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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빛과 상대성

existence_of_nothing 2022. 8. 10. 11:19

운동은 상대적이다. 내가 정지해 있는지,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물과의 상대적인 관계에서 운동은 드러난다. 우주에 단 1개의 입자만 있다면, 그에게 등속운동과 정지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우주에 2개의 입자가 존재하면 서로에게 운동은 의미로 다가온다.

광속에 가깝게 등속운동을 하고 있더라도, 나와 나란히 달리는 이에게 그는 전혀 충돌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정지해 있더라면 그는 나와의 충돌을 피할 것이다. 나는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는, 운동 에너지 0의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종족을 멸종시킬 소행성의 존재로 다가온다.

정지해 있는 나의 세상, 평범한 나의 일상은 광속의 1/4로 달리는 이와, 광속의 1/2로 달리는 이에게 다르게 보인다. 나는 그냥 나의 일상을 살아갈 뿐인데, 두 관찰자는 내가 사는 세상,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물리 현상을 다르게 관측한다.

전선에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발생한다. 주변에 나침반을 두면 자속의 방향으로 나침반이 정렬된다. 그러나, 만약 그 전류와 동일한 속도로 내가 이동하고 있다면, 더 이상 움직이는 전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침반이 정렬되지 않는가? 그렇지는 않다. 단지,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누군가에게 자기장은 누군가에게는 전기장으로 혹은 그 반대로 작동한다.

같은 사회 현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빨갱이에 의해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위태위태한 풍전등화의 국가가,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고 편리하고 공정한 세상으로 다가온다. 그 사회가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두 시각이 존재할 뿐이다. 그 두 시각 모두로 세상은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들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서로를 향해서 광속에 가깝게 이동하면, 서로가 바라보는 상대방의 세상은 길이가 짧아지고 시간은 천천히 간다. 내가 죽어가면서 바라보는 너의 세상에서 너는 아름다운 청춘을 즐기고, 너가 죽어가면서 바라보는 나의 세상에서 나는 몰디브의 아름다운 해변을 즐기고 있다. 어느 것이 실재인가? 사실은 둘다 실재이다.

우리가 실재라고 얘기할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우리 뇌는 4차원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3차원 시공간을 시간에 따라 절단하면서 바라본다. 나와 너는 4차원 시공간을 서로 다른 각도로 절단해서 바라보기에 나의 현재와 너의 과거는 동시간대가 되고, 반대로 너의 현재와 나의 과거는 동시간대가 된다. 따라서, 나의 세상에서 너는 청춘을 즐기고, 그것이 바로 내가 인지하는 실재이고, 너의 세상에서 내가 해변을 즐기는 것도 바로 너가 인지하는 나의 실재이다.

빛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빛의 속력을 우주 상수로 만들기 위해서, 신은 시간과 광간을 비틀어 버렸다. 그로 인해, 인간들은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인간은 어떻게 노력해도 빛을 따라가면서 정지된 빛 알갱이를 볼 수 없게 우주가 설계되었다. 신은 무슨 이유로, 왜 인간들이 빛의 정체를 파악하기를 그토록 피한 것인가, 빛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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