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철학
자연수의 개수가 많을까 아니면 짝수의 개수가 많을까? 자연수의 집합은 짝수의 집합을 포함하니 당연히 자연수의 개수가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한(infinity)은 이럴 때 장난을 한다. 자연수 하나에 짝수 하나는 1:1 대응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 둘의 개수는 같다.
그러면 정수와 유리수의 개수는 어떤 것이 많을까? 해석학이란 수학과목을 들으면 정수와 유리수의 1대 1 대응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유리수는 정수/정수로 나타낼수 있기에 2차원적으로 (가로와 세로) 분모와 분수를 나열한 후에, zig-zag형태로 정수와 1대1로 mapping하면 된다.
그러면 실수와 유리수의 개수는? 이것은 설명도 어렵다. 그냥 받아들이시면 유리수는 정수와 1대1 대응이니 셀수 있다(countably many). 그러나, 실수는 그런 대응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셀수 없는 ,uncountably many 이다. 실수의 개수가 많고, 실수에는 빈틈이 없다. 유리수에는 빈틈이 많다.
우리가 이렇게 무한대라는 것에 대해서 겁을 먹지 않고 얘기하게 된데에는, 고등학교때에 무한대를 연습문제로 많이 풀어봐서 그렇다. 인류가 무한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년... cantor라는(1845-1918) 집합론의 창시자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중 한명인 가우스(1777-1855)조차도 무한을 피해 다녔다. 물론, 생전에 무한대를 떠들고 다니는 칸토르는 미친사람 취급을 받았고, 실제 그들의 소원대로 정신병으로 시달리다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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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BC535-475)는 몰라도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만물 유전설… 어떤 이들은 우주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하나의 사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가 아닐까?라고 얘기한다. 반면 파르메니데스(BC510-450)에게 본질은 고정되어 있고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움직임은 없다). 누구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4차원 시공간은, 미래와 과거는 현재와 함께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확정성의 원리와 양자역학의 확률적 기술은 그러한 결론을 애매하게 만든다.
엘레아 학파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그리스 식민지인 엘레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철학 학파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을 반대하여 영원하고 변화가 없는 본질의 존재를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 크세노파네스, 엘레아의 제논, 사모스의 멜리소스등이 그 학파에 속한다. “있는 것은 하나이며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운동도 변화도 없다”라는 이상한 주장을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말 “있음은 있는 만큼 있기 때문에 있음이며, 없음은 없는 만큼 없기 때문에 없음이다.” “Nihil Ex Nihilo(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이라는 말은 진위여부를 떠나 표현 자체가 멋있고, 또한 그 내포한 의미의 무게감도 크다.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말같지 않은 논변을 사람들이 부정하면 그것을 반박하기 위한 여러 역설들을 만들어낸다. 유명한 제논의 역설 중 아킬레스와 거북이역설을 살펴보자.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10배 빠르게 달린다. 거북이를 아킬레스보다 100m앞에서 출발시킨다. 아킬레스가 10미터 가면 거북이는 1m를 간다. 아킬레스가 1m를 달리면 거북이는 0.1m를 간다. 이러한 과정은 영원히 반복될 수 있기에 아킬레스는 절대로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다.
무한 급수와 미분의 개념을 모를 때, 그 논리는 먹혔고 그러한 연속적인 움직임은 영원히 반복할 수 없으니 (양수를 영원히 더하면 무한대가 나오니), discrete한 형태로 주어질 것이고, 그러면 존재와 존재 사이에 비존재의 구간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유에서 무로 혹은 무에서 유가 되는 두 가지가 모두 말이 안되므로 변화(움직임)는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사실 이 역설은 중학교때 배운 등비급수만으로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 무한한 summation이 유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미분과 적분의 개념은, 0보다 큰 수를 무한히 더하더라도 유한이 됨을 당연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 철학자 베르그송은 시간의 그러한 공간적 분할은 불가능하다고 한마디로 끝낸다. 운동은 분할할 수 없고 (시간은 사건으로 다가오고), 제논은 운동이 아니라 운동의 흔적을 분석할 뿐이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를 쾌락주의, 스토아 학파를 금욕주의라고 고등학교에서 배운다. 그러나, 사실 둘 다 금욕주의적 생활을 얘기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현실에서의 정신적 안정을, 스토아 학파는 내세에 대한 기대로 정신적 안정을 얘기한다. 육체적인 만족의 추구는 도리어 더 많은 만족을 원하는 악순환에 빠지기에 에피쿠로스 학파에서도 권장하지 않는다.
