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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불교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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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베다에는 33가지 종류의 신들이 나온다. 대지의 여신 프리비티, 불의 신 아그니/브리하스파티/소마, 공중의 신 인드라/루드라/마루트/바유/프라자냐, 천상의 신 수르야/우샤스/사비트리/비슈누/바루나, 우주의 설계자 다트리, 명령자 비다트리, 창조주 비슈와카르, 믿음의 신 슈라다, 태양 신 드아유스...범아일여의 힌두교의 바탕인 베다의 시작은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다신교로 출발한다. 인도/이집트/그리스 신화 모두에서 자연 현상에 대응하는 여러 신들이 나타난다.
원래 힌두교의 3대신은 우주의 창조자 브라흐마, 우주를 관장하는 비슈누, 우주의 파괴자 시바이다. 이 중, 정작 창조자인 브라흐마는 존재감 0이고, 시바와 비슈누가 실권자이지만, 현재 인도에서는 거의 유일신의 개념으로 비슈누라는 신을 믿고 있다. 이 3중 시바는 베다에 이름도 언급되지 않고, 비슈누도 태양신으로 수많은 신 중 하나로 취급되었지만 후기에 힌두교 사상이 정립되면서 이 세신들은 다른 신들을 제치고 3주신으로 등극한다. 3주신을 제외한 신들 중에는 인드라가 가장 높은 서열이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는 BC322년 찬드라 굽타가 세운 마우리아 왕조이다. 인도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여러 부족들의 작은 왕국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마우리아 왕조와 이슬람 왕조인 무굴 왕조에서는 거대한 통일국가를 이룬다. 갠지스강 하류의 마가다라는 작은 왕국에서 시작하였지만 난다 제국의 마우리아라는 이름의 크샤트리아 계급의 찬드라 굽타가 인도 북부 대부분을 통일하고, 빈두사라와 아쇼카 왕에 이르러 남부 인도까지의 거의 모든 인도 영역을 통일한다.
알렉산더 사후(BC325) 마케도니아가 인도를 침략하러 왔다가 베아스강에 이르러 병사들이 지치고 거대한 코끼리 부대와 상대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자, 일부 병사를 남기고 철군한다. 이 틈을 타서 찬드라굽타는 재상 차나키야의 도움으로 펀잡 지역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난다 제국 등, 북 인도 전 지역을 통일한다. 통치 25년 나라가 기근에 빠지자 아들 빈두라사에게 왕위를 양도하고, 자이나교 수행 중 아사한다. 자이나교의 최고 수행의 경지는 무소유, 무살생으로 굶어죽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빈두라사는 부왕으로 부터 받은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동쪽의 작은 왕국 칼링가와 남쪽의 타밀 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하고, 뒤를 이은 아쇼카(BC273-232)는 이 두 지역마저 통일한다. 부왕의 위중 소식을 들은 아쇼카는 수도 파탈리푸트라로 달려와 99명의 형제 전부를 살행한 뒤 왕이 된다. 또한, 칼링가라는 작은 왕국이 끝내 굴복하지 않자, BC261년 대군을 이끌고 전체 주민을 학살한다. 선군의 대명사인 아쇼카도 원래부터 그렇게 착하지는 않았다.
전투가 끝난 후, 위대한 과업을 확인 차 칼링가를 돌던 그에게 황량한 벌판에 널부러진 수많은 시체들, 본인의 과업의 결과인 잔혹한 현장을 보면서 그는 깊은 상념에 잠긴다. 이 후 불교에 귀의한 아쇼카는 더 이상의 정복 전쟁을 중단하고 살생을 금하는 인도주의 정책으로 전환한다. 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아쇼카는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유럽, 스리랑카등 도처에 승려를 파견하여 불교를 널리 포교하는데 일조한다. 중국의 묵가가 꿈에 그리던 겸애 사상의 이상 국가가 인도에서 잠시 실현된다.
역사에서 태평성대의 시기는 동시에 몰락의 기운이 싹트는 시기임을 자주 본다. 아소카 사후, 종속 왕국들의 독립운동이 거세지고, 외부의 침략자들이 제국의 서북지방을 공격하여 남부와 서북지역을 상실하고 BC185년 마우리아 왕조는 멸망한다. 이후, 북부는 슝가왕국(BC187-BC73)-->칸바왕조(BC75-BC30), 남쪽 데칸 지방은 사타바하나 왕국(BC230-AD225)이 지배한다.
