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보일 샤를의 법칙 본문
화학 이야기 2
뉴턴이 위대한 과학자, 인간 이성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그가 연금술에 심취했음도 유명한 얘기이다. 인간들이 원자의 구조를 모를 때, 연금술로 원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희한한 실험을 많이 한다. 그러한 시행 착오가 때로는 화학사에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로버트 보일(1627-1691)은 화학계의 갈릴레이 같은 존재이다. 그전까지 직관에 의존한 마구잡이식의 시도들은 보일에 이르러 정량적으로 정확히 계측되는 학문으로 정립된다. 보일은 아일랜드 리즈모어의 부유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난다. 가정교사에게 라틴어/그리스어/불어를 배우고 8살에 이튼스쿨을 마친 후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의 연구를 접한다. 왕당파이니 아버지가 사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도싯의 스탈브릿지 대저택에 머물면서 과학적 실험을 구상한다.
<보일>
그의 본격적인 화학 실험은 George starkey라는 연금술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George Starkey는 미국의 성공한 의사였지만, 연금술 실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런던에 정착한다. 그 곳에서 안티몬, 은, 수은의 아말감을 이용한 연금술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며, 이 과정에 보일을 지도한다. 불행히 그는 37세의 나이에 1665년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보일 역시 연금술에 빠져서, 황금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위 현자의 돌 (philosopher’s stone)을 만드는 magnum opus(master piece)에 빠지지만 당연히 성공하지 못한다.
보일과 뉴턴은 모두 신앙심이 깊고 연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평생 독신으로 보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1642년 의회파의 승리로 찰스 1세를 처형한 후 독재를 한 크롬웰의 조처로 영지들을 그대로 보전받게 된 보일은 평생 돈걱정 없이 연구에만 전념한다. 연구 환경이 열악한 아일랜드에서 옥스퍼드로 자리를 옮긴 후, 로버트 후크(Robert Hooke)라는 돌출한 옥스퍼드 대학생(스프링의 탄성에 관한 법칙, Hooke’s law를 만든 과학자)을 조수로 두면서 그의 연구는 빛을 발한다.
<후크, 후크의 법칙: 탄성법칙>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라 말하며, 아무것도 없는 공.. 진공 상태의 존재를 부정한다. 17세기 오토 폰 게리케(1602-1686)가 1650년 진공 펌프를 발명하여 진공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 위력을 보여주려고 1654년 2개로 분리된 금속 용기 내부의 공기를 없앤 후, 좌우 8마리의 말이 분리하도록 하였으나 떨어지지 않던 구(“마그데부르크의 반구”라고 부른다)가 그 안에 공기를 살짝 넣자 분리됨을 시연한다. 또한 그는 진공 중 소리가 전달되지 않음과, 진공 중에 연소가 불가능함을 보였다.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보일과 후크는 1657년 성능이 훨씬 개량된 진공펌프로 공기 중 대기압이 존재함을 증명하고, 그 유명한 PV=k(constant)라는 온도와 부피는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발견한다. 그 법칙은 100년 후, 샤를 (Charle)의 업적이 더해져서 1787년 PV=kT=nRT라는 보일샤를의 법칙 (우리때에는 보리쌀의 법칙이라고 불렀음 ^^)으로 완성된다. 화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 중 하나이다.
<보일샤를, 보리쌀의 법칙>
1661년 보일은 “회의적 화학자” (skeptical chymist)라는 책을 계기로 연금술에서 화학을 분리하고 원소에 기반한 정량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그 당시 기술로는 원소와 원소의 결합물인 화합물의 분류가 불가능하였고, 이후 1세기 이상 지나서 라브와지에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원소 분류가 시작된다.
보일의 법칙이 발표된 후 100년이 지나 1787 Jacques Charles의 미발표 논문을 1802년 게이뤼삭(GayLussac)이라는 화학자가 “샤를(1746-1823)의 법칙”이라면서 발표한다. 내용은 V/T=k, 보일의 법칙과 합치면 PV=kT라는 법칙을 발표한다. 온도를 일정하게 하면 기체의 부피와 압력은 반비례하고, 압력을 일정하게 하면 부피와 온도는 서로 비례 관계에 있다는 간단한 법칙이다. 왜 그럴까? 이것은 기체를 무수히 많은 분자 입자들로 구성되었다고 가정하고, 온도가 그 기체 분자 하나하나의 평균적인 운동에너지라고 정의하면 유도된다.
샤를은 최초로 수소 비행선(1783년)을 만들어 비행한 비행사이며 발명자이다. 1787년 샤를은 서로 다른 기체로 5개의 풍선을 채우는데,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온도 80도에서 정확히 같은 부피로 증가함을 발견한다. 이에 따라 샤를은 일정한 압력하에서 이상기체의 부피가 절대 온도에 비례한다고 얘기하고 이 실험을 나중에 Joseph Louis Gay Lussac가 뒤늦게 발견하고 1802년 “샤를의 법칙”으로 논문에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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