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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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탄생

existence_of_nothing 2023. 1. 31. 16:01
모든 것은 DNA라고 부르는 작은 정보 덩어리에서 시작한다. 유전자는 아빠와 엄마에게서 서로를 탐하는 마음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아빠 몸에서 배출된 수많은 올챙이들이 엄마몸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들은 진이 빠져라고 달려와서, 난자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장애물들을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난자의 내부로 침투한다. 그리고, 반쪽의 정보들은 합쳐져서 하나의 정보로 완성된다.

수억개의 정자들은 단 하나의 목적, 정보의 결합을 위한 위험한 전쟁을 치른 후, 모두 전사한다. 난자는 단 한개의 승자만을 선택한 후, 철저히 성벽을 잠궈 버린다. 이렇게 단순한 작업, 정보의 결합을 위하여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 이렇게 불필요한 희생이 필요했을까... 23개의 정보가 합쳐져서 46개의 염색체를 이룬 후, 생명은 시작한다.
수정란은 하루뒤 2개로, 3일후 12~32개로 분열하고 착상단계에서는 약 250여개로 분화한다. 그리고, 난관벽의 섬모들은 수정란을 섬모 운동으로 밀어올려 자궁 내막에 도킹시킨다. 이 도킹 과정도 쉽지 않아서, 착상에 실패하면 생명체는 피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 도킹에 성공하면 자궁 내막속으로 파고들어 엄마몸의 일부가 된다.
수정 후 9주까지를 배아라고 하며, 그 이후는 태아라고 부른다. 언제부터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이것은 오늘날도 큰 논쟁거리 중 하나이며, 미국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낙태 허용 여부와도 관련된다. 배아단계에서 세포들은 분화를 시작하여 4주가 되면 몇백만개의 세포가 생기며, 5주가 되면 눈, 코, 입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9주 정도가 되면 거의 모든 장기들이 형성되며, 이 때부터 성장을 시작하는 태아기에 접어든다. 이 단계에서 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각종 기형들이 발생한다.

배아단계에서 3주차에 접어들면 혈관과 혈구들이 가장 먼저 생긴다. 모체로부터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으면 이것을 자신의 각 세포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4주~5주차에는 심장이 완성되는데 이때부터 모든 말단 세포까지 혈액을 공급할 전원이 생긴 것이고, 본격적인 토목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폐와 소화기관들이 만들어지지만, 이것들은 출산전에는 기능을 하지 않고 태반을 통해서, 엄마로부터 모든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실제로 엄마와 태아는 혈액형이 다르므로, 면역체계가 태아를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태반을 통한 물자 보급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태반에서 태아에게 낙하하는 형태로, 확산의 형태로 보급된다. 즉, 엄마와 태아는 태반을 통해서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은 만약 엄마와 태아의 혈액이 직접 연결되면 면역체계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태반을 통해서 공수받은 영양분/산소는 배꼽 혈관을 통해서 태아의 몸에 공급되는데, 배꼽혈관은 출생과 더불어 퇴화하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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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오스트리아 연구진이 줄기세포로 4mm의 뇌를 분화시켰다. 약 9주정되된 태아의 뇌와 비슷한 형태이며, 1년동안 생존 시킨다. 사실, 현대 과학은 그것을 더 분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지만, 윤리적인 문제로 그 이상의 시도는 진행되지 못한다. 몸은 없고 뇌만 있는, 따라서 의식만 존재하는 생명체도 이론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는 충분히 시도할만한 일이지만, 윤리적으로는 끔찍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2017년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카나베로 교수는 세계 최초로 인간 뇌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발표한다. 중국에서 시신을 상대로 중요한 신경, 혈관 연결에 성공한 것이다. 2015년에는 중증장애를 가진 러시아 컴퓨터 과학자를 대상으로 뇌이식 수술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진행되지 못한다. 먼저 동물 실험에서 두 쥐의 머리를 교환한 후, 36시간동안 생존시키는 수술에 성공한다. 장기의 대부분은 멀쩡한데 뇌의 이상이 있는 사람과 뇌는 멀쩡하지만 장기의 대부분이 손상된 경우, 이 둘의 결합은 시도할만한 일인가... 판단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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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은 사실 이해가 쉽지 않은 현상이다. 물질이 주변 물질들을 모아서, 스스로 레고 블럭을 쌓아 올리고,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그러한 단계가 심화함에 따라, 물질은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 왜 이런 과정이 우주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정 중의 하나의 해프닝일 뿐인가...

