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사회학자 뒤르켐 본문
사회학자 뒤르켐(1858-1917)
사회학은 과학인가?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자연과학의 입장에서는 재현 불가능성 때문에 과학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포퍼모델, 즉 이론적 가설을 세운후 경험적 증거들을 수집하고 반례가 제시되는 가설을 파기하는 형태로 연구한다면 과학적 방법론은 따른 것일 것이다. 사회학이 창시된 것은 에밀 뒤르케임의 공로가 크다 (원조는 콩트이지만, 사회학적 연구방법론은 뒤르케임이 확립한다). 저서나 논문의 인용지수를 보면, 뒤르케임의 논문이 상당히 높게 나오고 사실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얘기가 궁금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막스 베버와 함께 사회학의 양대 거두로 불린다.
인문학은 차치하고 사회학에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실험을 하기는 어렵고, 그 결과를 보편적인 법칙으로 인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사회학은 여러가지 이론들 및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두고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예전에는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면,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도입된 후에는, 인간들의 행태나 사회가 생각만큼 복잡하거나 무작위적이지 않고 집단적 의식 수준에서 유형화/분석화가 가능하다고, 즉 과학적 분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을 전개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사실들을 분석한다. 사회적 사실은 "개인에 외재하며 개인을 통제하는 강제력을 갖는 행위, 사고, 감정의 방식으로 구성"된다. 외재적의 의미는 개인들이 (사회적) 기존 신념, 가치, 규범의 체계내에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구속하고 강제한다. 그의 방법론에 따르면 기존의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명확히 연구 대상을 한정하고 “사회적 사실을 사물로 간주”한다. 그 후 사물들간의 인과/상관 관계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검증한다.
진화냐 변화냐는 진화론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다. 어쨌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변이들이 발생하고 단세포 혹은 작은 세포의 결합체가 오늘날에는 고도로 전문화된 세포들 간의 분업체계로 구성된 고등 생물을 탄생시켰다. 사회를 생명체와 같은 하나의 유기체로 볼 것인가 아닌가도 사회학의 쟁점 중 하나일 것이다. “사회”라는 보편자가 실재하리라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이겠지만 뒤르케임 같은 구조주의 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사회는 유기체처럼 묘사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사회 실재론자로 보기도 한다.
뒤르케임은 “분업론”에서 억압적 법률과 보복적 처벌위주의 전통적 사회가, 세분화된 분업 구조에 기반한 배상적 법률기반의 근대 사회로 이행됨을 얘기한다. 전통 사회의 기계적 연대는 분업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사회 공통의 신념과 감정들을 개인에게 강제하고 개인의 자율성은 억제된다. 그러나 산업화/분업화가 심화됨에 따라, 개인들은 기존의 동질성 기반의 집단 의식은 사라지고 개인들 상호간의 필요성에 기반한 유기적 연대가 요구된다. 뒤르케임은 사회의 법률과 형벌 시스템을 연구함으로써 그 사회의 연대의 성격을 파악한다. 즉, 기계적(전통) 사회의 법률은 주로 종교/집단규범에 관한 것이며 억압/감정/보복적인 처벌이 많은데 비해 (분업화에 기반한) 유기적 사회는 행정/계약과 같은 개인들의 자유/행동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과 개인의 보호를 위한 처벌이 많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상당히 세분화된 분업 구조에 의존한다. 분업의 장점은 효율성이다. 그러나, 챨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 풍자했듯이 현대의 세분화된 분업 구조는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시스템의 한 부속품처럼 취급할 우려가 있다. 분업으로 인한 인간 소외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자와는 달리, 뒤르케임은 분업이 개인의 전문화를 야기하여 일견은 개인과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증가하여 유기적 연대가 가능하게 되는 순기능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한 인간 소외를 가져오는 아노미적/강요된 분업이 아니라 도덕적 공동체에 의해서 잘 제어된 분업을 의미함은 당연하다.
뒤르케임은 상속제가 부의 세습에 의한 경제 구조의 고착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전 근대적인 신분제도와 같이 역사의 진보와 함께 곧 소멸될 제도라고 예측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구조적인 경제적인 불평등, 태어나자 마자 로또처럼 운명이 결정되는 비합리적인 제도는 고뇌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도 그의 예측과는 다르게, 물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상속세에 높은 세율을 매기지만, 부의 세습과 경제 기회의 불평등은 지속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윤리적 기반을 마련한 베버 조차도 세속에 의한 부의 축적은 반대한다.
뒤르케임은 사회적 "자살론"을 얘기한다.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판단, 우울증 같은 병리적 원인에 의한 자살 중,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사회/문화적 구조에 의해서 강제되거나 유도된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이 대두되기 이전에 방대한 사회학적인 사료와 증거들에 기반하여 개인의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론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어 떤 사회의 집합의식이 과도하게 높거나 혹은 낮을 경우에 자살률이 높아진다. 자살은 크게 이기적(egoistic), 이타적(Altruistic), 아노미적(anomic) 혹은 숙명적 자살(fatalistic suicide)로 구분된다. 집합의식이 너무 낮으면 개인주의가 팽만하면 소속감을 잃은 개인의 이기적자살, 너무 높으면 자살특공대/순교/명예자살등 신념을 위한 이타적자살, 시대나 환경의 급격한 전환기에 가치관이나 사회규범의 혼동이 생기면 아노미적(무규범적) 자살(잊혀진 연예인, 실직인의 경우),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압력/통제 상황에서 자살 (포로/죄수/노예)이 증가한다.
사회적 자살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회의 결속력을 좀 더 강화할 수 있는 “조합”, 사회 공동체의 활성화를 얘기한다. 뒤르케임의 자살론은 사회구조와 자살의 인과적인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의미가 크지만,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살의 큰 원인 중 하나인 우울증이 뇌의 구조적인 병변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고, 자살의 순간의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 상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자살률이 OECD 내 독보적인 1위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는 현재 상당히 병들어 있고, 그 병을 내부적으로 치유하려는 의지조차도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뒤르케임은 사회학을 창시했으며, 사회를 과학적/실증적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 사회학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 구성원들과의 끈임없는 교류, 사회 구조적인 제도/관습/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주체가 형성된다. 구조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면, 주체는 사회적 구조에 의해서 형성되며, 개인개인의 자율성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물분자 하나하나는 모두 개별적으로 행동하지만 30도의 물은, 개별 분자들의 다양한 운동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계몽주의는 신을 제거하였지만, 그 빈 자리에 적절한 뒤르케임이 말하는 도덕적 사회 규범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 틈을 타서 자본주의 물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모두가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에 의해서 생성된 대타자의 욕망일 뿐인데, 인간들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원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철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르그성, 반지성주의 (1) | 2021.04.22 |
---|---|
철학 단상 (0) | 2021.04.20 |
아우라, 벤야민 (1) | 2021.04.19 |
하버마스 (0) | 2021.04.17 |
계몽의 변증법 -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0) | 2021.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