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Che vuoi (케 보이, 너 뭘 원하니?)

existence_of_nothing 2021. 4. 15. 10:56

 

Che vuoi (케 보이)? 

 

che  vuoi는 너 무엇을 원하냐는 말이다. 라캉이 케보이를 얘기할 때의 의미는, 그냥 너 뭐할래의 의미가 아니라, 너는 진정 무엇을 원하느냐, 그것을 알고 있니? 라고 묻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인생에 한번쯤, 내가 진정 뭘 원하지? 란 의문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나는 나라고 하는 그것이지?"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내가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 나는 누구일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바라보는, 의식하는 누군가가 원해서일까? 왜 나는 그것을 원하게 된 것일까?

 

양자역학의 초창기에 아인슈타인은 하루가 멀다하고 양자역학 진영을 공격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논리같지도 않은 논리를 가지고 말이다. 신이 방안에서 하루종일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하루종일 고스톱 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에게 없다. 정확히는,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절대로 알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이고, 우리는 현상만으로 그 원인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소박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본인의 연구만 제대로 계속 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러나, 그도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마음속의 대타자의 욕망은 그에게 별 승산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게 하였다.

 

그에 대한 보어의 답은 cool 그 자체이다. "신이 주사위를 던지던 말던 그에게 간섭하지 말게나". 보어의 이런 겸손함은 그 후 코펜하겐 학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인간들이 어떻게 존재의 본질, 신의 본질에 대해서 알겠는가? 인간들은, 단지, 현상을 설명하고 그 설명이 다른 현상들도 잘 설명하는지에 관한 논리 구조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 논리가 직관에 위배되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직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그것은 뇌과학을 조금이라도 연구해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욕망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진정 우리가 원했던 것인가? 라캉은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 타자의 욕망이라고 얘기한다. 들뢰즈는 우리가 욕망하는 기계라고 얘기한다. 나에게 롤스로이스나 페라리같은 차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요구하게 만들고, 무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개인의 성실함과 우수함, 심지어 베버는 신의 은총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베버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천민자본주의의 형태로, 물신이라는 우상의 형태로 이 사회를 잠식해 버렸다.

 

진화는 물질적인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도 진화의 흐름을 겪는다. 실제로 진화는 변화 (혹은 하나를 더 보탠다면 선택)가 정확한 표현이다. 진화는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내부를 벗어나려는 실재계, 쥬이상스, 탈주선이 만들어낸 외형과 그 외형 중 (선택된) 다수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신 자유주의에 의한 무한 경쟁 사회는 생존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감을 많은 이들의 무의식에 새겨지고 이것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진화된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사토리 세대, N포 세대, Fire 족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행동 패턴을 만든다. 소비를 줄이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의 소유나 구매를 자제하고 경제적인 탐욕보다는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한다. 소득이 많지 않아도, 우리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물신으로 부터 해당된다면, 생활에 필요한 돈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토리 세대는 애초에 그렇게 많은 수입을 추구하지 않고 적은 수입과 소비로 생존을 지속하고, N 포 세대는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를 인정하고 연애/결혼/출산이라는 기본적인 사회활동의 욕구조차 줄이고 개인의 생존을 지속한다. 파이어족은 이른 나이에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하여 소득의 대부분을 저축하고 최소한의 소비 패턴을 추구하고, 은퇴후에도 비슷한 소비 규모를 유지하면서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타자 조차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어떤 정신 병자가 자기는 곡식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가 치료 후 병원문을 나선다. 그러나 곧 헐레벌떡 돌아와서 "밖에 닭이 있어요. 난 곡식이 아니란 거을 알지만, 닭은 그것을 알까요?"라고 의사에게 묻는다. 새로 출현한 세대는 물신의 공허함을 깨우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 주체의 대타자는 그것을 깨달았을까? 그것이 문제이다.

 

케보이... 그래서.. 대체 너는 무엇을 진정 원하고 있는가.. 나라고 부르는 그것은 진정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할 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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