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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물리학 단상..

existence_of_nothing 2021. 6. 10. 09:13

 

이제 바쁜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간다. 아마 이번주 안으로 대략 마무리 될 것 같다. 잠수의 기간동안 어려운 물리 내용은 보지 않았다. 사실,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남아 있는 것은 점점 어려운 것들 뿐이다. 기초적인 내용을 공부할 때에는 그 내용 위주로 설명을 하기에, 그리고 필요한 수학적 도구들의 수준이 높지 않기에 금방 금방 진도가 나가고,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나, 어느 분야이든 깊이가 깊어지면, 그 분야의 다양한 기초적인 내용들을 모두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즉, 여러 학문들의 융합이 필요하고, 특히 수학적 도구의 수준은 너무 높아진다. 사실, 지금까지의 공부만으로도 필요 이상의 깊이에 도달했다. 어차피, 현재 나이에서 공부해 봐야 전문가가 되지도 못할 것인데, 왜 이리 물리학이란 학문에 집착했을까.. 평범한 인생에서 약간의 일탈을 하고 싶었을까..

 

최근 1달 동안은 통계역학에 대해서 다양하게 공부해 보았다. 물리학의 각 분야는 모두가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여러 과목들에 있어서 어려운 주된 이유는 서로 다르다. 상대성이론은 사실 텐서이론만 공부하면 쉬운 내용이다. 그런데 텐서, 미분 기하학을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에는, 특히 수학적인 깊이를 가지고 이해하는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양자역학은, 선형대수학적인 기초가 탄탄하면 사실 누구나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양자 역학을 어렵다고 얘기하는 많은 이들은 실제로 도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어렵다고 느낀다. 기초적인 양자역학은 사실 고전 역학보다 훨씬 쉬운 편이다. 내용 전개가 지극히 수학적인, 탄탄한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 역학의 아름다움에 빠졌다고, 좀 더 깊이 공부해보겠다고 양자장론에 들어가면, 다시 교과서적인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무한대들, 그리고 수식적인 편리함으로 그들을 우리들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것... 사실 경로적분 자체가 수학적인 엄밀함이 없는 도구적 편리함에 불과하고, 현대 물리학 자체이니 양자장론, 게이론은 이것이 실제로 우주를 기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수학적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인지 혼동이 오게 만든다.

 

통계역학을 처음 공부할 때에 어려운 점은, 종속 변수들이 많다는 것과, 엔트로피의 개념이 다양하게 소개된다는 점이다. 고전 열역학에서의 엔트로피가 어떻게 확률 변수의 엔트로피로 연결되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쉽지 않다. 내용적 깊이보다도 표현적 다양성이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수많은 어려움 끝에 만나는 수학적 아름다움은 항상 이 길을 쉽게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그 아름다움이 볼츠만의 비극과 어우러질 때, 우리는 아름다움의 본질에는 고통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역학은 흔히 나비효과로 설명된다. 남미의 한 지역의 나비의 날개짓,, 그 단순한 날개짓에 의해서 시작된 연쇄 작용은, 수많은 자유도를 거치면서, 반대편 지역에 거대한 태풍을 유발한다는 것,, 이 세상은 전적으로 chaos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내가 읽은 Havard 통계 역학 강의록에서, 예로 드는 것은, 지구로부터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의 미세한 변화가 우주의 중력파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중력파의 작은 변화에 의해서 지구의 모든 분자들의 움직임 변화한다고 chaos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양자 역학의 확률성도 설명한다. 엔트로피는 자연의 무질서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정량화한 것이다. 이것이 엔트로피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양자 역학의 상태들은 기본적으로 unitary evolution을 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deterministic하다. 그러나, pure state, 즉 우리가 완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양자가 움직이더라도 곧, 환경, 주변과 양자 얽힘 상태에 들어가는데, 주변 양자 상태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기에, 실제로는 pure entangle state이지만, 우리들에게는 mixed state 처럼 보인다는 얘기이다. 관측은 시스템과 환경이 양자적으로 얽힌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고, 이 때 우리는 환경의 모든 상태를 알 수 없기에, random한 결과중 한 값이 관측의 결과 확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의 다양한 현상들 중, 중력/시간/엔트로피는 일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일방향성이 인간의 착각일 뿐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4차원 시공간에서 시간축은 공간축과 별 차이가 없는 하나의 좌표계일 뿐이다. 과연 시간이란 우리의 착시일까... 우리는 단지 존재하는 것들의 단면 단면을 시간축에 따라서 관찰하면서 흘러가는 것일까..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개념 자체를 우리가 충분히 납득하게 된 것, 혹은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100~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항상 모습을 바꿀 뿐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모습을 바꾸는 형태에도 제약이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비가역적인 방향으로 에너지와 정보가 변화하기 때문에,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가용 에너지는 항상 내려가게 되고, 언젠가는 무의미한 형태로 에너지는 존재하게 되며, 이 때에는 에너지의 의미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간만에 오전에 따뜻한 커피한잔 하면서 난해한 글을 올려본다... 이 글을 이해할 이들은 별로 없겠지만... 그것이 뭐 중요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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