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기억의 비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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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비밀

existence_of_nothing 2021. 4. 5. 08:32

 

- 기억의 비밀 1      by 에릭 캔델

 

생각은 무엇인가.. 물질이 어떻게 의식을 만드는가? 

 

뇌는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은 대부분은 기억한 내용에 관한 것이다. 외부 대상을 내적 표상으로 변환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 후에, 뇌는 계속 그 생각을 반추하고 다시 기억을 재구성하고 다시 반추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심하게 왜곡되기에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판단을 하고 고집피우면 추노 혹은 꼰대가 될 수 있다.

 

기억과 자아에 대해서 많이 얘기한 이는 철학자 베르그송이다. 이전에 베르그송에 대해서 정리한 내용을 다시 올려본다.

 

<베르그송>

 

플라톤이 원본의 그림자로서의 세상을 설명한 이래 서구 철학에서 변하지 않는 로고스의 존재와 로고스의 인식가능성 유무는 서구 철학의 주요한 철학적 주제였다. 그러나 수천년간의 진화를 통한 인간의 인식 능력은 형이상학적인 추론에 적합하지 않으며 이것을 칸트는 물자체의 인식 불가성으로 지적한다.

 

5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동일한 나인가? 철학에서 말하는 자아 동일성의 문제이다. 5분 전의 나와 현재의 나가 완전히 같을 가능성은 0이다. 따라서, 그 둘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 둘이 다르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즉, 순간순간으로서의 동일한 자아는 있을 수 없으며,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나"는 있다. 불교에서 제법 무아라고 할 때에도 고정된 본질로서의 나는 없고, 관계 맺음으로서의 나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기억과 물질"에서 인간에게는 기억에 의해서 생성된 심층적 자아와 행위를 하는 표면적 자아의 두 층이 있다고 한다. 심층 자아는 이제까지의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한다. 즉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고정된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관계 맺음을 하는 심층 의식으로서의 자아가 있다.

 

베르그송은 우주의 존재의 너머에 우주를 지속시키고 생명체의 지속을 위한 의식이 관통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것에 의해서 생명체는 존재 내부에 진화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이것에 의해 진화하는 과정을 창조적 진화라고 주장한다. 존재 내부에 존재의 경계를 벗어나려는 생명성을 "엘랑 비탈"이라고 부른다. 엘랑 비탈은 진화의 동인이며 데리타와 들뢰즈에서 차이를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토인비는 문명 성장의 역사에서도 엘랑 비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 역학에서는 양자적 레벨에서 존재는, 존재 가능한 모든 형태로 동시에 존재한다. 단, 우리 눈에는 그 중, 자주 나타나는 형태가 눈에 보이기에 마치, 하나의 고정된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적 레벨에서는 양자는 무한한 탈주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물리학적으로도 존재의 깊은 내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론적 배경이 있음을 안다.

 

베르그송은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존재는 정신적/물질적 단자들의 유기적 결합)처럼 우주의 근원에 창조와 변화를 만드는 실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맺음으로 끊임없이 형체를 변화하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화이트 헤드도 존재 변화의 원리로서 존재하는 신을 얘기하고 신 자체도 존재와 함께 계속 변화함을 얘기한다. 스피노자/베르그송/화이트 헤드는 우주의 존재원리(범신론 혹은 우주신론)로서의 신을 얘기하지만 그 세개의 신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제논의 논법에서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가 이동한 거리의 1/10 지점을 지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이 영원히 이어지기에 절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앞지를수 없다는 궤변을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반박한다. "그러한 시간은 없다". 1/10이라는 정지한 시간은 없고 지속으로서의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시간은 지속과 질적 도약으로 이루어진다. 즉 순간의 연속이 현실이 아니고, 질적인 변화의 연속이 현실이다.베르그송이 말하는 "지속"이다.

