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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용병의 역사

existence_of_nothing 2021. 12. 15. 15:23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면서 전쟁이 끊인 적은 거의 없다. 역사적으로 한 지역에 100년 이상의 평화가 지속된 예는 많지 않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나의 생애에 아직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나의 위세대는 전쟁을 경험했고, 운 좋게 나의 세대를 넘어간다면 나의 아들/딸들의 생애에는 다시 전쟁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핵무기가 개발되면서 선제 공격을 받아서 2차 공격 능력을 유지한 상대방이 남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가능성이 높아져서, 강대국 간의 전쟁 위험성은 낮아지고, 그들간의 분쟁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지역의 전쟁도 어느 정도 억지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는 아니므로, 언제 자살의 방아쇠가 당겨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강대국들이 보유한 핵무기는 지구의 모든 인간들을 몇번은 멸종시킬 만큼 차고 넘친다.

 

전쟁의 역사에서 용병의 역할은 고대부터 아주 중요하였다. 헤라클라스는 자신과 별 이권이 없었지만, 돈을 준다는 약속을 받고 트로이를 위해 일한다. 중장보병 위주의 그리스는 스키타이와 크레타 섬출신의 궁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궁기병이 강했던 페르시아는 그리스 본토 폴리스등의 중장보병들을 용병으로 활용하였다. 카르타고는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 켈트족 누미디아 기병대 용병들에 의존하였다. 로마군들은 게르만 용병에 의존하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멸망당한다. 유럽에서 용맹을 떨친 용병은 스위스 고지대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던 스위스 용병들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가 처형되었을 때, 프랑스 근위대마저 모두 도망치고, 혁명군들이, 가난한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스위스 용병들에게 항복을 권유했을 때에도 그들은 왕에게 끝까지 충성하여 786명 스위스 근위대 전원은 몰살한다. 1824년 루카스 아흔은 스위스 루체른에 그들을 기리는 조각을 남긴다. 그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또한 지극히 감동적이다. 그들이 도망가면.. 그들의 후손들은 용병으로 고용될 수 없고, 따라서 굶어 죽어야 하기에 그들은 한명도 도망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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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제국은 중앙아시아 혹은 이집트등에서 노예로 끌고와서 이슬람교로 개종 시킨 후 용병으로 부렸다. 이둘을 굴람(이란/페르시아에서 부르는 이름) 혹은 맘루크(중동에서 부르는 이름)라고 불렀다. 때로는 백인 노예병은 맘루크, 흑인은 아브디/지하디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9세기 아바스 왕조부터 시작하여 19세기, 비교적 최근까지도 존속했다고 한다. 맘루크들은 대부분 경 기병, 즉 말을 타고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전쟁 중 가족을 잃었거나, 가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끌려온지 오래되어, 돌아갈 연고가 없었기에, 즉 갈곳이 없었기에 그들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으며 어려서부터  마/창/궁/검술을 훈련하여 전투에 뛰어났다. 이들의 활약상은, 십자군 전쟁, 몽골군과의 전쟁(1260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 궤멸)등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집트에서 세력이 커진 맘루크 용병들은, 맘루크 왕조(이집트 파티마 왕조(909~1171)->아이유브 왕조(1171~1250)-->맘루크왕조(1250~1517). 오스만 투르크에 멸망)를 세우고, 십자군 전쟁을 종결시킨다.

 

또 다른 맘루크들 중 일부는 북인도에 고르 혹은 샨사브 왕조가 호라즘에 멸망당한 뒤, 델리 술탄 왕조(1206~1526)를 세운다. 술탄 왕조는 우즈벡 출신의 바부르가 건국한 무굴제국(1526~1857)에 멸망한다. 무국제국은 2000년만에 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당시 세계 제 1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만, 각지의 반란으로 분열된 후, 영국 동인도 회사의 괴뢰국이 된다. 

오스만 제국의 최정예 부대로 술탄을 보호하던 근위대를 "예니체리"라고 부른다. 튀르크어 "예니센"으로 "새로운 군대"라는 뜻이며 14세기 3대 술탄 무라트 1세(1359~1389)에 창설되었다. 칭기즈칸이 아나톨리아 동부지역을 침공하면서 대규모 난민들이 오스만 베이국에 모여든다. 오스만 베이국에서는 그들이 세력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세습되지 않는 관료/장교층을 원했다. 

 

이를 위해서 오스만 군주는 점령지의 기독교 가정에서 사내 아이를 징집해서 전사들로 키우는 "데브시르메"를 운영하는데, 이것은 약탈의 의미도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차피 가난하고 출세의 방법도 없었던 그들에게 먹을 거과 출세의 기회를 주기에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방법이었다. 징집된 이들은 이슬람으로 개종되고 어릴때부터 군사훈련을 받으며, 군대를 떠나기 전 결혼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들이 바로 예니체리(예니센: 새로운 군대를 의미)라는 보병 용병 부대이다. 

 

 

헤겔의 철학 중,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있다. 도자기를 굽는 노예가 있다고 하자. 노예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도자기만 구워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도자기를 구워내는 자유를 누린다. 주인은 노예를 부리지만, 그러한 숙련된 노예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자유를 누린다. 즉, 이렇게 주인과 노예의 위치가 전도되는 변증법적인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용병과 주인들간에 이러한 노/주의 변증법은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로마는 게르만 용병이 없이는 종이호랑이였고, 맘루크는 페르시아 제국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예니체리는 초기의 제도에서 변질되어 결혼이 가능하고, 세습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권력 집단이 되어 도리어, 맘에 들지 않는 오스만 군주들을 암살하거나, 그들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최신무기의 신식 군대로의 개편에 저항하게 되어, 오스만의 멸망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그들도 마흐무트2세 18년인 1826년 신식대포를 앞세운 군대에 학살되어 역사에서 사라진다. 남은 것은 그들이 사용한 세계 최초의 군악대 "메흐테르"의 음악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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