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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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이론

휠러의 지연된 실험

existence_of_nothing 2021. 6. 25. 10:00

 

물리학 혹은 과학을 연구하시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 특히 대가들은 철학이나 담론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자기들의 리그에서 연구논문들을 통하여 생각을 주고 받으며, 연구를 접을 때쯤, 한가해지면 일반인을 위한 대중서를 집필하거나 한다. 그 이유는 과학자들끼리는 수학이란 언어로 대화를 하고, 일반인들은 일상언어로 내용을 이해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일반언어로 대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아예 처음부터 과학보급에 관심이 많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킨스 같은 분이다. 에드워드 윌슨이 "지구의 정복자"에서 다수준 선택설 혹은 집단선택설을 다시 도입하여 많은 진화론자들에게 공격을, 특히 도킨스에게 공격을 받을 때, 윌슨은 "그는 나를 비판할 자격이 전혀없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무시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철학자들이 담론을 펼치기에 아주 좋은 주제 중 하나이다. 깊은 이해와 물리학자들과의 담론을 위해서는 깊은 수학적 배경이 필요하지만, 철학자들이 그러한 도구를 갖추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결론 부분을 가져와서 그 의미를 나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두개의 물리학 분야는 과학적 담론과 철학적 담론이 부딪히기 참 좋은 곳이다. 많은 경우, 물리학 분야의 많은 이들은 철학을 신학과 같은 수준으로 대한다. 방법론적인 접근법이 전혀 다른, 따라서 논쟁의 결과 별 생산적인 내용을 건질 것이 없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물론, 와인버그나 펜로즈, 데이비드 붐, 마흐같이 양쪽에 모두 관심을 가진 분들도 있긴 하다.

 

20세기에 들면서, 새로운 현상, 자연에 숨겨진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인간들은 자신들이 참으로 이상한 세상에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도저히 고전 역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설명할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 아인슈타인같은 당대의 에피쿠로스는 상식, 직관이라는 관념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물리학에서 실체란, 실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인과율을 살려두었다. 즉,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 과거와 미래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그러한 최소한의 직관, 인과율 조차도 버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미 벌어진 일이, 현재의 관측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타키온 입자, 즉 space-like 궤적을 그리는 입자가 존재하는 경우, 인과율이 깨어진다고 얘기한다. 왜 그럴까? 당신이 그것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특수 상대성이론의 본질을 잘 이해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번 체크해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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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측자 효과를 잘 알고 있다. 이중 슬릿 실험은 2개의 구멍을 가진 슬롯에 광자나 전자를 쏘고, 그 뒤에 감지판을 설치하여 측정하는 실험이다. 잘 알다시피, 입자의 파동성으로 인해서 간섭 무늬 패턴이 생긴다. 입자의 파동성이 놀랍긴 하지만, 그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가 2개의 구멍에 센서를 설치하여, 어떤 구멍으로 입자가 지나간 것인지 측정을 하면 갑자기 간섭무늬가 사라진다. 파동이 입자로 변한 것이다. 관측자 효과이다. 입자는 관측자를 분명히 의식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존 휠러가 1978년에 재미있는 사고 실험을 하고 2007년에 실제로 실험(

"Experimental Realization of Wheeler’s Delayed-Choice Gedanken Experiment")

을 한 휠러의 지연된 실험(Wheeler's delayed choice experiment)이 있다. 실험내용은 이중 슬릿 실험의 변형이다.  아래가 구성도이다. 먼저 photon을 1개씩 쏜다 (이것이 가능할까라고 상상하신다면 현대 공학의 수준을 과소평가한 분일 것이다). 이 광자는 BS_input라는 beam splitter를 만난다. 2개의 경로로 갈라진 광자는 거울을 거쳐서 두번째 beam splitter BS_output을 만나서 재결합한다. (splitter는 combiner로도 동작한다).

