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사이몬스
요즘 위상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위상 수학을 공부한다는 얘기는 위험한 정도로 수학적 늪에 빠져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는 모두 위상 수학의 용어로 대화를 하고 있기에 그 분야의 용어들과 정리들을 모르면 1960년대 이후에 연구된 내용들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밴드에서 오고가는 내용들은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오래.. 오래된 물리학 분야의 얘기들을 하고 있다. 194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도로 말이다.
디락과 하이젠베르그 이후로, 물리학에서 수학적 frame work을 기반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지능을 가졌다는 에드워드 위튼에 이르러서는 수학자들을 질질 끌고 가면서 다그치고 있다. 초끈이론의 수학이론들은 물리학적 필요성에 의해서 개발된 것들이 많다. 에드워드 위튼은 물리학자로는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필즈 메달 (사실은 아벨상이 노벨상에 가깝고 필즈 메달은 수학계 천재들을 칭송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페르마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도 만 41세의 나이.. 한 끗발로 필즈 메달을 놓친다)을 수상한다.
페르마 정리를 정복하기 까지의 얘기들도 나중에 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와일즈의 인생은 페르마정리를 정복하는 여정의 연결이다. 그러나, 그 증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그 혼자 한 것은 아니다. 푸앙카레의 정리에서 천재 페렐만이 가야할 길을 인도한 수학자 해밀턴처럼, 타니야마 시무라와 리벳이라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와일즈가 올라탄다.
에드워드 위튼은 수학자를 능가하는 수학 실력으로 위상 양자장론(TQFT, topological quantum field theory)를 창시한다. 현대입자물리학, 고체 물리학을 전공하는 많은 이들이 topology를 이용하여 양자장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양자장론도 무진장 어렵게 공부했는데, 위상 양자역학까지 요즘 공부하려니, 왜 사서 고생하고 있는지 때로는 나 자신이 의아하다. 위상 양자역학에 대한 어렴풋한 필요성은 일전에 소개한 아로노프 봄 실험에 의해서 주어진다. (데이비드 봄은 그 뛰어난 천재성에도 불과하고 공산주의자라는 낙인 때문에 일찍이 학계에서 왕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전기장은 일찍이 발견되었다. 전하를 띤 대전 입자들 사이에 인력 혹은 척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자석의 존재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은 Oersted(1777-1851)라는 물리학자가 볼타전지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다. 전하를 띤 입자들이 움직이면 자기장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자석을 움직여 자기장의 변화를 주니 전기장이 발생하는 패러데이 유도법칙을 발견한다.
원통에 전선을 감고 전류를 흘리면 그 내부에 자기장이 생긴다 (그것을 solenoid 솔레노이드라고 부른다). 오른나사의 법칙에 따라 N극이 결정되고 그 반대 방향으로 S극이 생긴다. 그러나 솔레노이드의 길이가 직경에 비해서 아주 크다면 솔레노이드외부에는 자기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대학교 2학년의 전자기학을 배우면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외부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벡터 포텐셜 필드이다. 우리는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것,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쉽게 부정한다. 벡터 포텐셜 필드는 사실 자기장을 쉽게 구하기 위한 수학적 도구에 불과했기에 그 실체성이 부정되었다.
이제 아래와 같이 Young의 이중 슬릿 실험을 해 보자. 전자를 한개씩만 쏜다고 하더라도 입자의 파동적 성질, 양자적 성질 때문에 간섭 패턴이 생긴다. 즉, 오른쪽에 위치한 감광판에 얼룩 무늬가 생긴다. 이제 감광판과 슬릿 사이에 두께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solenoid를 위치시키자. 그러면 전자가 이동하는 거의 모든 경로에서 자기장은 존재하지 않기에 간섭패턴의 위치에는 변화가 없어야 하지만, 놀랍게도 실선 간섭 패턴이 점선처럼 이동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Horizon에서 박권 교수가 그에 관해서 "위상의 귀환"이라는 것으로 설명한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의 절대값은 어떤 시간과 위치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을 나타낸다. 파동함수는 복소수 값을 취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위상은 최근까지도 그렇게 중요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로노프 봄 실험을 계기로, 그리고 현대 위상 양자역학의 대두에 따라 위상 함수는 다시 무대의 전면에 떠오른다.
