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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tence_of_nothing 2021. 4. 6. 08:59

 

 

- 노르웨이의 숲        by    무라카미 하루키

 

"날 잊지 마"

 

소설에 여러번 나오는 말이다. 나오코와 레이코가 나에게 얘기한다. 왜 그녀들은 자신을 잊지말라고 한 것인가? 레이코의 마지막이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자살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상실의 큰 구멍.. 그것은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암흑의 심연이다. 존재는 죽음과 함께 모든 의미가 사라진다. 만약 누군가가 그녀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녀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의 삶의 힘든 고행들... 기억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의미가 없는 것이다.

 

37살의 내가 함부르크공항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시간은 18년을 거슬러 올라간 젊은 날의 어느 시점, 모든 것들이 상실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초원의 풍경... 향긋한 풀 냄새, 선선한 바람 소리, 동물들의 울음소리... 그러나 그 풍경에는 아무도 없다. 나오코도, 나도, 기즈코도...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소설의 나레이션이다.

 

상실의 존재들, 죽음의 존재들은 기억속에서 희미한 상태에서 점점 또렷한 상태로 다시 살아난다. 긴 머리, 차가운 손, 둥그런 귓볼... 나오코의 모습이 떠 오른다. 나오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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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키와 나오코는 세살적부터의 소꿉친구이다. 기즈키는 자신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내성적인 소년이다. 친구라고는 나오코와 와타나베(나) 둘 뿐... 딱히 이유도 없이 기즈키는 어느날 자살하고, 나오코와 내게 큰 상실의 아픔을 남긴다. 

 

나오코는 어린시절, 사랑하던 친언니의 자살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충격은 자신의 몸으로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기즈코와도, 나와도 정상적인 섹스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기즈코의 죽음은 나오코에게 죽음의 향수를 뿌리고, 나오코는 그것을 피하지 못함을 깨닫고 와타나베를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킨다. 

 

레이코는 피아노 영재였으나, 연주회의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진다. 엔지니어 남편과 만나서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살지만, 피아노 과외를 하면서 만난 자신의 분신같은 어린제자는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영혼에 생긴 상실의 구멍을 더 이상 메우지 못할 것을 깨달은 그녀도 나오코가 머무는 정신병원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나오코와 그녀는 친한 친구가 된다.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와타나베는 선배 나가사와, 그의 여친 하쓰미와 어울린다. 나가사와는 하쓰미를 사랑하지만, 수많은 여자와 섹스한다. 하쓰미는 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독일 남자와 결혼하지만 상실감에 빠져 자살한다. 

 

와타나베는 같은 강의를 듣던 미도리라는 여학생을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평범한 집안의 미도리는 부자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하나, 성적 에너지(성적인 자유)를 활용하여 그 상처들을 극복한다. 그녀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어머니/아버지의 죽음앞에서 초연하며 아버지의 영정앞에서 와타나베와 섹스를 할만큼 범상치 않으나, 그나마 이 소설에서 가장 밝은 주인공이다.

 

나는 미도리의 밝음과 나오코의 어두움 사이에서 방황을 한다. 나오코는 그녀의 상실감때문에 나를 찾을 뿐이고, 나를 전혀 사랑하지는 않지만, 와타나베는 자신의 분신처럼 그녀를 놓지 못한다. 나오코는 기즈키를 따라가는 길을 선택하고 그녀의 자살은 다시 나에게 죽음의 향수를 뿌린다. 나오코의 장례식이 끝난 후, 레이코는 나를 찾아와서 그녀의 모든 것을 소진하고 (50곡의 노래연주, 네번의 섹스) 나오코의 죽음의 향수를 나에게서 걷어내고 사라진다. "나를 잊지 마"라고 와타나베에게 얘기한 것으로 보아 그녀도 아마 나오코의 길을 따라 갔을 것이다. 죽음의 마약에 그녀도 이미 너무 취해버렸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화한다... 

"너 지금 어디야"... 미도리가 묻지만... "여기는 과연 어디일까..."

나는 어느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그녀를 부르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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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단순 포르노 그라피, 젊은 시절의 성적인 일탈에 관한 얘기로 바라 볼 수도 있고, 삶과 죽음, 상처받은 영혼들에 대한 깊은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다. 소설에서 기즈키, 나오코, 언니, 하쓰미등 많은 인물들이 죽고 특공대라고 부르는 인물은 갑자기 사라진다. 이렇게 수많은 자극적인 죽음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 혼동이 온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삶의 한가운데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소설에서 나오는 나레이션이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일 것이며, 시간의 문제일 뿐.. 삶은 죽음이라는 일방 통행 열차에 실려서 가고 있을 것이다. 

 

라캉의 쥬이상스.. 존재들은 존재를 넘어서려는, 생명은 무생명이 되려는 파괴본능이 있다. 인간들은 높은곳에서 강물을 보면 순간적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사실 무생물의 상태가 훨씬 편안할 수 있고, 존재들의 원천적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는 전염된다.. 기즈코와 친 언니의 죽음은 나오코를 죽음의 열병에 전염시킨다.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를 암흑의 우물로 끌고 가게 될까봐 정신병원에 자신을 격리하고 끝내 자살한다. 나오코의 자살의 열병이 나에게 전염될 것을 간파한 레이코는 "나오코"의 모습을 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와타나베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레이코도 죽음으로 자신을 사회로 부터 격리했을 것이다. 자신의 남편을 지키기 위하여 정신병원행을 택한 것처럼 말이다.

 

부모의 상처는 쉽게 아이들에게 전염된다. 지금 아이들이 아프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팠던 것이고, 나의 아픔이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아이에게 전달된 탓이다. 참회의 108배를 해야 한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오랫 동안 정상적인 것처럼 보여도, 어느 조건이 되면 그 상처가 무의식의 너머로 고개를 내민다. 울 애들도 아빠를 닮아서 범상한 것 같지는 않아서 걱정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운명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을지 모른다. 세상의 기본은 물리/화학적 법칙이고 그것들은 일정한 질서에 의해서 흘러간다. 양자적 해석을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은 수많은 가지, 평행 우주 중 하나의 우주로 흘러갈 뿐이다. 우리는 운명의 흐름에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에 끌려가듯 죽음의 늪으로 끌려간다.

 

위대한 개츠비는 젊은 시절 사랑한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다시 만난 그녀는 이미 그가 사랑했던 여자가 아니지만, 개츠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여 이미 톰과 결혼한 데이지의 사랑을 구하지만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와타나베는 개츠비와 달리, 레이코와의 관계를 계기로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고 미래를 상징하는 미도리를 애타게 찾는다. 와타나베의 성장소설이라고 얘기하는 이유이다.

 

나는 어느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그녀를 부르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와타나베가 애타게 미도리를 찾은 그 곳은 어디일까 ... 곰곰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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