 없는 꿈으로 남았을 것이다. 정신분열로 인해 아내를 살해하고 위대한 철학자에서 살인자로 수직 낙하한다.

 

마르크스 전기와 후기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 (가스통 바슐라르)이 있다고 말한다. 전기 마르크스가 아직 인간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비해, 후기 마르크스는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채택하고 과학적 사회 분석을 실천했다. 후반기에 마르크스는 전기의 범주들을 버리고 생산양식, 사회구성체, 상부구조, 이데올리기, 계급투쟁등 인간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과학적 범주들에 천착하게 된다. 

 

알튀세르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한다가 아닌, 사회가 인간을 형성한다는 입장이다. 생산관계의 구조는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장소와 기능을 결정한다. 그들은 그 지위를 점유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그런 한에서 기능을 지탱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진정한 주체는 그 지위를 점유하거나 기능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산관계와 정치적 사회관계이다.

 

경제구조->상부구조와 사회적의식 -> 인간의 인식을 결정한다는 유물론. 알튀세르는 경제의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고 상부구조의 자율성을 인정한다. 

 

마르크스 주의에서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념 혹은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데올로기도 상부구조의 요소인 만큼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계급의식처럼 물질적 토대를 거의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게 아니라 사회 관계를 은폐하고 위장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국가 기구는 실제로는 자본 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도구의 노릇을 하는데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것처럼 은폐되어 있다. 기업의 중간 관리자는 노동자인데도 불구하고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탄압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주인, 주체가 없다고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주체가 이데올로기를 가지는게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주체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구조주의적 시각이다.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고 그것이 주체를 결정한다...

 

인간은 세상에 피투된다. 이미 세상의 다양한 관계, 권력관계의 지배를 받기에 이를 이데올로기의 호명 (interpellation)이라고 부른다. 이데아/구조/이데올로기는 보이지 않고 배경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이데올로기, 대타자의 욕망에 길들여진 것이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항상 물질과 돈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의 호명인 것이다.

 

자본의 착취과정이 이데올로기에 은폐되어 있기에 근본 모순을 자각하지 못한다. 자본가의 음모도 노동자의 무지도 아니다. 생활상에 무의식적으로, 시스템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정치/경제 투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투쟁,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운동은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지도 해방시킬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에는 이미 이데올로기 투쟁이 내포되어 있다. 앝튀세르가 다시 이를 거론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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