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데카르트 본문
인간의 몸은 70~100조개의 세포와, 전체 세포 에너지의 20~30%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뇌, 이를 구성하는 1000억개의 뉴런 세포와 뉴런당 1000~10000개, 전체 약 100~조 개에 달하는 시냅스 연결이 존재한다. 세포안에는 다시 100조개의 원자가 존재하고 그 내부는 수많은 소립자, virtual particle들이 존재한다.
"나"가 존재하고 "나"가 생각을 한다는 것이라고 얘기하면 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일 수도 있다. 현대 과학이 말하는 나는, 나를 의식하는 생각이란 것은, 뉴런 세포들, 시냅스 신호 들간의 생존 경쟁에서 다수의 위치를 차지한 신호들의 찰나와 찰나의 연결일 뿐이다. 아주 오래전 붓다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우주를 뚫어지게 관찰한 결과, 이 단순한 사실, 존재와 인식의 허상을 직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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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1596-1650)는 프랑스 투렌 라에이에 지방의 한 귀족(고등법원 법관)의 아들로 태어난다. 18세가 되던 1606년 제수이트 교단의 라 플레슈 학원에서 학업을 시작하여 푸아티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1616년 법학사를 취득한다. 22세이던 1618년 세상에서 지식을 얻기 위해 군대에 입대하면서 여행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의학/수학자인 이삭 베크만을 만나 교류하면서 수학을 접한다.
데카르트는 1618년 30년전쟁(1618-1648, 신구교 사이의 종교전쟁을 빙자한 영토 분쟁)에 참여하는 도중,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따뜻한 난로가에서 사색에 잠겼다가 불현듯 보편학문의 정립에 대한 방법론에 관한 영감을 얻는다. 그 후 10년의 여행을 거쳐서 견문을 넓힌 후, 1628년 네들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후, 본격적으로 방법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 저술에 착수하여 1637년에 완성한다. 그 과정에서 메르센 소수로 유명한 메르센 신부와 1630년부터 서신교류를 하면서 형이상학, 해석기하학, 굴절광학, 해부학을 연구한다.
1637년 방법서설, 1644년 철학의 원리, 1949년 정념론을 출간한 후,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로 철학교사가 되지만, 젊었을 때부터 허약하던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폐암으로 1650년 54세라는 지금으로서는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은 마치 자서전처럼, 자신이 왜 현재의 학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떤 계기로 방법론적 회의를 하게 되었고, 왜 철학을 먼저 생각하였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사실, 철학자들 중,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이는 거의 없다. 특히,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이것이 남들 읽으라고 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자신에게 얘기하고자, 자신의 생각을 그냥 정리하고자 쓴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방법서설은 전체 6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기존학문/관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2부에서는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진리를 찾는 방법을 3부에서는 진리를 깨치기 전의 임시방편적인 행동원칙, 4부에서는 철학의 제 일 원리(cogito), 정신과 자아, 신 존재 등의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얘기한다. 5부는 자연학 (빛, 빛의 근원인 항성, 빛의 매질인 천공, 빛의 반사체인 행성/유성/혜성, 색을 띤 물체, 물체를 보는 동물/인간의 흐름으로 기술), 6부는 방법서설과 에세이들을 쓴 이유 등을 밝힌다.
그는 학문들 중 수학이 그 확실성/명증성으로 인해 타학문보다 뛰어나기에 수학적 방법론을 타 학문의 연구에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하학적 증명 방법 (단순하지만 확실한 사고들의 연쇄에 의해서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을 증명하는 방법)을 철학과 기타 학문의 연구의 기본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수학에서 너무 실생활과 동떨어진 관념적인 문제들을 다룬다고 비판한다. 철학은 학문의 토대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들이 모두 논쟁/의심의 여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한마디로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한다. 논리학은 새로운 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타인에게 설득시킬 뿐이라고 얘기한다.