 

철학에서 xx의 망각이란 용어는 여러 군데에서 등장한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는 '자아 망각', 하이데거는 이를 이어서 ‘존재 망각’을, 베르그송은 '시간 망각'을 들뢰즈는 ‘차이 망각’을 논한다. 철학은 이처럼 이전 사고에서 놓친 한 꼭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베르그송은 종래의 철학자들이 질적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아니라 분할 가능한 공간화된 시간만을 전제로 하였다고 비판한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다양한 경험에 의해서 생성된 기억과, 현재의 상태를 탈주하려는 생명성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고정된 자아가 있어서 그 자아가 A혹은 B의 선택을 하는 그런 자유의지는 없으며, 그렇다고 현재 상태에서 A라는 선택을 기계적으로 하는 그러한 기계론적 해석도 없다. 생명이 흐르는 과정.. 나의 기억과 생명성이 이끄는 길로 가는 것이 자유의지라고 베르그송은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존재의 저변에 있는 변화의 원리로서의 생명력을 가정하고 이를 직관적 인식으로 감지하고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사실 비트켄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하므로 한동안 잊혀지다가 들뢰즈에 의해서 차이의 철학으로 부활한다. 또한, 메를로 퐁티의 후기 철학, 존재의 저변에 있는 "살" 개념으로도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무계보 철학자(스피노자,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등등)인 화이트 헤드에 의해서 우주의 존재 원리로서의 신의 형이상학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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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선지식을 지녔다고 주장하고 플라톤은 우리는 (레테의 강에서 잊어 버리기 전에) 원래 알고 있던 이데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철학의 영역에 머물던 기억에 대한 연구는 19세기 말에 들어서 에빙하우스, 제임스, 코르사코프 같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학문적으로 분석되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 다윈은 "인간"의 고귀함을 철저히 배신하고, 파블로프와 손다이크같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각각 고전적/기구적 조건화를 통해서 동물들도 인간과 비슷하게 학습함을 보인다. 멘델, 베이트슨, 모건은 식물과 초파리 실험을 통해서 유전 정보 전달의 규칙성을 찾아내고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를 발견하여 모든 동물, 심지어 식물과 세균들 까지도 동일하게 스스로를 구성함을 밝혀낸다.

 

20세기 초에 카할교수는 뇌는 뉴런세포들의 연합체임을 밝혀 낸다. 인간 뇌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와 100조개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된다. 레슐리, 헵 교수는 우리의 기억은 대뇌 피질에 분산 저장됨을 밝혀내고, 브렌다 밀너 교수는 환자 H.M(엄청 유명하니 기억하시길..)의 관찰을 통하여 서술적 기억은 해마에, 절차적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뇌 전체에 분산 기억됨을 밝혀낸다.

 

생각은 시냅스들 간에 흐르는 신호들의 흐름의 연쇄 반응이다. 그 신호는 실제로 전압계로 측정 가능한 전기신호이며 전압은 약 110 mV 정도이다. 전기 신호는 Ca, Na 이온 전달 형태로 뉴런에서 뉴런으로 전달되며, 뉴런과 뉴런 사이는 약 20nm 정도의 간격으로 끊겨 있다. 만약 전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뉴런 사이로 신경 전달 물질 덩어리(5000개의 분자)이 전달된다. 신경전달물질은 아미노산, 글루타메이트, GABA, 아세틸콜린, 에피네프린, 노프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등 다양하다.

 

동일한 자극이 계속되면 자극에 대한 반응이 줄어든다. 신경전달물질 방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선충의 꼬리를 여러번 자극하면 조금씩 물러나는 속도(거리)가 줄어든다. 신경 전달 물질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가지 신경증 적인 병을 유발한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이들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면 안된다. 그들은 비윤리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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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1000억개의 뉴런세포와 100조개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된다. 각각의 뉴런 세포들은 비교적 단순한 기능들을 수행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주어지고 그 자극의 합이 어떤 역치(threshold, -55 mV)를 넘어서면 스파크를 발생시킨다. 이렇게 발생한 전위 스파크는 뉴런을 따라서 느린 속도로 전파되고 그 다음 단계의 뉴런세포에 그 신호를 전달한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뉴런간에 action potential 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알 수 있다. 칼륨/나트륨 펌프가 열심히 이온들을 출입시키면서 정보를 전달한다. 금속이나 반도체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느리게 정보를 전달하며 생명활동에 필요한, 딱 그만큼의 속도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HYLyhXRp298

 

 

우리가 아무리 뇌를 자세히 관찰해도 생각은 발견할 수 없으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신호의 흐름일 뿐이며 이러한 신호의 전달에 신경 전달 물질들이 관여한다. 신경을 통한 신호전달에는 나트륨과 칼륨의 농도차이가 중요하며 이 농도차이를 생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ATP 밧데리가 소모되며 엔트로피 증가를 막기위한 생명의 필사적인 사투인 것이다. 

