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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중국 고대 역사 요약

existence_of_nothing 2021. 9. 13. 10:35

 

중국 역사는 삼황(복희/여와/신농씨 혹은 천황/지황/인황씨) 오제(황제/전욱/제곡/요/순)에서 시작한다. 삼황은 사실 건국신화에 해당하기에 사마천의 사기는 오제부터 중국역사로 보고 있지만, 사실 삼황 오제 전체가 "카더라"수준의 역사이다. 최근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삼황 오제를 실제 역사로 부풀리려는 우려가 있다. 복희는 주역의 팔괘를 만들고 주문왕과 공자의 해설이 더해져서 주역이 완성된다. 팔괘는 건(乾: ☰, 하늘), 태(兌: ☱, 연못, 늪, 뻘), 감(坎: ☵, 물), 이(離: ☲, 불), 진(震: ☳, 우레), 손(巽: ☴, 바람), 간(艮: ☶, 산), 곤(坤: ☷, 땅)으로 자연을 표현하는 8가지의 모습을 의미한다.

 

요순시대는 아직 제대로 된 왕국의 형성이 이뤄지기 전의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가족에게 통치권이 세습되지 않고, 인재를 발탁하여 통치권을 위임했다. 요순시대 후, 하왕조(BC2070~BC1600)가 들어서면서 왕위세습, 즉 계급 사회로 진입한다. 이 시기는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400년간 존속 후, 주지육림(酒池肉林)에 찌던 걸왕을 마지막으로 은왕조(BC1600-1046)가 시작된다. 하(夏)나라도 문자기록이 없고 구전만되는 전설의 역사이고 은왕조부터 역사상 기록이 있는 최초의 국가이다.

 

은나라는 상나라라고도 불리며 거북 등 껍질을 이용한 갑골문자로 기록이 전해지는 중국 최초의 국가이다. 은왕조는 여성의 권력이 강한 모계사회였기도 하다. 19대 왕인 반경이 도읍을 은허(하남성)로 옮기면서 은나라를 번성시키지만 하나라 걸왕과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주왕이 애첩 "달기"에 빠져서 폭정을 일삼다가, 주(周)나라의 무왕에게 멸망당한다. 이와 관련, 사기열전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강태공의 일화가 나온다. 은(혹은 상)나라의 역사기록도 오랜기간 부재하다가 19세기말 한약재로 몰래 거래되던 거북껍질에서 우연히 문자를 발견함에 따라 역사적 실체가 밝혀진다. 

주나라(BC1046-256)는 중국역사상 가장 오래 존속(790년)한 나라이다. 주나라의 성립 과정에서 공을 세운 공신/친족들에게 봉토를 나눠주면서 중국에서 봉건제(천자,공/후/백/자/남, 군/경/대부/상사/중사/하사)가 시작되고 철기사회로 돌입한다. BC841년전까지는 혼란으로 인해 사료들이 사라져서 기록이 부재하고 그 이후부터의 기록으로 추정한다. 이때를 공화시대(共和時代)라고 칭한다.

 

은나라 걸왕의 애첩 "달기"가 포락지형(炮烙之刑, 달군 구리판위를 걷게 하는 고문)으로 악명이 높은데, 주나라 유왕의 애첩 "포사"는 국가 긴급 연락망인 봉화 장난을 즐겼다. BC771년 견융이 유왕의 폭정을 핑계로 주나라를 침공하자 봉화를 뛰웠지만 아무도 원군을 보내지 않는다. 견융의 침공을 피해 평왕은 호경에서 낙읍(낙양, 뤄양)으로 도읍을 옮기는데, 그 이전을 서주(BC1046-771), 이후를 동주(BC770-256)시대라고 부른다. 동주시대는 흔히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BB770-221)라고도 불린다.

 

춘추시대는 공자의 "춘추"라는 역사서에 실려있기에 그렇게 명명된다. 천자로서의 주나라 왕실의 권위는 사라지고,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는데 가장 세력이 쎈 다섯 제후를 춘추오패(제(환공),진(문공),초(장왕),오(부차),월(구천)나라)라고 부른다. 이후 전국시대에는 진나라가 한/위/조의 세나라로 분리되며,  칠웅(진, 위, 조, 한, 연, 제, 초나라)이 세력을 떨친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 왕실을 명목상으로는 존중하였지만, 전국시대에 들면서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시대에 돌입한다.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다양한 사상/철학이 피어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학문의 전성기(유가/도가/법가/묵가)이기도 하다. 