모든 학문들이 다 문제가 있고, 기존에 배운 지식들이 확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진리의 탐구에 방해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한 데카르트는, 그냥 백지 상태/원점에서부터 차근차근 학문을 쌓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서 올바른 인식/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4 가지의 기초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1.명증성 규칙: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예를 들면 삼각형의세변의 합이 180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2.분해 규칙: 검토할 어려움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3.종합 규칙: 내 생각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해 마치 계단을 올라 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4.열거 규칙: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
“아주 어려운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하학자가 흔히 사용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근거들의 긴 연쇄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참이 아닌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간주하지 말며, 어떤 것을 다른 것에서 연역할 때 항상 필요한 순서를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 도달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숨어 있어도 결국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철학에 적용해 본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실재하는가? 생생한 꿈을 기억하는 이들은 꿈속에서의 상황이 실재 상황처럼 인식되는 경험을 기억한다. 그렇다. 뇌과학에서 신체의 절단을 경험한 이들이 겪는 환상통, 환상 사지를 얘기한다. 실재하지 않는 사지를 실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이 실재하는지 아니면 환상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기에 일단 의심한다. 여기서 의심이란 못 믿겠다는 의심이 아니라, 일단 명증성이 부족하다고 마킹을 하는 것이다 (방법론적 회의). 이러한 과정의 종착역은 뻔하다. 결국은 생각은 실재하는지에 도달하고 생각하는 무엇인가의 실재성은 명증 하다고 확신한다. “Je pense. donc je suis=Cogito ergo sum” 이라고 외친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데카르트가 멈춘 지점이 의심의 종착역은 아닐 것이다. 분명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인지 아닌 지도 사실 확실하지는 않다. 라캉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고, 고로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불교의 입장에서, 뇌과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생각은 피어난다. 뇌의 뉴런 세포들 간의 신호 경쟁에서 이긴 신호가 생각으로 피어나는 것이며, 이러한 생각을 잘 관측하면 생각은 매순간 탄생함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어쨌던, 이 단순한 세 단어, cogito erso sum 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 인간을 철학의 전면에 내세운 철학자로 업적을 인정받는다. 이제 명증한 나를 만들었다. 그러면 뭐하나, 다른 모든 것들이 불확실한데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할 때이다. 이제 신의 도움이 다시 필요하다.
“왜 세상에는 무엇인가 존재하는가?” 바닷가에서 시계를 발견하면, 그것은 이유없이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놀다가 그곳에 떨어뜨렸을 것이고, 그 누군가는 누군가와 약속이 있거나 즐기러 그곳에 갔을 것이고, 그 누군가는….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이것을 “충족이유율”이라고 부른다. 충족 이유율은 데카르트, 쇼펜하우어, 라이프니츠 등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사용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사실 그의 신 존재 증명을 보면, 그가 인격적인 신을 주장한 것인지, 보편적인 신 개념을 얘기한 것인지도 불확실하지만) 데카르트는 당연히 신이 어떤 이유 때문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신은 확실히 존재하는지, 신 존재의 명증성을 얘기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얘기한다. 아래에 그의 증명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의심하는 존재이므로 불완전함.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불완전한 존재의 관념에서 나올 수 없음.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나로부터 올 수 없고, 누군가 완전한 존재가 나에게 넣어 준 것임, 따라서 완전한 그 무엇(신)이 존재함.
- 내 안에 나보다 더 완전한 것에 대한 관념이 있음. 내가 스스로 존재했다면 나는 신일 것임. 나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나의 존재 원인인 무엇이 존재함. 정신과 물체의 합성체는 불완전하므로 신은 합성체일 수 없음.
-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이 삼각형의 개념속에 포함되어 있음은 명확함. 마찬가지로 가장 완전하나 존재의 개념속에는 존재가 포함되어 있음도 명확함.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함.
여러가지로 얘기했지만, 그의 주장은, 인간이 생각하는 관념은 존재하고,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인 신은 존재해야 하고, 그것은 인간과 같은 불완전한 존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부분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완전한 존재가 존재함이 명증하고, 완전한 존재가 이유없이 닭질을 했을리 없으니, 신이 만든 세상은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감각기관이 인지하는 이 세상은 레알일 수 밖에 없다… ㅎㅎ. 데카르트에게 애썼다 라고 토닥거리고 싶은 감정과, 쓸데없이 이산화 탄소 농도를 높였다고 비난하고 싶은 두가지 감정이 양립한다. 어쨌던 어차피 부조리한 인간들이니, 뭔 짓을 한 들 어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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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으로 대표되는 철학적 업적에 비해서 수학적 업적은 가려져 있지만 그가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라이며 Cartesian(직교) 좌표계가 그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용어란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살펴보면, 똑똑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인간이 참 독특하고 특이한 인간인 것을 느낄 수 있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디오판타스의 대수학은 별도의 학문으로 존재했다. 갈릴레오와 동시에 살던 그는 갈릴레이 재판의 영향으로 집필하던 “천체론”을 중단하고 1637년 그 유명한 “방법서설”을 출간한다. 그 책은 흔히 철학책으로 알려져 잇지만 실제로는 부록으로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세권)을 포함하고 있다.
종래의 기하학은 자와 캠퍼스로 직선과 원을 분할하고 도형들의 작도에 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였다. 직선이나 원을 대수학적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은 데카르트이다. 예를 들면, 삼각형의 세 점을 원점을 중심으로 한 (x1, y1), (x2, y2), (x3,y3)로 표현하고, 변과 변의 관계식을 대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 원과 타원곡선에 대한 방정식이 있다. 데카르트가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으려다가 방의 한점을 기준으로 파리의 움직임을 예측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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