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플로지스톤, 라브와지에 본문
화학 이야기 3
17~18세기에 인류는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가상의 입자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촛불이 탄다면 그것은 초에서 플로지스톤이 나와서 소모되는 과정이고, 진공에서 초가 타지 않는 것은 플로지스톤을 받아들일 공기가 존재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필리푸스 파라켈수스(Philippus Paracelsus, 1493~1541)라는 연금술/화학자는 약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외과의사로 이름을 남기지만 연금술사로 전향한 후, 많은 논문을 남기는데 그는 불/물/흙/공기의 4원소설을 주장하고 각 원소를 지배하는 정령을 살라만드라, 운디네, 노움, 실프라고 이름짓는다 (판타지 소설 마니아들에게는 유명한 이름들이고 한다).
독일 화학자 q베허(J.J.Becher)과 그의 제자 슈탈(G.E.Stahl)은 파라켈수스의 4원소설을 변형하여 연구하던 중, 연금술 과정에서 물질들이 연소하는 이유를 플로지스톤이라는 연소의 원인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최초로 주장하였고 그 후 16~17세기 동안 당대의 위대한 대가들(카벤디시, 프리스틀리)도 그 존재를 의심치 않았다.
나무나 석탄은 플로지스톤을 많이 함유하니 불에 잘 타고, 금속이 녹스는 것도 금속의 플로지스톤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나무를 태우면, CO2로 많은 부분이 날아가고 재만 남으니, 무엇인가가 그 물질에서 빠져나간다는 플로지스톤 이론은 일견 아주 자연스러운 설명이었다. 연소의 원인 물질인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프리스틀리도 그 원소의 정확한 성질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것을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라고 불렀다.
모두가 플로지스톤을 얘기할 때, 단 한 사람, 라브와지에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 사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플로지스톤을 딱히 부정할 이유는 없었다. 세상의 많은 현상들이 그 이론으로 잘 설명이 되었기에 그 당시까지 플로지스톤설은 정상과학이었고, 그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실 라브와지에의 이전에도 이상한 현상은 존재했다. 즉, 금속을 연소하여 산화가 되었더니 산화된 금속의 질량이 증가한 것이다. 또한 1772년 라브와지에는 인과 황의 연소실험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연소 후 질량이 증가한 사실을 발견한다 (사실은 그 전에도 수차례 보고된 사실이다) 만약, 실체인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간 것이라면 어떻게 질량이 증가할 수가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플로지스톤은 음의 질량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었다. 음의 질량이 빠져나가니 질량이 증가한다.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나,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 대목에서 라브와지에는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다. “누가 플로지스톤 본 사람 손들어?”.. 아무도 없다. 그러면 걍 플로지스톤은 없다고 해.. 뭐가 문제야? 그리고 그는 플로지스톤이 부재하는 이론을 만든다. 플로지스톤을 대체할 물질을 찾던 그에게 프리스틀리의 산소에 관한 얘기를 듣고 (수은의 금속재를 가열하여 산소를 얻음), “이것이다”라는 직관과 함께 정밀한 실험에 돌입한다. 사실, 이러한 여러 실험들에서 독창적인 것은 별로 없었다. 이전 화학자들이 한 실험들을 대부분 재현한 것이지만, 그 해석에서는 천지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 플로지스톤의 자리에 산소를 두고, 플로지스톤이 물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연소는 산소와 연소 물질의 결합이라고 해석하였다. “연소는 타는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고, 녹이 쓰는 것은 금속이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과정이며 호흡은 산소를 흡입하고 인산화 탄소를 내뱉는 과정이다”라고 말이다. 그는 탄산, 황산, 인산등 다양한 산성 물질들의 연소과정에서 산소를 발견하여 산(Oxy)을 만드는(gen) 원소라는 뜻으로 산소(Oxygen)라고 명명한다.
이제, 보일 이래로 산발적으로 얘기된 모든 스토리가 결합될 차례이다. 세상에는 원소가 존재한다. 원소들과 원소들은 화학 반응의 전후로 결합, 분해, 재결합을 한다. 이 과정은 정확히 정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정확히 측정하면, 모든 반응의 전후에서 질량은 보존된다. 초를 태우고, 끄을음, 남은 초, 기체 분자의 모든 질량들을 추적하면 질량은 완벽히 보존될 것이다. 그를 전후하여 플로지스톤 이론은 화학사에서 노을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화학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실 여기서 얘기의 끝은 아니다. 오늘날 산화 (oxidation)와 환원(redox, reduction)은 반드시 산소를 동반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은 수소나 전자를 잃어 버리는 현상을 산화로 정의하고, 반대로 수소와 전자를 되찾아오는 과정을 환원으로 정의한다. 산소의 위치를 주기율표상에서 찾아보면 오른쪽에서 두번째, 왼쪽에서 6번째에 위치한다. 이것을 6가족이라이라고 한다.
최외곽 전자가 8개를 만족하면 안정되는데, 6가족은 6개만 가지고 있으므로 전자 2개를 애타게 찾는다. 따라서, 다른 물질에게서 전자 2개를 가져와서 산소를 안정화시킨다. 즉,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 과정은 산화과정 전체의 특수한 경우로, 상대편에게서 전자 2개를 빼앗아 오는 과정이다.
양초는 파라핀이며 CnH(2n+2)로 구성된 화합물이다. 만약 n이 25인 양초를 생각하면C25H52+46O2->25CO2+52H2O 로 변하는데, 이 과정이 연소이다. 연소의 과정에서 양초는 수소를 빼앗기고,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이제, 다시 플로지스톤 이론으로 돌아와 보면, 물질에게서 전자나 수소가 빠져나가기에 이것을 플로지스톤이라고 부른다면, 이 또한 틀린 해석은 아니다.
이처럼, 과학은 설명의 학문이고, 설명의 방법은 유일하지 않다. 단, 다수가 채택하는 설명 방식이 현 시대의 정상 과학으로 인정받고, 과학적 권력을 가진다. (실제로 1783년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플로지스톤의 정체가 수소라고 보고하였다. 플로지스톤설은 사실 틀린 가설이 아니라 패배하여 도태한, 가설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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