 

 

만약 경로 1,2가 30만 km 떨어져있고(따라서 BS_input에서 BS_output에 도달하는데 1초가 소요되고), BS_output을 0.5초 안에 switching을 하여, 켤 수도 있고, 없앨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입자가 BS_input에 도착한 시점에, 입자는 입자로 행동할지 파동으로 행동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BS_output에 단순히 검출기를 두느냐 (입자), splitter를 두고 검출기를 두느냐(파동)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면 그 해석이 어렵다. 분명히 BS_input시점에, 즉, BS_output을 결정하기 전에 입자의 성질은 결정되어야할 텐데, 입자가 BS_input을 통과한 후에, 미래의 관측결과에 따라 과거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번에 위의 설명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라.

 

 

즉, 현재 이 시점의 행동, 관측 방법의 선택이, 입자의 과거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이러한 이상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사고 실험의 핵심이다. 우리는 무한대의 가능한 과거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이전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신 분은 거의 없겠지만, 이 포스팅을 봤다면 약간의 의미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비슷한 얘기로 양지 지우개라는 현상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위의 글도 있고, 이전에 제가 올린 관련 글도 있다. 그 두 개는 비슷한 얘기를 한다. 과거에 입자로 출발한 양자가 현재 관측되는 시점에서 파동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은 스핀 업 상태로 출발한 양자가 관측의 시점에 업/다운 중첩 상태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현재의 관측 결과가 과거의 실존을 바꾼다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기때문에 존재론적으로 흥미있는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의 해석, 코펜하겐파의 해석은 간단하다. 관측의 순간에 실존은 결정된다. 즉, 우리가 관측하기 전에, 정확히는 외부 세계에 의한 파동함수의 교란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양자는 어떤 상태라고 묘사하던 세상은 설명되기 때문에 그 상태가 결정되지 않는다. 더 이상 사족이 필요없다. 물리학자들에게는 딱 그만큼의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도 양자역학의 설명, 다수들이 채택하는 코펜하겐적 해석, 이 이상함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파인만 교수가 "양자역학을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은 그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얘기한 것이고, 그 말의 의미는 양자역학을 깊이있게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이해한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은 그 해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리학은 "관측을 토대로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그 목적이 있고, 해석의 의미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상을 복소수로 묘사하는 것이다. 복소수는 세상에 실제하지 않는 수이지만, 모든 이공계 사람들은 대부분 복소수 신호나 함수로 현상을 기술한다. 

 

사실, 양자역학의 많은 소동들은 그 근본에는 양립이 어려운 파동성과 입자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데 있다. 입자는 (t.x)라는 공간에서 어떤 일정한 면적에 존재하는 것이고 파동은 원래 매질의 운동이며 그것은 공간에 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닷가의 파도를 보고, 누구던 물방울 하나가 파도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전자와 광자가 입자이면서 파동일수 있을까? 사실, 양자역학과 관련된 많은 혼동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두개의 얽힌 상태의 양자를 하나는 여기에 하나는 100억 광년 떨어진 곳에 두자. 두개가 서로 상보적으로 즉, 하나가 1이며 다른 하나는 0이 되도록 얽힌 상태의 양자라면, 여기있는 양자를 관측을 통해서 1이라고 판정하면 100억 광년 떨어진 광자는 그 즉시 0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1이라고 측정을 한 결과, 인과적인 관계로 100억 광년 떨어진 양자가 0이 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상대성 이론의 위배, 즉, 정보 전달 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 없다에 위배이다.

 

정확한 해석은 지리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그 두개의 양자는 측정전에는 하나의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측정을 하여 파동 함수의 붕괴가 발생하면 그 존재는 별도로 행동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가 너무 이상하게 들리는가? 그 이상한 정도는 정확히 wheeler의 지연된 선택, 혹은 양자 지우개가 이상한 정도이며 똑같이 파동이면서 입자가 이상한 정도이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인간은 세상을 설명하는 몇가지 방법만을 개발할 뿐이다. 그 중 몇가지 방법은 직관에 위배되지만 그 이상 세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 없다면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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