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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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existence_of_nothing 2023. 1. 31. 16:25

많은 과학자들이 환원주의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거시세계의 밑, 그 저변에는 미시적 현상들이 존재한다. 애인을 바라볼 때, 물질과 빛이 상호 작용을 하여 망막에 상이 맺히고, 그것들이 여러 화학적 신경 전달 물질을 방출하고, 그것이 기존에 뇌에 각인된 기억들과 조합하여, 뇌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을 양자역학은 설명한다.

More is different, 창발의 개념을 얘기할 때 항상 만나는 말이다. 앤더슨이라는 초전도체를 연구하던,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가 얘기한 말이다. 공돌이들이 이것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확률 변수론의 central limit theorem을 이해하는 것이다.

동전은 앞과 뒷면을 1/2의 확률로 가진다. 이제 앞에 0, 뒤에 1이란 숫자를 부여하고 동전을 n 번 만큼 던져서 그 수의 합을 조사해 보면, 결과는 정규 분포에 가깝게 나타난다. 동전 하나하나가 정규 분포와는 전혀 상관 없지만, 많은 수의 그들의 의견의 합은 정규 분포를 따른다. 우리가 선거 사전/사후 조사에서 모집단을 정규 분포로 가정하면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할 필요가 없다. 수만명만 조사해도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한 사람 한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많은 이들의 생각의 합은 정규 분포를 따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양자 한 두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쉽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3개 이상만 되어도 정확히 그 답을 풀 수 없고, n개가 되면 computer simulation 외에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n이 무한개에 가깝게, 그리고 규칙적으로 존재하면, 그 해를 또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아주 수가 작거나, 반대로 아주 수가 많은 경우, 해는 어렵지 않고, 중간단계, 어중간한 개수의 양자의 조합 문제는 풀기가 불가능하다.

"예측 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가? does a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 미국 기상학자 로렌즈가 1972년 강연에서 카오스 이론을 소개하면서 얘기한 말이다. "나비효과"... 수많은 입자들이 상호 작용을 할 때, 우리가 그것들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주 미세한 초기 조건의 변화라도 복잡계에서는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나비 한마리를 열심히 쫓아다녀도 그것과 텍사스 토네이도를 연관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소 원자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면 수소 분자를 구성한다. 두 양자의 파동함수가 중첩되면서 동일한 에너지 상태 2개가 서로의 합과 차에 해당하는 2개의 파동함수로 갈라지는데 그 합의 에너지는 원래 상태의 에너지보다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유 결합, covalent bonding 이라고 부른다. 수소원자 2개 사이를 돌아다니는 2개의 전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그 둘이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분자성을 띠게 된다.

수소원자 2개 사이에 산소 원자가 존재하면, 수소원자를 태우면 그들은 H2O 물 분자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전자들은 서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힘을 합쳐서 하나의 존재가 되는데, 이 때, 각자들은 전기 중성이고 전체적으로도 양성자와 전자의 수가 동일하여 중성이지만, 그들의 분포가 균일하지 않기에 전기 쌍극자가 출현하여 마치 전하를 띤 입자처럼 행동한다. 그러면 그들은 서로를 약한 전자기력으로 끌어당겨 뭉치를 이루게 되고, 이것을 우리는 water, 물이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모습들이 이렇다. 시작은 그냥 에너지와 입자 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만나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만나는 모습에 따라 어떤 것은 암석이 되고, 어떤 것은 물이 되고, 어떤 것들은 공기가 된다. 그 모든 것들은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에너지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흙은 날리고, 흙들이 쌓여서 압력을 받으면 퇴적암이 되고, 그들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열을 받으면 변성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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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평화스러운 어느 날, 세상에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분자가 등장한다. 스스로를 복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우리가 결정이라고 부르는 고체,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들도 같은 규조가 규칙적으로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복사의 한 형태이다. 석영은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복제하면서 점점 그 크기를 키운다. 스스로를 복사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의 고분자 화합물이 등장함에 따라 세상 곳곳에 비슷한 물질들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분자들이 어느날 인지질막에 둘러쌓여 세상과의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물질들을 복사하기 시작한다 (코아세르베이트). 복사의 과정에서 변이가 생기고, 변이에 따라 자신과 다른 분자들이 복사되기 시작하고, 그러한 분자들의 조합 중, 불안정한 조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체되고, 안정한 조합들만이 남기 시작한다. 자기 복제에는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그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소화기관이 등장하고 이에 따라 수중의 여러 분자들을 해체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종이 나타나면서 생명은 탄생한다.

분자들에게, 자연에게 삶과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들이 구조를 이루면서 등장한 생명체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가 생긴다. 분자구조가 유지되면 그것은 지속이 가능하고, 해체되면 그 정보는 해체된다. 해체된 것들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의미, 정보가 사라지고, 정보가 유지된 것들은 지속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에게 살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해체와 지속의 과정을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광자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구조를 유지하는 종이 나타나고, 이들이 만든 구조물들을 해체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구조를 유지하는 종이 나타난다.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약탈 능력이 뛰어난 개체는 세상에 좀 더 오래 존재하고 그렇지 않은 약한 존재들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물질들이 상호 작용할 뿐인데,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에 삶과 죽음, 방어와 공격, 소화와 호흡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창발적 모습을 발견한다. 생명체는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운동을 하는 개체가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일 뿐이다. 삶과 죽음은, 그냥 자연의 한 부분, 한 조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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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죽음에 지속과 중단의 의미만 부여하지만, 의식을 가진 존재는 죽음에 일화 기억의 사라짐의 큰 의미가 부여된다. 인간들은 언어를 가진 점에서 타 동물과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돌고래 같은 일부 종족들에게서 음성적 형태의 언어적 수단이 보이지만, 인간들과의 쓰임은 크게 다르다. 인간들은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효율적으로 재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우리가 보통 어린 시절의 기억, 5~6살 이전의 기억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가 완성되기 전이기에 이 때는 세상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있게 재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재구성하고, 언어의 그물 망의 바깥으로 새 나가는 부분은 무의식의 잔재로 남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들은 수많은 타인들과 관계 망을 형성하고, "국가, 민족, 사랑, 증오"같은 수많은 창발적 개념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인간의 뇌가 만든 언어적 세상에서 존재하다가, 유령처럼 떠 돌아다니다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실, 죽어가는 존재에게 남아있는 모든 것들은 무의미하지만, 죽음의 순간 까지도 남아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 대한 때로는 증오의, 때로는 회한의, 감사의 아쉬움 등, 수많은 감정들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한편의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그리고... 죽어가는 존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한편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많지 않다. 나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에서 ... 세상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반대로 진정으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도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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