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표현주의

existence_of_nothing 2023. 1. 31. 15:57
잭슨 폴록(1912-1956)의 그림을 보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같이 EQ가 낮은 이들에게 감동 회로는 지극히 느리게 동작하고 이성 회로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는데, 그의 그림에서 이성회로는 그냥 멈춘다. 아래는 2013 년까지, 회화 사상 가장 비싼 값(1억4천만$) 에 팔린 그림 중 하나인 'No. 5, 1948'이라는 작품이다. 2년 후 "No. 17A, 1948"는 2억 $에 팔리면서 또 한번 기록을 갱신한다. 좌측이 No 5, 우측이 No 17A이다. 작품을 보면, "이게 머지?" 그리고, 나의 뇌는 동작을 멈춘다.

 

뭔가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고 싶은데, 어디에 촛점을 둬야 할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나는 자연이다. 내 그림에는 이유가 없다"라고 스스로, 아무런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임을 얘기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작가가 의도한 주제가 없고 대부분의 작품 명은 번호로 대체된다. 초기 표현주의로 시작하다가 추상주의로 화풍을 바꾸고, 말년에는 다시 표현주의로 돌아온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인정받지 못하던 무명의 알콜 중독자 화가였던 그에게 아내 "리 크래스너"가 등장하면서, 그리고 그녀가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클레멘트 그린버그라는 평론가와 미술 수집가 페기 구겐하임을 만나면서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 전위적이어서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액션페인팅", 페인트를 그림에 뿌리는(드리핑) 기법의 새로운 화법을 창작하면서 스폿 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나, 음주의 습관을 버릴수 없었던 그는 44살이던 1956년, 갑작스럽게 음주 운전 사고사한다. 드리핑 기법이 나온 배경도 재미있다.

페기 구겐하임 여사가 자신의 벽에 걸 대형 그림을 주문하지만, 자존심 강한 폴록은 부르조아를 위한 작업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러나 물주인 그녀는 강하게 작품을 요구하고 분노에 찬 폴록은 술에 떡이된 후 물감을 걍 뿌려 버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구겐하임 저택에 걸려있는 "벽화"라는 그림, 그리고 action pating이라는 전위적인 예술이 탄생하고 페기 여사는 이 그림을 사랑한다고 한다.

=========================

피트 몬드리안(1872-1944)의 그림은, 잭슨 폴록의 그림과는 반대로 너무 단순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1930년에 그린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이라는 작품이다.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천만 $에 낙찰된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면, "세상 참 쉽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충 사각형 위치 정하고, 물감 뿌리고, 검은 색만 그으면 될 듯한, 낼 당장이라도 나도 화가가 될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자연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남은 본질적 요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하나 둘씩 제거하다보니 위의 그림처럼 본질만 남아버렸다는 해석이다. 수직/수평선으로 구성, 흑백 혹은 삼원색만을 사용하여 본질만을 표현하는 예술풍조를 "신 조형주의"라고 부른다.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남성적인 원리가 수직선이기 때문에 남성은 이러한 요소를 숲의 상승하는 나무들에서 인식할 것이다. 그는 그의 보충을 바다의 수평선(여성성)에서 본다"
"빨강은 노랑/파랑과 대비를 이루는 위로 떠오르는 색, 노팡은 빛이 시작하는 색, 파랑은 창공과 뒤로 후퇴하는 색"
"아름다운 감정은 대상의 외형에서 방해받는다. 그래서 대상은 추상화되어야 한다" 라고 몬드리안은 그의 그림들의 의미를 설명한다.

20세기 초, 브파크와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평면에 공간을 넣으려는 시도였다면, 신조형주의는 반대로 공간을 평면으로 되돌려버린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그 본질적 요소는 수평과 수직으로 표현된다는 믿음, 수평/수직 혹은 삼원색이 각자 등등하고 조화롭게 구성됨으로 그들간 불평등의 요소를 제거한 점, 이를 통한 상호 동등성의 회복한 유토피아의 구현을 표현하였다. 그의 중기 작품에는 대각선을 표현한 것이 거의 없고, 이로 인해 동료인 되스부르크와 결별한다.

==========================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몬드리안과 함께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러시아 화가이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경제학을 공부하던 그는 클로네 모네 전시회에서 큰 감명을 받고 1896년 교수직을 제안받지만 거절하고 러시아를 떠나 뮌헨에서 화가로 변신한다. 러시아 혁명 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지만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이 추상화를 금지하자, 독일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서 1932년 나치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칸딘스키, 파울 클레, 몬드리안 등과 같이 예술을 가르친다.

어느날 칸딘스키는 외출 후 작업실로 돌아와 한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는데, 알고보니 자신의 작품이 거꾸로 놓인 것이었다. 해골물로 득도한 원효처럼, 그는 이 사건 이후로, 예술작품은 현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 세계, 감동을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사실 서른의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그가 디테일로 승부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던 생각을 같이하는 예술가들과 "청기사파"(칸딘스키, 파울클레, 쇤베르크 등)를 만들어 활동한다.

청기사파로 활동하던 초기 작품들은 인상파의 영향으로 형태보다 색채를 중시하는 화풍을 따라가던 칸딘스키의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점, 선, 면으로 구성된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어지러운, 불협화음의 악보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는 그가 금수저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배운 바이올린/첼로에 일가견이 있었고, 불협화음의 작곡가 쇤베르크와의 교류도 영향을 준 것이다.
<말을타고있는 연인, 1907> <인상 III,1911>
<구성 VII, 1913>

그는 청각을 통한 시각적 자극이 가능한 공감각자로 추정되고 있으며, 오늘날, 그의 그림을 그릴 때 떠 올린 음악을 AI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예술관에 관한 그의 설명이다.
<노랑-빨강-파랑, 1925> , <구성 8, 1923>

칸딘스키는 일찌기 러시아에서 교수직 제안을 거절하고 독일에 와서 고생한 본처 안나를 배신하고 학생이던 가브리엘 뮌터(1877~1962)라는 부유한 집안의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뒤늦게 그림을 시작한 칸딘스키에게 그림의 눈을 뜨게 하고, 물질/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러시아 혁명 후 칸딘스키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안나를 버리고 새로운 연인, 자신보다 27살 어린 니나를 만나 1918년 결혼 후, 다시 베를린에 와서 정착한 후 다시 뮌터를 찾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만나는 그의 영혼은 이러한 재미있는 뒷 이야기는 보여주지 못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