 

생명활동은 엔트로피의 비탈길을 거슬르 오르는 것이라고 베르그송이 얘기했다. 생명활동의 신비는 왜 자연에서 이렇게 정교한 반엔트로피적인 사건이 관측되고 그것이 지속되느냐는 것이다. 과학은 태양에서 공급되는 에너지에 의한 물질들의 fluctuation (요동)과 옥텟룰에 따른 수많은 local minimum점들의 존재, DNA를 통한 정보의 유지와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르는 수많은 미세한 변화들과 (chaos이론에 따른) 복잡계인 거시세계의 변화와 진화를 현재 나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반쯤은 구라로 들릴 뿐이지만 더 이상 나은 설명은 없다. 환원주의는 분명히 이해에 한계가 있지만, 그나마 인간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몇개 안되는 논리적인 접근법이라는 생각이다. 전자와 양성자를 이해한다고 물이 왜 투명한지, 왜 갈증을 해소하는지를 바로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그 근본은 전자와 양성자, 그리고 물리화학적인 미시적인 현상들의 거시적인 표현임을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가 기억을 한다고 한다는 것은 과거의 신호를 현재까지 유지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하여 뉴런의 현재의 자극 혹은 운동명령을 단기적으로 전달할 뿐아니라, LTP or LTD (long term potentiation, depression) 형태로 자극값을 오랜 기간동안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신경회로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입력에 가해지는 weighting factor W를 떠 올리면 된다. W는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 있어야 하며, 기억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억활동,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물질이 바로 Ca++, 칼슘 2가 이온이다. 

 

우리가 생각을 깊이하거나 자주 어떤 사건을 만나면 시냅스간의 신호 전달, 혹은 action potential이 자주 나타난다. action potential은 glutamate(GLUT)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방출하고, AMPA 수용체라는 ligand controlled gate(대문)을 GLUT라는 열쇠가 열면, 세포 외부의 나트륨이온들, Na+가 연결된 시냅스에 유입된다. Na+는 일정 시간 후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지만 만약 자극이 잦아지면 Na+의 농도가 증가하고 depolarization 현상이 (세포 내외부 전위차이의 변화) 발생하여 NMDA라는 voltage controlled gate(대문)을 열어버린다. 그러면 외부에 있던 Ca++이온이 유입되고 이것은 AMPA를 증가시켜서 기억을 공고히 하는 Early phase와 실제로 기억을 형상화하여 물질화하는, 즉 DNA의 정보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Late phase 단계를 거쳐서 기억을 형성한다. 이것이 기억의 실체이며, 외부 입력에 대해서 기억들이 연결되는 것을 생각이라고 한다. 박문호 박사가 생각은 Ca이다라고 하는 이유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우리의 세포막, 인지질막을 통해서 전달되는 각종 신경(정보) 전달 물질들과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수많은 단백질 구조체를 그렸다. 인간의 몸을 미세하게 살피면 살필수록 인간은 하나의 단일 개체라기 보다는 세포들의 거대한 사회임을, 생존을 위한 세포들의 정교한 생명활동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정보의 보존이고 DNA의 정보를 남기려는 세포들의 몸부림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이것은 물질이 물질을 인식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차적인 현상일 뿐으로 보인다. 보다시피 이 복잡한 생명활동의 중심에 Ca++ 이온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왜 Be가 아니라 Ca일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 아마 필연적인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생명활동의 단계에서 우연히 Ca가 있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화의 한단계를 밟았을 수도 있고, Be로 형성된 구조체는 경쟁력이 없어서 도태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탄생 즈음의 지구의 원소의 분포율 혹은 지질학적/광학적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물리학, 천문학, 지질암석학, 분자생물학, 진화... "나"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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