 

춘추시대 최초의 강자(패자)는 재상 관중(관중과 포숙아 고사)의 활약으로 제나라 환공(BC 685-643)이었다. 환공 사후 제나라는 쇠약해지고,  우여곡절끝에 왕위에 오른 진나라 문공 (BC 636-628)의 치적으로 진나라가 한동안 패자가 된다. 그 다음은 불비불명(不飛不鳴), 절영지연(絶纓之宴) 4자성어를 남긴, 초나라 장왕(BC 613-591년)이 패권을 잡는다. 장왕 사후, 뚜렷한 패자가 없는 상황에서 신흥 강국들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패권을 다툰다.

 

간신 비무기의 모함으로 초나라 평왕을 피해 오나라로 망명한 오자서의 도움으로 합려(BC 514-496)는 오나라 왕에 오른 후 손무(손자병법)를 등용시켜 패자로 등극한다. 오자서는 평왕의 시체에 복수를 하면서 유명한 "일모도원(日暮途遠)" 고사를 남긴다. 합신흥강국 월나라를 제압하기 위해 공격하지만 범려/문종의 도움으로 월왕 구천(~BC464)은 오나라를 퇴각시킨다. 이 전쟁에서 화살을 맞고 후유증으로 병사한 합려는 아들 부차(~BC473)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부차는 밤마다 장작 섶위에서 잠을 자며 이를 되새긴다. 구천은 선제공격을 하다가 대패하고 부차의 노예가 되는 굴욕을 겪으며 쓸개를 먹으면서 복수를 꿈꾼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 얘기다.

 

범려와 구천은 몰래 월나라의 국력을 신장시키고, 중국 4대미녀(서시/왕소군/양귀비/우희)중 한명인,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침어)를 부차에게 보내는 등, 잦은 북벌로 기력이 쇠한 오나라를 침공할 기회를 엿보다가 끝내 오나라를 제압한다. 범려는 월나라의 전성기에 가산을 챙겨서 조용히 사라지며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명언을 남긴다. 일모도원, 오월동주, 와신상담, 토사구팽, 오월과 관련된 고사성어들이 많다. 

 

전국 7웅중 위/제/진 세나라의 세력이 강성했다. 이회/오기/악양/서문표등의 인재들을 등용한 위나라 문후(BC445-396)가 최초의 패국이 된다. 이후, 손무와 합께 중국 병법의 두 원조 중 한 명인 손빈(BC382-316)을 등용한 제나라가 주변 조나라와 위나라(마릉전투)를 격파하며 위력을 떨친다. 손빈은 손무의 5대손이고 그둘을 손자라고 부른다. 손자 병법의 원조는 손무로 불리고, 별도로 손빈병법이 최근(1972)에 발견되었다. 진나라는 법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상앙"을 등용하여 법가사상 기반하에 부국강병을 추진하며 국력을 신장한다.

 

