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본문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1929~2007)의 철학은 단적으로 위의 제목과 같이 설명된다. 시뮬라시옹, 영어로는 simulation이다. 시뮬라크르는 현실의 모방본이고 시뮬라시옹은 모방 혹은 모의하는 과정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불법해킹 프로그램을 숨기는 책의 제목이 바로 그의 책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이다. 영화 내용을 의미하는 복선이다. 원본과 사본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세상에 관한 것이다.
라캉이 욕망은 타자, 즉 대타자의 욕망이라고 얘기한다. 주체의 빈자리, 구멍을 메우기 위하여 계속 무엇인가를 채우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다. 보드리야르는 그 이론을 발전시켜서 기호의 가치를 얘기한다. 현대 자본 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소비가 없이는 유지가 될 수 없다. 소비가 멈추는 순간 시스템은 무너지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제품은 제품 그 자체의 가치가 그것의 기호에 따라서 가치가 매겨진다. 단순하고 보잘것 없는 가방에 샤넬이라는 로고가 새겨지는 순간 그것은 원래 가방, 원본 가방보다도 더 실질적인 사본 가방이 된다. 여기서 사본이란 얘기는 원래 가방의 가치가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을 계층적으로 경계짓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으로서의 기능을 의미한다. 우리는 원본인 자신과 마주하기 보다는 쇼윈도우(타자)에 비친 사본을 바라보면서 자만감, 소외감을 느낀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알약을 권하기 전에 “자네는 꿈의 세계와 실재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나?”라고 묻는다. 가상의 공간과 실재 공간의 구별을 인간은 할수 있는가. 인식론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의 구별이 가능할까? 사실 현대 과학에서 얘기하는 것을 곰곰히 살펴보면 우리는 거대한 quantum simulator안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상 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는 없고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정확한 룰에 따라 simulation 되기 때문이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실재란 우리가 느끼고, 냄새 맡고, 볼 수 있는 것이며, 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라고 말한다.
가상 현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뇌 신호 해석과 로봇 팔을 결합하면 사물이 인간 신체의 일부를 이룰 수 있으며 그것은 실제 팔, 떨리는 팔보다도 더욱 정교하게 팔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섬세한 수술에 현재 다빈치같은 로봇팔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떨림 보정 기술을 사용하기에 의사의 팔보다 더욱 정교하게 수실이 가능하다.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타인과 시각과 청각 그리고 손가락 감각으로 느끼면서 머리속에서 상대방을 그리고 생각을 교류한다. 우리는 이미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 살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유명한 말 중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 있다. 걸프전은 CNN에서 이라크를 향해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악의 무리 후세인을 정의의 편인 미국의 전투기와 첨단 무기들이 공습하여 전쟁은 순식간에 종료된다. 미국민은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고 걸프전은 종료된다. 이러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 전쟁의 참상 등 실재하는 원본들은 사라지고 미디어가 만든 가상의 사본들이 원본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는 만들어진 진실을 진리처럼 믿는다.
사본과 원본의 구별이 어려워진 세상,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어려워진 세상, 물신이 신을 대체한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선택하여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쉽지 않다.
============== (보충 혹은 중복) ==============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 주의 해석부터 철학을 시작한다. 마르크스 주의는 하부 경제 구조 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상부구조를 분석한다. 잉여가치와 재화의 교환이 경제활동의 시초인데, 초기 봉건 사회에서는 교환가치<사용가치이다가 산업 업 생산시대에 들어서 교환가치>사용가치로 역전된다. 마지막으로는 생산의 대상이 아닌 지식/도덕성/애정같은 것도 교환의 대상이 되면서 총체적 부패의 시대로 접어든다.
보드리야르는 앞서의 두번째와 세번째의 전이과정에 질적이니 변화가 생긴다고 얘기한다. 즉, 단순히 생산의 결과물로서의 문화 상품이 아니라 기호와 코드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대로 움직이는 사회로 전환되는 paradigm shift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을 생산의 수단으로서 파악하던 마르크스 주의는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이론은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라는 기표와 기의가 밀접하게 연관된 단순한 한 도식으로 해석한다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어 떠다닌다. 우리가 샤넬이나 루이비퉁을 떠올릴 때, 우리는 단순히 그 가방의 효용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 상품의 가치에 노동력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다. 그것보다는 이미지와 기호로 그려지는 표상의 가치가 높다. 금융상품의 경우, 노동 수단과 그 가치의 일대일적인 연결은 불가능하다.
현대 사회는 기표와 기의는 유리되어 있고, 기표(이미지)가 기의(상품자체)보다 더 우선시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진본이냐 아니냐의 구별은 미술/골동품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큰 의미가 없다. 사본의 생성은 먼저 기호와 상품이 단순하게 연결되고 ("가방"과 가방 그 자체), 기호가 실체를 은폐/왜곡하는 단계를 거치고 ("샤넬), 본질적 실체를 은폐하여 (루이비퉁은 일상 들고다니는 가방이 아니라 장신구처럼 여겨진다) 최종적으로 기호와 실체는 분리된다 (가방은 신분 과시의 도구일 뿐 ^^).
보드리야르의 말로는 "모사품은 부재를 현전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상상을 실제로 내보임으로써 현실계를 상상계 속으로 흡수한다"고 얘기한다. 이데아와 현상계의 구분이라는 플라톤의 얘기는 현대 사회에서는 실재가 아니라 실재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초실재(hyperreality) 사회에서는 그 의미를 잃는다. 우리가 명품 가방을 가지고자 할 때,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방이 아니라, 그 가방이 만든 (실재하지 않는,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호(기표)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선전한다. 그것은 권력과 관계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조작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역사적 진화나 변화에 따라 이미 주어져 버린 현대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형태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호명, 혹은 들뢰즈의 anti-Oedipus, 푸코의 지식과 권력의 관계등등.. 이러한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은폐/왜곡된 구조적 형태에 관한 여러 유사한 얘기들이 있다.
보드리야르를 포스트모더니스트로 규정짓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어떤 한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기가 어려운 사회학자, 철학자이다. 그에게서 일견은 구조주의적인 부분이 느껴지고, 일견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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