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다윈의 식탁 본문
<다윈의 식탁> -장대익-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유전자 단위에서의 생존 경쟁을 진화라고 설명한다. 유전자란 30억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DNA에서 유전 형질 발휘가 가능한 짧은 단위이다. 유전자는 DNA자체가 아니라 DNA의 일부분, 유전 형질에 관한 부분이며 그것들이 서로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exon 부분과 관여하지 않는 intron 부분으로 구성되며, intron 부분은 삭제되고 exon 부분만이 mRNA로 copy 되어 리보솜 공장에서 단백질로 합성된다. 유전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인간을 조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진화 과정의 전후를 살펴보면 결과적으로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는 유전 정보만이 전달되며, 개체가 생존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동안의 반엔트로피적인 물리법칙을 수행한 결과) 정보만이 남겨진다는 지극히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또한,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실제로는 종단위의 유전자 보전을 위한 이기적 행동임을 주장한다 (해밀터의 포괄적합도 이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류사에 있어서 문화/종교 유전자(밈)는 대규모 사피엔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진화되어 왔다. 종교는 무의미해 보이는 존재에게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큰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또한 많은 폭력의 원산지임을 안다. 도킨스는 전투적 무신론자이며 그가 종교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을 주장한다. 그가 그러한 주장을 하는 동안 수많은 청중들은 야유를 하고 사탄임을 외치지만 그는 꾿꾿이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책 참조)를 가지고 직진한다. 그것은 그로서는 무조건 행동해야하는 윤리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다고 해서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그도 모를 리가 없다. 그렇게 많은 총기 사건이 발생해도 미국의 총기 소지가 불법화될리는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눈먼 시계공"과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아주 복잡하고 규칙적으로 보이는 세상은 존재의 정보 유지 능력과 불확정성 이론에 따른 자연의 역동성에 기반한 것임을 주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극단적 환원론과 자연의 우연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조차도 하나의 교조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고 느낀다.
굴드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한다. 만약 내 팔이 하나 없어지고 이것이 갑자기 깃털이 되었다고 하자. 이것은 생존에 유리할까 불리할까를 생각해 보면 점진적인 진화 과정에 의문이 생긴다. 즉, 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중간 단계의 다양한 화석군들이 발견되어야 하고, 그러한 진화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화가 극히 우연적인 돌연변이에 의해서 발생한다면 그것이 생존에 유리할 가능성은 불리할 가능성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따라서 굴드는 DNA 레벨의 돌연변이의 의한 작은 규모의 진화는 이루어지지만, 종이 바뀌는 거대 규모의 진화는 거대한 지질학적 변화 요인에 의해서 생긴다는 단속 평형설을 주장한다. 삼엽충, 공룡의 멸종 같은 사건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최근에는 Hox gene(혹스 유전자, homeobox 유전자라고도 한다)의 발현 메커니즘으로 거대 돌연변이를 설명하려는 연구가 있지만 굴드는 단속 평형설 메커니즘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지질학적인 대규모 생물 멸종 증거들을 볼 때, 이것은 사실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며 사피엔스의 등장이후에 나타난 수많은 멸종과 새로운 종의 탄생을 볼 때, 점진적으로도 충분히 종변화가 가능한 듯 하기에 신뢰성도 의심된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느냐, 즉, 인류가 탄생하게 된 것은 진화의 발전방향이냐 아니면 우연하게 변화의 부수물로서 지능이 탄생한 것이냐? 굴드는 진화의 방향성을 거부하고 도킨스는 진화의 일정 단계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요인이 있기에 일단 진화를 하면 퇴화란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진화는 점점 복잡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눈을 보면 구조적으로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망막의 중앙에 시신경 다발이 존재하여 상이 중앙에는 맺히지 못한다(맹점). 따라서 뇌에서는 굴곡진 영상 신호를 받아서 신호처리를 거쳐서 평면을 복원한다. 사실, 누군가 설계를 했다거나 진화가 진보를 의미한다면 이렇게 이상한 망막 구조로 설계하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시신경이 망막 센서의 뒤로 연결되게 설계했을 것이다. 굴드는 이에 대해 "풀하우스"에서, 중세 기둥 상이의 삼각형 아치(스팬드럴)을 예로 들어 진화의 우연성을 얘기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진화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복잡한 생물도 존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일 뿐이지, 진화 자체가 복잡한 생물을 선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진화의 우연성은 지능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유용하지, 그 이후에는 지능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면 생존을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는 곳마다 생물들을 멸종시키고 있다 ^^
굴드도 종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종교와의 전쟁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가 서로의 밥줄을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지내자는 주장이다. 사실 말로 할 수 없는 부분, 근본적으로 진위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다투는 것은 밥먹고 그냥 에너지를 버리는 것이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창조 과학회처럼 정면으로 과학계에 도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조용히 신앙 생활을 한다면 과학이 종교를 공격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다. 사회 현상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는 원래 도킨스의 편이었지만, 말년에 "지구의 정복자"에서 해밀턴의 포괄적합도 (C<rB, r:근친도, B:개체의 이익, C:비용, 이 간단한 공식을 많은 진화학자들이 성경처럼 모신다. 이것은 간단히 얘기하면 유전자가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자신과 비슷한 유전자를 남기려고 한다는 것이다)이론을 부정함으로써 도킨스와 등을 진다. 이 책에서 그는 유전자 선택설을 부정하고 이미 오래전에 폐기된 학설인 집단 선택론(정확히는 다수준 선택론)을 다시 꺼낸다. 개개의 유전자의 보전이 아니라 사회(혈연)를 보전하기 위해서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진사회성 동물인 개미와 인간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이들이 지구의 정복자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인간을 타 동물들과 동등한 레벨에서 해석하는 생물학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어찌보면 인간 정신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생물학계에서는) 대담한 주장이다.
정보는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복제하려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가? 항상 흥미로운 주제이며, 우주의 존재원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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