인도 역사에서 중남부 지방, 데칸반도와 그 이남지역은 거의 영향력이 미미하다. 일단, 북부 지방은 힌두스탄 평야로 농경에 유리했고, 남쪽은 빽빽한 밀림지대를 통과해야 하고 농경에 유리하지 않았기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책에서 인도의 주류역사는 힌두스탄 평야/펀자브 지역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대한 기술이다.
BC250-125까지 중앙아시아에서 박트리아/소그르디아를 지배하던 박트리아 왕국이 훈족에 밀려 인도 서북부 펀자브지역에 들어와서 인도-그리스 왕국을 세우고 AD10년까지 존속한다. 이 때 만들어진, 그리스인 메난드로스 (밀린다) 왕이 비구승인 나가세나와 불교 교리 문답을 한 "밀린다 왕문경"은 그리스적인 사고와 불교적 사유의 차이를 볼 수 있어 역사/사상적 의미가 큰 작품이다. 박트리아 왕국 이후에는 샤카족/파르티아인(샤바팔라바스)/쿠샨(구상)족 등이 차례데로 서북부를 지배한다.
헬레니즘과 불교문화의 융합문화인 간다라 미술도 이 때 등장한다. 간다라 미술이전까지는 부처를 사람처럼 묘사하는 불상은 제작할 수 없었다. 부처뿐 아니라 제자들까지 해탈의 경지에 든 인물들을 묘사하는 것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연꽃/나무등의 다른 사물들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인물의 윤곽을 상세히 묘사하는 불상의 제작이 시도되고 순식간에 유행된다.
중국의 월지족 중 하나인 귀상이 BC176-160년 흉노족에 쫓겨 박트리아 지방에 밀려오면서 쿠샨제국을 이룬다. 쿠샨 왕조는 카니슈카왕때 전성기를 이루고 육상으로는 실크로드, 해상으로도 로마와의 교역을 통하여 상업과 무역이 번창하고, 중산 계층의 세력이 확대된다. 카니슈카왕도 아소카왕과 같이 불교 보급에 힘써서, 다시 한번 인도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며, 이 시기에 대승 불교가 발흥한다. 그러나, 3세기 초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이란의 사산(페르시아)제국(AD224-651)에 의해 거의 와해 상태에 빠지고 굽타 왕조(AD240-550)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굽타 왕조 시대에 들면서, 통치 세력의 신권화(왕권 강화)를 위해 브라흐마니즘을 변형한 힌두교를 장려한다. 이에 따라, 원래 베다에 없거나 역할이 미약하던 3주신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이 강화되고, 세 신들 중, 현세를 관장하는 비슈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지며 왕은 비슈누의 화신으로 간주되었다.
태생적인 업인 카르마(전생의 업)에 따라 현세의 신분이 결정되고, 주어진 신분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다르마(이생의 업)를 쌓아서 전생의 카르마를 해소하는 것이 현생의 목적이니, 그냥 네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두말 않고 열심히 하라는, 상당히 그럴듯한 지배 이데올로기적이다. 굽타 왕조 시절, 불교를 탄압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인도에서 불교적 사상은 힌두교에 흡수되고, 불교 자체는 발생지에서 사라진다.
불멸(석가모니 사후) 100년 무렵, 불교는 불경해석에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분열된다(근본 분열), 상좌부는 다시 설일체 유부 등 11부, 대중부는 일설부등 9개 부로 다시 분열된다(지말분열). 그 모두의 기본적인 목적은 아라한, 개인적인 해탈을 추구하였기에 이들 20개 부파를 소승 부파불교(아비달마불교)라고 부른다. 부파불교의 대표적 사상인 설일체유부는 아공법유(삼세실유 법체항유), 즉 연기로서 맺어진 존재인 "나"는 허상이지만, 연기 작용의 주체인 "법"은 과거/현재/미래의 3대에 걸쳐 불변의 본질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설일체유부론은 미투라에서 시작하여 간다라, 캐시미르로 번져서 2세기 이후에는 북인도 전체로 퍼진다.
그러나, "법"과 "아트만"의 차이가 무엇이냐, 붓다가 말한 제법무아, 제행무상의 의미와 상충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따라, 아공법공, 세상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는 대승 불교가 굽타왕조에서 세력을 확대한다. 굽타 왕조 시대에 대승불교의 많은 이론들이 완성된다. 여래장사상의 "승만경/밀엄경", 무착(Asaga)/세친(Vasubandhu)의 유식사상(유가행파)의 "해심밀경/능가경", 용수(나가르주나)의 중관학파의 "중론" 등 많은 대승 이론들이 4세기말까지 속속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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