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물리학 단상

existence_of_nothing 2022. 8. 4. 10:48

양자 역학에서 같은 공간에 같은 입자들이 존재하면 그들은 구별되지 않는다. 고전 역학적으로는 한 입자를 끝까지 스토킹하면 모든 입자들을 A, B, C와 같이 이름지을 수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레벨에서 신은 세상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두 입자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접근하고 파동이 합쳐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열심히 쫓아가서 "너 영자냐" 하면, 그는 "쟤가 영자야"라고 하고, 반대로 쫓아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다른 존재이다.

 

자연은 이렇게 가장 본질적인 레벨에서는 분별지를 잃어버린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그냥 인연으로 엮일 뿐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노동의 시간 외에 남는 시간에 지적 유희를 즐겼다. 호이징어의 "호모 루덴스", 유희적 존재로서 말이다.  그러한 지적 유희의 결과, 인류는 사실 오래전부터 선악의 상대성, 자연의 본질적인 중립성에 대해서 사유하고 있었다. 오늘날 정의에 집착하는, 너무나 과도하게 집착하는 부류들을 본다. 어차피 부조리한 세상에서, 뭘 그리 집착하는지...

 

입자들은 파동처럼 돌아다니면서 모든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모든 갈 수 있는 길들을 지나가며 돌아다니고, 많은 입자들이 돌아다닌 길에는 길이 생겼으며, 그 길을 우리는 "현상"으로 여기며, 그러한 현상적 세상을 우리는 실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레벨에서 우리들은 수많은 가능성들의 총합으로 존재하는 확률적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파동적인 존재임을.. 그러한 파동은 수많은 파동 중 하나의 모습이고, 항상 모습을 바꾸기에, 현재의 이 모습도 찰라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거울에 광자가 부딪힌다. 그러면 그 광자는 앞쪽으로 c라는 속도로 진행하다가 거울에 부딪히면 -c라는 속도로 진행한다. 그러면 c에서 -c라는 속도로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 것인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빛은 방향을 바꿀수 없이, 그냥 갈 수 있는 가장 직선의 길(geodesic path)을 광속으로 일정하게 움직일 뿐인데... 도대체 그 광자는 어떻게 방향을 180도 틀을 수 있었을까? 거울에 부딪힌 광자와 반사되어 튀어나온 광자는 동일한 광자인가 아닌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광자에는 이름표가 없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광자가 물체를 때린다. 물체에 있는 전자들은 광자의 에너지를 받고 여기 상태로 천이하고, 광자는 운명을 달리한다. 고전역학적으로 여기 상태에 있는 입자가 원래 에너지 상태로 돌아올 이유는 없다. 그럴려면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그런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공에 숨어있던 광자들이 별안간 나타나서 그들의 상태를 자극하고 그 자극에 따라 입자들은 다시 원래의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면서 빛을 방출한다. 그 빛은 뇌의 망막을 때리고, 다시 운명을 달리하고, 뇌의 망막을 통해서 자극된 전기신호는 연쇄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세상"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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