양자역학 파동함수의 위상(phase)과, 위상 수학에서의 위상(topology)은 사실 그 차이가 크다. 위상 수학에서의 위상은 topology, 즉 공간의 생긴 모양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위의 실험에서 보이는 2개의 경로간에 입자들은 서로 다른 geometry의 경로를 거친다. 그러나 그 높이는 우리 눈에 보이는 방향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내재한 공간에서의 높이의 차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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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Simons란 수학자/투자자에 대해서 가볍게 얘기를 하려다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다. 요즘 수학 분야 전공자들중 많은 이들이 Chern simons 이론, Chern weils 이론을 얘기한다. Chern-Simons theory는 간단하게 얘기하면
2+1 차원의 게이지 이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3+1의 차원이다. 그런데 왜 우리 세상보다도 더 단순한 2+1차원의 게이지이론을 공부하려고 하는 것인지 흥미롭다. condensed matter physics, 고체 물리의 세상에서 2 차원의 중요성이 최근 새삼 강조되고 있다. 2차원만의 세계만의 독특한 문제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이 요즘 물리학계의 핫템, 위상의 귀환을 불러온 Shiing-Shern Chern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수학자이다. 그는 필즈메달도 아벨상도 수상하지 못하였지만, 최근 물리학과 수학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큰 여러 업적들을 남긴다. 물론, 에드워드 위튼이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TQFT에서 그를 여러번 소환했음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위상 수학과 미분 기하학의 절묘한 결합에 있다. 잘 아는데로 위상수학은 푸앙카레가 만든 수학분야이며, 간단히는 추상적인 공간의 기하학적이니 특성, 특히 homology에 대해서 주로 연구하는 분야이며, 미분기하학은 가우스와 리만의 업적으로 유클리드의 제 5공준이 성립하지 않는 휘어진 공간의 기하학적인 성질들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그 두 분야는 Chern에 의해서 재미있게 결합된다.
Chern이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로 가서 수학자 카르탕(1869-1951, Elie Joseph Cartan)을 만난다. Cartan은 물리학을 깊이있게 공부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Lie algebra, 리 대수그룹의 대가이다. Chern 박사 자신도 천재중 상위급 천재였지만, Cartan같은 대가들은 그 보다도 더욱 지능이 뛰어나서, 본인이 하루종일 생각한 것을 Cartan은 30분이면 이해를 하는 것을 보고, 본인은 평생 열심히 해야할 팔자라고 생각하고 학문에 정진해서 Cartan 만큼, 혹은 그보다 더욱 큰 impact를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 끼친다.
사실 학문적 업적이 뛰어나면서 경제적인 부유함까지 겸비하는 케이스가 흔하지는 않다. 내가 아는 몇몇은 내가 전공하는 분야의 대가인 Claude Shannon, 비터비 알고리듬으로 유명한 Viterbi 등이 있다. 샤논은 3편정도의 논문을 쓰고 바로 은퇴하는데, 그 3편의 논문으로 그는 정보 이론이라는 디지털 혁명을 일으킨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샤논의 정보이론이 기여한 바가 크다. Shannon entropy를 모르면서 통계역학을 논하는 것은 non-sense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Viterbi 알고리듬은 dynamic programming의 일종인데,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그 파급력은 전자공학/컴퓨터 공학에 지대하다. Viterbi는 비교적 말년에 Qualcomm을 Jacobs와 같이 공동 창립하여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다.
아래 사진은 물리학/수학계의 핫템, Chern-simons의 또 다른 한명의 수학자 제임스 사이먼스이다. 보다시피 사무실이 깔끔하다. 왜냐하면 2014년 포브스 선정 전세계 부자 순위 88위 (순자산 13조)의 부자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수학실력을 금융수학 분야에 응용하여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는 펀드회사를 만들어 대박을 친다.
24살의 나이에 하버드 교수가 되었을 정도의 천재였지만 4년만에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으로 암호해독관으로 미국 국가 안보국에서 일하다 SNS를 잘못한 죄로 바로 잘린 후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수학교수로 돌아와서 그 유명한 Chern-simons이론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다 1978년 다시 철밥통 교수직을 때려치고 금융계에 입문하여 초대박을 친다 (그의 아버지가 교수직을 때려친다고 미친넘이라고 했다능 ^^). 다시 은퇴하여 벌어논 수많은 돈들을 여러 학문 기관과 연구에 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