중국역사에 진나라는 여러번 등장하고 춘추전국 시대에도 진나라는 2개 (晉, 秦)이다. 이 중, 晉나라는 전국시대에 위/조/한의 삼진으로 분할되고 중국을 통일한 것은 秦나라이다. 진나라의 세력이 다른 6개국에 비해서 월등히 커지자, 중원의 다른 6개국들이 세로로 연합하는 합종(장의가 주장),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진나라가 종으로 각 나라와 별개의 연맹을 맺어 합종을 격파해야한다는 연횡(소진이 주장), 합종연횡(合從連衡)의 어지러운 상황이 이어지다가, 한/조/위/초/연/제의 순서데로 차례로 합병하면서, 마침내 진시황 (BC220-210)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다 (BC 2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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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의 문명은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한 청동기 문명 (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함)에서 시작한다. 대략 BC 3000년 경에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당시 벌써 문자를 사용하고, 모계중심사회였으며, 외국군의 잦은 침략으로 BC1500년경 멸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BC1700년경 그리스 청동기 문명인 미케네 문명이 시작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여러 기록들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 직접적인 기록들은 부재하지만, 일부 고고사적 유물은 존재한다. 북쪽 도리아 인들이 남하함에 따라 BC1200년경 멸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도리스 인들이 남하하기 시작한 BC1200년부터 800년까지를 그리스 암흑기라고 부른다. 혼란으로 인해 문자화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스 인들이 철기를 사용했기에 그리스 철기시대가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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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0C~14C년경 크레타섬의 청동기 문명을 미노아 (혹은 크레타) 문명이라고 부른다.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이 (BC17C-12C) 번성하다가 철제 무기를 앞세운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그리스 신화에 크레타섬의 미노스가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에게 바칠 제물을 위해서 아테네를 침략하고 아테네의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이기 위하여 미궁에 갈 때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가는 내용이 나온다. 기원전 그 시대에 이미 상하수도 시설까지 완비된 건축물들은 로마가 그대로 모방한다. 

 

정확한 연도는 불명확하나 대략 BC1194-1184 청동기 시대에 트로이와 그리스연합군간의 트로이 전쟁이 발생한다. 신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를 놓고 다투던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 중 파리스가 예쁜 언니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아프로디테의 손을 잡음으로써, 아프로디테는 하고많은 처자들중 남(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을 지명하면서 전쟁이 시작하고 10년동안 지속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얘기로는 파리스는 찌질하게도 납치후 이집트에서 표류중 헬레네를 뺏기고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다).  

 

BC11C-BC8C 경의 그리스의 역사는 기록이 없다.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미케네 문명은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의 기록은 유명한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기록이 있다. BC776년에 열린 첫 올림픽때부터 BC 332년 미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정복전까지를 찬란한 그리스 시기로 본다. 그리스 시대의 수학/철학/건축/종교 많은 부분은 후대 유럽 전체의 역사를 관통하여 나타난다. 서양사의 이해에 헬레니즘(그리스와 그 주변 문화)과 헤브라이즘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리스는 1천개이상의 폴리스로 이루어진 도시 국가 연합체였다. 물론,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역사의 중심이다.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체제(BC9C)에 의해서 전국민의 전사화가 진행된다. 약한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죽이고, 모든 남아들은 집단생활을 하고, 혈통좋은 남자는 기혼녀와도 섹스가 가능한 등.. 아마 역사상 이러한 호전적인 집단은 다시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 아테네는 드라콘법 제정(BC641), 현인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BC594), 도편추방제 도입(BC487) 등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페리클레스(BC495-492)에 의해서 완성시킨다.

 

그리스 시대에 큰 전쟁은 두개가 있다. 하나는 (BC490~479년) 페르시아, 다른 하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404)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1차 마라톤 평원 전투,  2차 영화 300 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BC480)등 두차례 발생했으나, 모두 해군력의 우세(살라모스  해전등)를 바탕으로 그리스 동맹이 승리한다. 이에 페르시아의 침공 예방을 위해서 BC478년 델로스 동맹을 만들지만, 아테네의 독주로 동맹은 깨지고 스파르타는 이 틈을 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선포한다. 1차 전쟁은 421년에 양국의 휴전으로 종료되고, 2차전쟁은 BC413년 시작되어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종료된다. 투키디데스(기원전 465년경~기원전 400년경)는 저서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얘기한다. 이후 테베가 스파르타를 무너뜨리고 지배권을 차지하지만 이내 알렉산더에게 BC 337년 멸망한 후 BC 148년에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다.  

 

BC 6C부터 BC 3C 까지  헬레니즘 문화는 꽃을 피운다. 이 당시 그리스와 그 주변 국가에서 수많은 뛰어난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자연철학/수학 분야의 꽃을 피운다. 고대 철학은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눠진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 대해서는 이전 게시글에서 이미 다루었다. 흔히 그리스 시대의 민주정치를 우민정치라고도 한다. 우수한 인재라도 정적이라도 판단되면 시민들을 선동하여 도편추방제를 통해서 나라 밖으로 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는 이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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