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이방인, 시지프 신화 본문
티벳 승려들이 해마다 강가에 모여서 며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서 모레위에 지극정성으로 형형색색 아름다운 만다라를 완성한다. 그리고 조그만 의식을 치른 후 완성된 그것은 강물에 뿌려진다. 모든 아름다운 것, 모든 의미있는 가치들.. 그 본질은 "무"라는 사실,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이유는 "부조리"라는 단어에 이끌려서이다. 밴드에서 자주 만나는 단어이다. 어떤 이들은 불합리 혹은 불공정의 의미로 사용하고, 어떤 분들은 모순의 의미로 사용한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서, 그리고 책이 무지 얇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다. 경제력이 부족하신 분들은 책사진의 링크를 치면 김푸른솔이 옮긴 이방인을 읽을 수 있다.
이방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부는 뫼르소가 자신에게 생긴 일을 조용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기술한다. 단조로운 일상의 뫼르소에게 엄마의 죽음이 전해진다. 시신을 옆에 두고 커피와 담배를 마시는 등,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바로 그 다음날 우연히 만난, 전 직장 동료 마리와 코메디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포주로 알려진 이웃 레몽의 친구요청을 받아들이고, 경찰을 만나는 것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레몽이 애인을 폭행하는 것을 방조한다. 애인의 오빠(혹은 기둥서방)인 아랍인이 휘두른 칼에 레몽이 다치고, 복수를 하려던 레몽의 총을 우연히 건네받는다. 다시 해변으로 외출했다가 우연히 다시 만난 아랍인이 겨눈 칼에 비친 태양 빛의 눈부심... 의미없는 다섯발의 난사로 1부는 마감한다.
2부의 무대는 교도소와 법정이다. 그냥 정당 방어로도 풀려날 수 있었던 사건, 그 대상이 아랍 식민지인이었기에 작은 처벌로 넘어갈 수 있었던 간단한 사건은 뫼르소가 사건의 며칠동안 보인 이해할 수 없는 행적들로 인해, 복수를 위해서 고의적으로 친구의 총을 소지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계획 범죄로 결론 지워지고 단두형을 선고 받는다. 상고를 할 수도 있지만 20년을 더 산다고 해도 그 최종 형식은 동일하게, 죽음일 것이기에 포기한다. 사제가 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하자, 시종일관 담담하던 뫼르소는 소설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으로 소설의 막을 내린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저서로 나오는 순간부터 텍스트는 독자에게 그 만의 의미로 살아서 숨쉰다. 이방인 뫼르소에 대한 다양한 독법이 존재한다. 몇년전 이정서라는 소설가가 자신만의 독특한(당돌한) 독법으로 번역을 하면서 문학/철학계에 논란을 일으킨다. 누군가는 죽은 아랍인의 입장에서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피눈물도 없는 싸이코패스 뫼르소를 보며 누군가는 시스템에 의해서 철저히 소외되는 한 개인을 바라본다.
어떤 이들은 이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부조리한 인간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본다고 한다. 불합리, 모순이라고 단순히 이해하고 넘어 가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카뮈의 부조리는 무엇이었을까.. 대체 왜 카뮈는 한치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 정상인의 사고로는 전혀 이해 불가인 뫼르소가 바라본 세상을그리고, 왜 프랑스 젊은이들은 그러한 난해한 소설에 열광한 것인가..
샤르트르는 "이방인"을 읽고 며칠간에 걸쳐서 해설서를 쓴다. 시지프 신화와 대비하여 그가 이해한 부조리를 설명한다. "부조리는 하나의 사태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명석한 의식을 지칭한다. 통합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자연과 정신의 극복할 수 없는 이원성 사이의 분리, 영원을 향한 인간의 도약과 인간 실존의 유한성 사이의 분리, 인간의 본질 자체인 "근심"과 인간의 헛된 노력 사이의 분리 말이다. 죽음, 진리들과 존재들의 환원 불가능한 다원성, 실재하는 것들의 비가지성, 우연성, 이런것들이 바로 부조리의 중심에 있다."
내가 이해하는 뫼르소는 소설의 등장부터 퇴장까지 존재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세상을 덮고 있는 무의미한 의미 부여에 관해서 알고 있고, 침묵을 통하여 무의미한 의미들을 응시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 슬픈 일인가? 누가 슬퍼야 한다고 규정을 했을까...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음식을 먹기 전, 지금은 내가 너를 먹지만 내가 너였을 수도 있음을 읊조린다. 죽으면 시체는 독수리들의 먹이로 사용되기 위하여 들판에 버려진다. 죽음이란 슬픈 일인가..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면서 왜 태어나기 이전은 슬퍼하지 않는가? 셸리 케이건 교수가 얘기한다.
부조리는 단순히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을 통하여 카뮈가 인간 소외를 얘기하고자 한 것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형은 집행된다. 지금 죽던 20년을 더 산 후에 죽던, 결과적인 상태는 동일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태어나자 마자 죄인이고 나자마자 사형선고를 받는 것인가. 비존재를 위해서 태어난 존재, 수많이 양산되고 소모되는 무의미한 의미들의 사태 ... 아무리 노력해도 메꿀 수 없는 틈.. 부조리이다.
시지프의 신화의 첫 문장은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이고 마지막 문장은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봐야 한다"이다. 삶과 죽음이 양산되고 소모되는 세상.. 새로운 삶을 위하여 끊임없는 죽음을 만들어야 하는 세상.. 영원히 반복하는, 존재에 철저히 무관심한 자연들.. 그 안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무의미한 의미들.. 카뮈는 부조리를 얘기하면서 결국은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자는 무의미한 의미를 얘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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