영지주의의 시작은 유대교 신비주의 신앙인 카빌라이다. 카빌라에서 창조이전에 아인 소프(Ein sof)가 존재했었다. 무한자이면서 현현하지 않은 음의 존재이다. 아인, 아인소프, 아인소프 오르의 3단계중 가장 아래단계인 아인소프 오르, 혹은 데미우르고스는 아인소프부터 빛을 발출하는 양의 존재가 되어 세상을 창조한다. 아인소프에서 발출된 10가지 를 세피로트(Sefirot)이라고 부르며 그것들이 상호 작용하여 우주를 만든다고 믿었다. 영성이 있는 인간은 아인소프로 부터 오는 신호를 받아서 다시 아인소프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이 영지주의로 연결된다. 영지주의에서는 훈련을 퉁하여 아인소프로 부터의 영적 지식을 전달받아사 궁극적 실체인 아인소프로 돌아가는 것을 신앙의 궁극으로 본다.

세상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풀기 힘든 문제였다.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그 무엇은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툭튀한 것인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무는 무이기 때문에 무이다... 파르메니데스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가 원래 부터 있었다는 말인데, 원래부터 있게 된 그것은 어떻게 있게 된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던 그 궁극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주의 시원은 태허, 공이다. 그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데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태허는 분화하여 때로는 음과 양으로 때로는 천, 지, 인으로, 때로는 선과 악으로 분화하여 그것들끼리 조화하여 현상계를 만든다. 조물주는 원래 존재하다가 빛과 말씀으로 세상을 만든다. 원래 존재했었던 존재는 왜 갑자기 변심하여 세상을 만든 것이고, 태허는 왜 갑자기 음과 양으로 분화를 하게 된 것인가... 그 이전에는 무슨일이 있었는가... 인간 상상력의 한계는 그것을 넘지 못한다.

조로아스터와 마니교는 공통적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을 얘기한다. 태허의 신 아후라 마즈다는 우주를 창조한 후 이의 운행을 위해 선의 신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와 악의 신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를 창조하여 우주는 선과 악의 투쟁으로 운행된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둘의 궁극적인 전쟁, 아마겟돈은 선의 승리로 귀결되니 선하게 살라는 교리이다. 마니교는 이를 더욱 극단적으로 몰아부쳐, 물질로 된 악의 세상과 선한 영의 세상이라는 물질과 영의 대립으로 보고, 물질적인 모든 것을 악으로 보아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강조한다.

마니교의 물질과 정신의 대립은 영지주의(Gnoticism)으로 연결되어, 물질로 된 사상은 불완전한 신인 데미우르고스가 완전한 신 (프네우마)를 빌려 창조한 세상으로 본다. 따라서, 인간들은 물질적인 것을 멀리하고, 수련을 통하여 프네우마로 향하는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 구원이라고, 즉, 자력 구원을 얘기한다. 사실, 오강남 교수가 유튜브에서 많이 얘기하는 내용도 본질적으로는 영지주의 신앙에 가깝고, 현 기독교계는 이러한 영지주의를 상당히 위험한 이단의 한 부류로 취급한다.

물질 세계와 영혼의 양립성은 인류 역사 전체를 꿰뚫는 큰 철학적 주제이다. 물질을 넘어선 영혼의 세계,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 물질의 내부에 존재하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 현상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법계, 아트만, 브라만의 존재.. 인류는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이렇게 물질을 넘어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추구를 계속해 왔다. 물론, 물질 너머에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사실 물질이 왜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물질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진행형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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