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음양 본문
동양에서 세상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도나 리의 공식에 따라 기가 운행하여 음과 양을 만들고 그 들이 무리를 지으며 많은 세상 만물을 만든다고 말이다. 암컷과 수컷, 하늘과 땅, 물과 불... 이렇게 강한 대조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쉽게 우리 눈에 뛰기 때문이다. 세상은 과연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가 있으면 반입자가 있고, 왼손잡이 입자가 있으면 오른손 잡이 입자가 있고, spin up이 있으면 spin down이 있고, +전하가 있으면 -전하가 있고, N극이 있으면 S극이 있고... 실제로 자연과학에서 바라보는 많은 모습들에서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가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라고 생각한 것, 양성자가 그 내부에 다시 고도한 수학적 실체, 즉 3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인류역사의 비교적 최근이다. 또한, 양성자들의 반발력은 중성자라는 전하 중성 입자가 그 들 사이를 오가면서 사이 좋게 묶어두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중성자도 마찬가지로 3개의 쿼크로 구성된다. 3개의 쿼크로 구성된 중입자를 우리는 바리온이라고 부른다. 중성자는 자연상태에서 10분 이내에 양성자로 바뀌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약한 중성자가 원자핵 내에서는 순하디 순한 양으로 붕괴되지 않고 존재하기에 우리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안다.
양성자의 무게는 전자의 무게의 약 2천배(1836)가 무겁다. 즉, 양성자와 전자는 잽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양성자의 움직임은 고려하지 않는 이유이다. 양성자는 무거워서 그냥 무게 중심의 위치에 고정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의 전하는 모두 +e, -e로 동일한다.
왜 세상에는 전자의 전하량의 배수배의 전하만 존재할까? 그 외의 전하는 존재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그 외의 전하량, 분수 비의 전하량을 발견한 것은 없다. 왜 그럴까? 디락은 상당히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세상에 만약 magnetic monopole, 자기 단극자가 단 1개라도 발견되면, 세상의 모든 전기 전하는 전자 전하의 배수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을 설명하려면 다시 아로노프 봄, 양자 역학의 위상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야 한다.
양성자는 2개의 up quark과 1개의 down quark로 구성되는데, up quark의 전하가 2/3이고 down quark 의 전하가 -1/3이기에 전체 전하의 합이 1이 되어, 전자의 전하와 정확히 일치한다. 쿼크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양성자/중성자의 내부에 갖혀 있기에 사실 그 스토리, 분수비 전하량의 진위,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알기 어렵다.
quark 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리고 기본 전하의 양이 1/3, 즉 분수 비의 전하량을 가진다고 겔만이 얘기했을 때, 사람들은, "몬 소리니?" 갸우뚱 갸우뚱 했다. 별로 아름답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음양의 조화가 아니라 2/3양이라는 값을 가진다는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강력전하 r/g/b라는 3개의 색을 가지기에 세상의 본질이 음/양이라는 믿음은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다.
인간들은 태생적으로 질서를 선호하고,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을 분류하고, 그들에게서 공통적인 특성들을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그러한 분류가 안되면, 뇌가 저장해야 할 정보,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음양의 조화도 그 중의 큰 분류법 중 하나이다. 세상의 많은 부분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은 그 중간 지대의 것도 많으며, 그 둘 모두에 속하지 않는 것도 많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사회과학적으로나 자연과학적으로 모두 너무 단순한 사고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그렇게 분류하려는 어리석은 노력들이 많음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인간들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