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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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가 "플라톤과 그 각주"라고 하지만, 실질적이고 상용적인면, 수학과 과학의 측면에서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이 훨씬 뛰어나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17세에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해서 20년간 플라톤의 사망까지 학교에 있었지만 사망(BC347)후 원장직이 조카 스페우스포스에게 돌아가자 사표내고 알렉산더왕자의 가정교사가 된다 (그러나 별로 임팩트를 준것 같지는 않다). 그 후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 학원을 세운다. 그와 제자들이 산책로를 거닐며 논의를 했기에 소요학파(페리파토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워낙 다방면에 걸쳐서 연구를 하였기에 수학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낸 것은 없다. 수학사에서는 일전에 얘기한 "아리.. 의 바퀴"라는 문제가 무한과 관련해서 유명할 뿐이다. 그의 가장 위대한, 그리고 의미있는 업적이라면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논리학의 집대성이다. 그는 오르가논(Organon, 도구)라는 <범주론><분석론전서><해석론><분석론 후서><궤변론><변증론>이라는 논리학 6부작을 발표한다. 그 내용중 A->B, B->C then A->C라는 3단 논법과 A=A, A&~A=0, A|~A=S라는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을 만든다. 오늘날 computer를 만든 Boolean logic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기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의 역설의 답은?>
문제는, 두바퀴가 같은 차륜으로 돌아간다. 지면과 만나는 점과 원점을 연결하면 두 원의 대응관계의 점들에서 계속 만날텐데.. 어떻게 그 둘이 지나간 길이가 다를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당시로 돌아가보면 "어떻게 운동이 가능한가?"는 쉽게 대답이 힘든 문제였다. 오늘날처럼 4대힘의 존재를 모르던 때, 도대체 무엇인가는 왜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고 따라서 파르메니데스의 움직임은 없다 혹은 플라톤의 변화는, 이데아의 불완전한 투영일 뿐, 본질은 불변으로 묘사하곤 했다. 실재가 아닌 세상의 운동에 플라톤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와 분리된 세상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의 실재성과 운동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 즉, 세상의 현상이 귀납/연역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면에서 오늘날 과학적 탐구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물(무생물)에 조차도 내재한 목적에 따른 자발적 운동이라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것은 그 당시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데모크리토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떠한 증거나 설명도 못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논리이지만 논리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목적론적 운동관은 케플러(1571-1630)와 갈릴레오(1564-1642)에 와서야 조금씩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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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모두 아는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 5차 솔베이 학회 참석자 사진이다. 보통 학회에 저 사진의 한두명만 와도 흥행이 되지만,1927년 학회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는다 (참석자는 피카르, 앙리오트, 에렌페스트, 헤르젠, 드 동데르, 슈뢰딩거, 버샤펠트,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파울러, 브릴루앵, 디바이, 크누센, 브래그, 크라머르스, 디랙, 콤프턴, 드 브로이, 보른, 보어, 랭뮤어, 플랑크, 퀴리, 로런츠, 아인슈타인, 랑주뱅, 게이, 윌슨, 리처드슨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시대의 천재들이고 그 중 노벨상 수상자만 17명). 그 학회에서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밤낮으로 치고 받은 것은 이미 유명하고 저 학회를 계기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해석이 주류 이론으로 인정받는다.
저런 천재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그 전에도/후에도 없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서 그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는 있다. 아래는 중세 대표 화가인 라파엘로(1483-1520)가 시대를 초월한 천재들을 한자리에 소환하여 그린 "아테네 학당"이다. 등장인물은 디오게네스,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알렉산더,에피쿠로스,유클리드,제논,조로아스터,이븐 루시드,파르메니데스,프톨레마이오스,플라톤,플로티노스,피타고라스,헤라클레이토스,히파티아 등이다. 대부분 인물들은 (알렉산더가 낀 것이 약간 옥에 티이긴 하지만) 게시글에 한번씩은 언급된 대가들이다 .
아래부터는 예전에 적은 글 중,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관련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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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아텔)를 얘기하는 책이나, 동영상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그림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이다. 그림에서 플라톤은 하나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아텔은 다섯 손가락으로 땅을 가르킨다. 플라톤은 유일한 이데아의 진리를 얘기하고 있고 아텔은 상대적인 현실의 진리를 얘기하고 있다. 플라톤은 우주론에 관한 "티마이오스"라는 책을 아텔은 "니코마스 윤리학"을 들고 있다.
1. 세상의 본질
플라톤에게는 개별적인 존재의 공통 분모, 수와 개념들이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상이 있음에 반해서 아텔에게는 이데아는 현실에 존재한다. 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본질로서의 이데아와 그의 그림자로서의 세상을 얘기한다.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그는 데미우르고스라는 제작자가 "코라"의 질료들을 가지고 "이데아"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 우주라고 얘기한다. 이 생각은 훗날 영지주의로 연결된다.
아텔은 세상과 동떨어진 이데아의 세상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개별자(제1실체)와 보편자(제2실체)중 개별자의 실재성만 인정한다. 개별자의 본질은 질료(hyle)와 형상(eidos)으로 구성되며 질료는 어떤 것이던 될 수 있기에 가능태(dynamis), 형상은 실제 형태로 존재하므로 현실태(energeia)라고 부른다. 씨앗이 질료라면 나무는 형상, 석고는 질료이고 석고로 만든 상은 형상이 될 것이다.
2. 물질의 구성
세상을 만드는 재료로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은 4원소 즉, 물,불,공기, 흙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과 아텔 모두 이것을 계승하고 아텔은 여기에 천상을 이루는 에테르를 더하여 5원소도 얘기한다. 플라톤은 이미 얘기한데로 기하학을 인용하여 불/흙/공기/물을 각각 정(4,6,8,20)면체에 대응시켜 세상이 기하학적인 원리로 구성된다고 얘기한다.