영혼과 물질의 존재에 대해서는 항상 논쟁 거리가 되어 왔다. 사모서섬에서 에피쿠로스(BC342-270)에 의해서 창시된 에피쿠로스 학파는 원자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철학을 강조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우리의 육체와 정신 모두 아주 작은 원자라는 입자들이 모인 것이며, 수명이 다한 후에 그들은 흩어져서 육체와 정신 모두 사라진다근 것이다. 사후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315년경 키티온에서 제논에 의해서 창시된다. 스토아 학파는 우주의 만물은 ‘로고스’(진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이 우주의 근본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우주 만물은 신의 섭리로 지어지고, 이성은 이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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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부터 무엇인가 생겨날 수 있는가? 이것은 고대 철학의 큰 주제 중 하나였다.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인다. 이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것은 사유의 큰 주제 중 하나이며, 물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무로부터 무엇인가 왔다. 말씀으로부터 창조되었다… 는 것은 사실 직관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없음이란 말 그대로 없음이다. 어떻게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루크레티우스는 생존 연대가 불확실한 (BC 96~55) 고대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없지만,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준 철학자이다. 에피쿠로스가 (BC341-271) 에피쿠로스 학파를 창시하고 제논이 BC315년에 키티온에서 스토아 학파를 창시했는데,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쾌락주의라고 고교때 배웠지만 실제로 에피쿠로스나 스토아 학파 모두 육체적 쾌락과는 번지수가 멀다. 둘 다 정신적인 안정 상태를 추구하지만, 스토아 학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 (로고스)과 내세를, 에피쿠로스는 지금 이 순간을 강조할 뿐이다.
봄이 되면 마치 무에서 무엇인가 생겨나는 것처럼 나무는 싹을 맺고 꽃은 피어난다. 여름과 가을의 영광을 지나면 겨울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무의 존재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물을 진정으로 자세히 관찰하고 관조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것들은 순환될 뿐이다. 최소한 거시적인 자연의 세계에서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주가 진공 요동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하지만, 진공 자체는 진공에너지로 가득차 있으니, 이 또한 무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것을 파르메니데스(BC510-450)는 “있음은 있는 만큼 있기 때문에 있음이며, 없음은 없는 만큼 없기 때문에 없음이다”라는 멋있는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원리를 깨우친 이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명이 보인다. 붓다, 노자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와 루크레티우스도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진 무한공간이다. 그 안에서 원자들이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할 뿐이다. 삶은 원자들의 합일 뿐이고 죽음은 그것의 산란일 뿐이고 절대적인 본질은 없다는 것이다. 삶이 우연적인 현상이었듯이, 죽음 또한 우연적인 현상일 뿐이니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자신의 삶이 있기 전이 두려웠는가…. 그렇다면 왜 자신의 삶이 사라진 공허를 두려워 하는가.. (이것은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큰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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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대의 자연철학의 전통을 로마가 이어받았더라면, 자연과학은 지금보다는 수백년 빨라졌을 지 모른다.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이 얘기한 많은 얘기들은, 비록 그 담론의 해상도가 높지는 않더라도,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놀랄만한 것들이 존재한다. 그 주장의 사실성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추론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 때로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히파티아(370~415)라는 여성 수학자가 광신도들에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자연철학의 시계는 (한동안) 멈춰선다. 그녀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 연구하던 많은 이들과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도 함께 파괴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