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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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바타2

existence_of_nothing 2023. 1. 31. 15:59

어제는 가족들과 함께 아바타를 감상하였다. 상영시간이 3시간을 넘었지만, 마치 수족관에 온 듯, 스킨 스쿠빙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주제는 1편의 연장선이다. 자연과의 교감, 문명에 의한 자연 파괴에 더해서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만든 작은 사회, 가족의 의미를 더하였다. 1편의 마지막에서 죽어가는 제이크는 영혼의 나무로 옮겨져 그 씨앗들인 아토키리나에 의해서 아바타로 자신의 영혼을 옮긴다.

사실, 스토리 자체는 1편에 비해서 2편이 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래픽에서 가장 어려운 모사체인 물의 현실감을 극도로 올렸다는 점에서 그래픽은 훨씬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물의 모사가 어려운 이유는, 물의 움직임에 특정한 규칙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복잡해 보이는 프랙탈 영상인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기술됨에 비해서, 물방울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간단한 방정식은 없다. 그래서, 영화 내내 물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묘사했는 지를 의식하면서 관람했는데,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만큼 부드러운, 거의 현실과 구별이 어려운 물의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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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실재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마음의 상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가.. 오늘날까지도 그 논쟁은 이어진다. 관념론과 실재론... 그 해석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 일체유심조, 유식무경...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상이다의 의미의 해석도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 한쪽 극단으로는 존재론으로 연결되어 우리 세상은 매트릭스의 시스템, 프로그래밍 내부로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는 인식론.. 즉 우리가 어떻게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인식하게 된 것인지에 관한 방향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바라보는 데로 세상은 생겼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의 대부분은 빈 공간이다. 원자는 거대한 축구장에 배구공만한 핵을 놓은 것이고, 그 핵조차도 내부는 깨알 같은 쿼크들이 자신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세상은 빈 공간이고,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에너지, 장일 뿐이다.

그 빈 공간을 빛이 헤집고 들어가는데, 특정 파장의 빛은 쉽게 지나가고 다른 파장의 빛은 통과하지 못하고 흡수되고, 어떤 파장들의 빛은 다시 외부로 방출된다. 이러한 빛은 다시 인간의 망막 세포를 이루는 원자와 분자들을 지나가면서 전자들을 여기시키고, 여기된 전자들의 연쇄 작용으로 인해, 뇌는 찬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만약 제대로 세상을 관측한다면 세상은 점묘화에 불과하다. 수많은 점들, 혹은 점 자체도 빈 공간일지 모르는 그러한 세상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 작용이 뇌의 뉴런 세포와 연결되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계를 만들어낸다.

이 세상은 실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만든 상인가... 이 세상은 실재하기도 하고, 그것은 또한 마음이 만든 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유이면서 동시에 비유인..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한 때 인류를 사로잡았다가 근대 과학에 의해서 추방된 이 기로 이루어진 세상은, 다시 현대 과학에 접어들면서 에너지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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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때 랩 선배 중 한명은 학력고사 강원도 차석 출신이었다. 그 선배는 원래 의대를 가려고 했으나 결정적으로 본인이 모른 것이 있었다. 그 선배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과 달랐던 것이다. 적록 색맹, 피가 남들보다 다른 색으로 보였을 텐데,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였고 그 댓가로 그 선배는 의대 진학에 실패한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색각이상자는 의대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과는 빨간색이지만, 사과의 본질이 빨간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전자와 분자의 나열일 뿐인데, 빛이 그 사이를 헤집고 가면서 빨간 색에 해당하는 파장만 외부로 방출되어 망막을 때렸을 것이고, 인간의 뇌는 625nm~740nm의 장파장 빛, 그냥 빛인데 에너지가 조금 낮은 그 빛으로 부터 빨간색이라는 세상을, 추상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어제밤에도 자각몽을 꾸었다. 요즘, 최근 들어 정신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면서 자각몽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의식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이 만든 세상을 여행하고 다니는 것이다. 어제는 꿈속에서 명상을 시도해 보았고 그 명상 속에서 바라본 세상이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도 분석해 보았다. 실험 결과는 그것 또한 또하나의 꿈에 불과했다.

꿈의 영상은 현실보다 선명하지만, 결정적으로 현실과 다른 것이 있다. 우리가 간판을 바라보면 일견 간판처럼 보이지만 간판을 이루는 것은 글자가 아니고, 그 내용도 바라볼때마다 달라진다. 꿈은 스토리 위주로 전개되며 스토리의 구체적인 그래픽은 현실과 달리 원색 위주로 추상적으로 합성된다. 따라서 색은 강렬하지만, 그 내용은 비현실적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신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무의식이 만든 세상에서 의식의 지향성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고, 뇌가 기본적으로 실재 뿐 아니라 비실재도 만들어내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뇌는 어떻게 꿈속의 세상을 만들어내는가를 이해하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최면요법이 수사기법으로 동원된 적도 있지만, 오늘날 그 효용성과 신뢰성은 높지 않다. 뇌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지 스토리를 기억하는데 뛰어난 것은 아니다. 뇌는 부족한 정보를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정보로 채워서 전체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든다. 최면요법에서 외부에서 약간의 암시만 주어도, 뇌는 그러한 방향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어 버리기 때문에, 최면수사의 결과는 그다지 신뢰성이 높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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