아텔은 엠페도의 4원소설을 받아들이는데, 각 원소들은 내재한 성질들이 있어서, 그 성질이 바뀌면 원소도 바뀐다고 주장한다. 현대로 말하면 (up, down) 쿼크의 조합에 따라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는 것과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훗날 (물론, 근대 화학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바도 있지만) 연금술에 인류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원인이 된다. 아텔의 질료는 4원소설의 바탕에 있는 원재료이고 여러 성질들이 결합되어 원소들과 세상의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3. 운동의 원인
아텔은 존재 변화의 원인을 질료인, 작용인, 형상인, 목적인으로 두고 목적인은 존재 내부에 있을 수도 있고, 외부에서 강제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아텔에게는 형상의 이해보다는 운동의 원인에 관한 이해가 더 중요한 지식이다. 따라서 아텔에게는 우주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천문학보다, 운동원리를 이해하는 물리학이 더 가치있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아텔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수학을 중요시한 반면 아텔은 경험적인 운동의 원리를 더 중요시하고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연 현상을 깊이 관찰하고 분석하였기에 자연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목적론적이니 세계관은 갈릴레이에 와서야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해서 뉴턴에 와서는 정반대의 기계적인 세계관으로 전도된다 (물론, 뉴턴 자신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였기에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
4. 자연철학
아텔은 편평한 땅위에 천구가 있고, 천구에 별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천구와 지구 사이에는 에테르가 형체를 유지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고, 에테르에 대한 생각은 사실 19세기말 마이켈슨-몰리 실험까지도 연결되는 사고이다. 이 사고를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어받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주류 천문학으로 자리잡는다. 지동설의 등장은 쿤의 과학혁명에서 패러다임 전환의 예로 자주 사용된다.
5. 중세 철학 관련
왜 서구에서는 12세기까지 플라톤의 철학만 연구되고 아텔의 철학은 사라졌는가? 그것은 아텔의 철학이 기독교와 양립이 어려운 여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가지 예를 들면
1). 세계의 영원성: 무는 무이고, 유는 유이다. 아텔에게 질료는 우주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존재가 죽으면 질료는 원래 상태로 돌려져서 새로운 원재료로 사용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무에서 창조라는 개념에 위배
2). 단일지성론: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고 운명을 같이하지만 지성은 신체와 분리되어 있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남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아랍권에서 발전시켜서 인간의 지성은 절대적 우주지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이것은 훗날 헤겔의 시대정신으로 연결된다. 당연히 기독교의 영혼불멸 부활사상과 위배
3). 자연법칙 불변론: 아텔에게 자연법칙은 그 자체로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며 예외는 인정하지 않았다. 기적의 가능성과 위배
따라서, 아텔의 사상은 보수적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자들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사상이었고 논리학외에는 철저하게 연구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아랍권(아베로에스가 주로 연구)에서는 아텔사상이 플라톤보다 우위에 있었으며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그의 온전한 사상이 서구로 전달된다.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등장과 함께 아텔의 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서로 융화되었으며 이때부터 아텔 사상은 전면에 부각한다. 아퀴나스는 이에 관하여 200페이지 분량의 책 60권을 "신학대전"이라는 형태로 정리한다. 미완성 저작이고 72권을 목표로 저술되었다.
6. 세계관
플라톤에게 진리는 고정되고 불변이며 이데아의 세상에 존재할 뿐이지만, 아텔에게는 진리는 상대적이며 상황에 따라 변하며 현실의 세상에 존재한다. 세상은 이데아의 복사본이 아니며, 세상은 자체의 목적에 따라 변화하고 생성된다(become). 아텔은 플라톤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여 세상이 고정된 어떤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하고 그 최초의 목적인을 부동의 동자, 제 1원인으로 설명하다. 그리고 존재들은 순수 질료 부터 순수 형상(신?)에 까지 여러 계층적 구조를 가지며 순수 형상에 가까울 수록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목적론적(teleological) 세계관은 훗날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역사 인식으로 연결되어 역사는 진보의 방향으로 계속 정반합의 변화를 하면서 완성한다고 주장한다.
7. 윤리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텔은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얘기한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이고 행복은 영혼의 활동, 이성적 사고로 사유하는 것에서 얻어진다. 또한 세상의 불완전한 모습을 추구하지 말고 완전한 것을 추구하여 신이(순수 형상)되려고 하는 것이 아텔의 선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데, 이성을 기반으로 적절한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아텔의 생활윤리이다. 중용의 소중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인정하는 듯하다.
8. 수사학
수하학은 말로써 타인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이다. 아텔에 따르면 설득의 3요소는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로 구성되며 로고스는 논리, 파토스는 감정, 에토스는 신뢰에 관한 내용이다. 남을 설득하는 순서는 먼저 에토스로 신뢰를 획득하고, 파토스로 기분을 좋게 만든 후에 로고스로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반대로 먼저 로고스로 남을 승복시키려 한다.
9. 사족
플라톤의 고정불변의 진리에서는 진일보하였지만, 여전히 순수 형상을 향한 목적론적인 진리관에 사로잡혀 있었던 아텔, 그래서 서구 철학자 화이트 헤드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 말은 플라톤의 철학이 위대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사실 플라톤이 많은 저서와 화두를 통하여 철학에서 제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얘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용옥 선생이 플라톤과 노자를 비교하는 동영상 강좌에서 한 구절을 예로 들면서 노자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 말은 고정 불변의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측면과, 진리란 말로 할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말일 것이다. 고정 불변의 진리는 없다고 얘기할 때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떠 올리고, 상대적인 진리의 기반에서 어떻게 선과 악을 얘기하고 어떻게 실천을 해야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에 부딪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