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라브와지에의 죽음
화학 이야기 4
라브와지에가 세금 징수원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그로 인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보통의 천재들은 하나의 분야에만 능력이 뛰어나고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행정적인 면에서는 평균이하인 경우가 많다. (라플라스가 그렇게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행정점수 0점으로 한달만에 행정장관직에서 짤린다) 그러나, 라브와지에는 학문과 공직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768년 라브와지에는 관세/담배세/주세등의 세금을 거둬 정부에 납부하고 자신들이 그 일부를 챙기는 세금징수 조합의 일원이 되었다. 그당시 세금 징수원들은 보통 부유한 금융가들이 관리하고 이 과정에서 납세자들을 착취하거나 비리를 저질러 원성이 자자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프랑스 대혁명때 처형당했다.
라브와지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과정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그 부는 개인의 사익이 아니라 실험에 필요한 여러 장비들을 사는데 사용되었다. 화학 분야의 엄청난 업적과 개인적 사익이 아닌 것을 고려하여 여러 과학자들이 사형중지를 탄원하였지만 정의감이 넘친 판사는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판결은 집행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사형을 집행한다.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뛰어난 과학자들을 면죄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남은 이들이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살려 둬야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하는 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자신들만의 정의감으로 불타는 이들, 자신들만의 신념으로만 똘똘 뭉친 융통성 없는 인간들이다 )
라그랑지가 이를 한탄하면서.. “그의 두뇌를 기다리려면 100년은 걸린다”고 얘기했다고 하지만, 사실, 라그랑지 자신이 당시에 라브와지에의 후원을 받는 요주의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몸 챙기기에도 바빴고, 그것을 기억하는 미망인 마리는 장례식에 나타난 그를 철저히 무시한다.
질량보존의 법칙으로 라브와지에를 기억하지만, 그는 현대의 미터법 제정을 유도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라브와지에의 지시로, 일부 연구원들이 1790년에 북극에서 노틀담 성당을 거쳐서 적도까지 가는 길이의 천만분의 1을 1미터로 정하는데, 그것이 오늘날 미터법의 기원이다. 실제로 측정에 1년 을 예상하고 여정을 떠나지만, 강도도 만나는 등 천신만고 끝에 7년만에 보고하러 왔지만, 라브와지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였다.
그의 사후에 미망인이 된 마리 (안 라브와지에)가 그의 유고들을 정리한다. 그녀도 역시 투옥되어 있었고, 자코뱅파가 실험실을 모두 압수한 뒤라, 많은 어려움 끝에 그녀는 남편의 미발표 결과들을 모두 정리하여 그의 업적을 널리 알린다. 라브와지에는 나이 28살에 겨우 13살인 마리와 결혼한다. 그 당시 권력가이던 50살의 다메르발 백작이 그 어린 소녀에게 결혼을 요청하는데, 보복을 두려워한 그녀의 집안에서 라브와지에게 SOS를 요청하고 그는 이를 수락하여 결혼한다. 그 둘은 나이차에도 불고하고 금슬이 좋아서 실험실에서 연애 반 실험반 동거동락한다. 그녀는 한때 잠깐 재혼하지만, 끝내 그를 잊을 수 없다며 4년만에 이혼한 뒤, 평생을 그를 그리워하면서 살다가 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