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모딜리아니

existence_of_nothing 2023. 1. 31. 16:06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는 영국 런던대학 미술사학과 교수였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50년에 쓴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이다. 다른 보통의 사가들, 미술사가들이 예술가들을 일련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그러한 화풍이 나타나게 된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분석하려고 했다면 곰브리치는 화가 개개인이 어떠한 삶의 궤적을 따라갔고 그것이 어떻게 그의 그림으로 표현되게 된 것인지에 집중하였다.

인간은 외부의 자극에 생화학적으로 반응한다. 어떤 시대에는 어떠한 행동 패턴들이 존재하고 공통의 자극/생활 환경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이고 거시적으로 볼 때는 개개인의 개별 행동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헤겔은 이러한 구조적인 진화를,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의 저변을 관통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실체인 "시대정신"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과연 그러한가?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했더라도, 그 미시적 진행은 달라졌겠지만 거시적 결과는 동일했을까?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사회 구조적인 동인에 그냥 휩쓸려 다니기만 한 것인가.. 사실, 전적으로 그렇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한눈에 반하지만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곰브리치는 "미술(Art)은 없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얘기한다. 최소한 예술에 있어서는 이것이 맞을 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은 항상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공부하면 유명한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그 작품을 보고 화가가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화가 개개인에 있어서도 초기인지, 중기인지 말기인지에 따라 화풍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가들도 역사 속에서 살았고, 역사는 정반합의 구조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즉 현재가 있고 그에 대한 내부 모순 혹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반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미술가들도 그 흐름을 완전히 거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상파는 이전 미술사조와 완전히 동떨어져서, 갑자기 화가들이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은 열망만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등장한 산업혁명의 이기들로 인한 이동의 자유로움, 변혁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사진의 등장으로 인한 초상화의 몰락 ... 이것은 화가들을 자연으로 가게 하고, 그들은 자연에서 빛의 변화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진정한 자유를 원하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인간은 인간 사회의 일원이고 그 개개인의 사고는 뉴런 세포들의 연결에서 나오고, 뉴런 세포들은 원자/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서로 간에 에너지를 주고 받으면서 안정된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그 움직임은 지극히 deterministic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자유로인 의지가 존재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안 선다. 자아냐 무아냐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

모딜리아니(1884~1920)의 작품도, 척 보면 누군지 짐작이 갈 정도로 개성이 있다. 거의 모든 그림에서 인물들의 목은 과장되게 길쭉하고,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고 눈동자는 비어 있다. "아직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죠.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릴 것입니다." 영화 Modigliani(2004)의 대사이다. 연인 잔 에뷔테른을 처음 그릴 때, 그녀의 눈동자는 비어있다가 ,후기에 가면서 눈동자는 채워진다.
모딜리아니는 평생을 병약하고 가난한 화가로 살아간다. 1916년 잔느와 만나 작업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사랑의 결실인 딸을 가지지만, 마약과 알콜, 결핵에 찌든 모딜리아니를 잔느의 집안에서 반대한다. 결핵이 심해져서 그 둘은 니스 해변으로 요양을 가고, 그곳에서 잔느를 모델로 대표적인 초상화들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 행복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핵성 뇌막염으로 모딜리아니가 사망하고, 이틀 후, 임신 8개월의 잔느는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사망한다.

생전에 그렇게 가난하여, 딸 하나를 먹여 살리기도 힘들어했지만, 그의 사후, 2015년과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아래 두 작품들, "누워있는 누드(Reclining Nude)는 각각 1.7억$, 1.6억$에 팔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