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중세철학 - 아우구스티누스 본문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은 중세 초기 교부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들 중 한명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로마의 거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옮긴 후 비잔틴 지역의 문명이 발달한다. 그는 로마 식민지인 북아프리카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나서 카르타고로 유학간 후 키케로의 글을 읽으며 철학에 심취한다. 그의 아버지는 마니교, 어머니는 기독교를 믿는 가정이었으며 성장과정에서 마니교를 신봉한다.
마니(216-276)교는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 가를 선/악 이원론의 관점에서 즉, 세상에는 선을 지배하는 신과 악을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신정론의 모순을 쉽게 해결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새로운 많은 질문을 만든다. 왜 세상에 진리 혹은 궁극적인 존재가 둘 존재하는가? 만약 악의 세력이 강력하고 나의 생각이 항상 악에 의해서 오염되어 있다면, 선을 추구하라는 마니교 당신들의 주장은 어떻게 순수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서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고 밀라노 주교 암르보시우스의 강론에 감동을 받아 그의 나이 33세인 AD386년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 과정에서 바울의 다메섹 경험과 비슷한 신비의 경험(“집어 읽어라”라는 목소리에 성경책을 펴니 원하는 답변이 있었다 카더라)도 얘기한다. 그 이후 그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히포 레기우스"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라고 얘기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 도나티스트,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하여 변증신학(Apologetic Theology)을 만든다. 이전까지는 저마다 자신이 믿고 싶은 데로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아우구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에 대한 논리를 갖추고 이단으로 생각되는 이들과 먼저 논쟁을 한다. 논리적인 토론으로 신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은 말이 안 통하는 타 이단들을 로마의 군대를 빌려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기독교 자체가 유일신 외의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기는 하지만, 이단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시작했다고 얘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엄격한 검욕 생활과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신실한 성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는 자비심이 없는 강력한 탄압자였던 것이다.
첫번째는 마니교와의 논쟁(386-395)이다. 마니교를 흔히 영지주의(Gnosticism, 그노시즘)로 분류한다. 그노시즘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즉 앎을 통해서 신 혹은 영을 이해하는 것을 얘기한다. 신이 전능하고 선하다고 가정한다면, 역사에 끊임없이 악이 존재하고 악이 선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이 인간들이 이러한 악을 저지를 것을 알고도 자유의지를 주었다면 이것은 악을 창조/방치한 것이니 선하다는 가정이 틀렸고, 만약 그럴 줄 모르고 선한 의지로 주었다면 전능하다는 것이 틀린 것 아닌가? 신정론의 문제이다.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는 빛을 지배하는 선한 신과 어둠을 지배하는 악한 신이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선과 악은 각각 영과 물질의 영역에 영향력을 미치는데, 지혜를 추구하여 영의 존재를 인식하고 악한 물질의 유혹을 극복하여 영원한 빛의 세계로 가야 한다는 얘기이다. 당연 물질은 의미가 없고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얘기한다. 아우구스가 영지주의 지도자들에게 왜?왜?왜?라고 여러 질문을 던지지만 그들은 쉬운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카톨릭으로 개종 후, 신정론의 논리를 만든다. 아우구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자의 유출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일원론을 주장한다. 그러면 전지전능한 일자가 왜 악을 만들었거나 최소한 방치하느냐? 이에 대한 아우구스의 대답은 “선의 결핍”이다. 전지전능하면서 선한 신이 어떻게 악을 만들거나 방치할 수 있겠는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선이 결핍된 것 뿐이다. 선의 충만과 결핍은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거의 소피스트급 답변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개의 자유의지의 문제인가, 개가 사람을 물것을 예측하고 재갈을 물리지 않은 주인의 잘못인가?
성경책의 어떤 부분을 사실 그대로, 어떤 부분을 은유로 받아들여야 할지 알기는 쉽지 않다. 사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믿으면 설명이 되고, 믿지 않으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 성경책의 오류지적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 보면, 사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교조주의에 빠질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예수가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극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가 신이라면 신을 유혹하는 악마는 누구인가, 누구인데 이 세상을 예수에게 준다고, 세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는가? 영지주의에서 악마는 신의 반대편에서 신의 사업을 방해하는 것으로, 아우구스에게 악마의 유혹은 예수가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설명될 것이다.
두번째로는 도나티스트와의 논쟁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AD28-312)이 성경책을 불태우고 기독교를 박해한다. 이에 배교자들이 속출하고 정권에 협조한 자들이 성직에 오른다. 이를 반대하고 카르타고의 감독이 된 이가 도나투스(Donatus)이다. 이들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교회를 지향하고 (순수하고 거룩한 자만이 세례와 성례를 할 수 있다고 주장) 필요하다면 그리스도를 따라 순교를 하자는 일종의 원리주의 신앙을 주장한다. 황제와 교황의 결탁을 이 세상의 군주와 간음한 교회라고 비난한다. 뭐가 문제인가?
이러한 혁명적인 신앙은 지배권력에도 종교권력에도 모두 위험하고, 따라서 로마 카톨릭은 이들을 이단시한다. 아우구스는 “예정설”을 기반으로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순교에도 반대한다. 도나티스트들이 순수하고 거룩한 이가 주는 성찬/세례만 인정한데 반해 아우구스는 성직자들의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순간 그리스도가 임재하여 주관하기에 의식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피비린내나는 살육 끝에 이들은 사라진다. 논쟁은 방편일 뿐이다.
마지막으로는 펠라기우스 주의와의 논쟁이다. 펠라기우스(360-420)는 아일랜드 출신 수도사였다. 그는 신의 은총만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와 노력을 중요시하였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것을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 아우구스가 인간이 원죄의 오염으로 악을 거부할 능력을 상실한다고 주장한데 비해, 그는 여전히 도덕적 의지에 따라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원죄론 부정)한다. 즉, 자유의지의 능력, 원죄의 영향력에 대한 믿음/불신에 관한 차이이다.
신의 은총을 둘은 다르게 해석한다. 펠라기우스가 은총이란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고, 신의 도움없이 인간이 선한 행동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능력을 준 것이라 해석한데 반해, 아우구스는 원죄로 인해 오염되어 자신의 행위로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인간을 죄에서 용서하고 치유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도 교회와 성당을 10년이상 다녔고, 둘 모두의 자격증(^^)을 획득했지만 지금도 원죄설에 대해서 인정하기가 어렵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이다… 왜… 왜… 누가 죄인이 되고 싶어 태어나겠는가?
오늘날의 기준으로 둘이 논쟁을 했다면 펠라기우스의 완승이 되었을 지 모른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조되면 신이 개입할 (그리고 신을 활용한 교황권이 개입할) 여지가 좁아진다. 이를 염려한 종교 권력은 위험한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규정한다. 죄목은 “원죄에 대한 부정”이다.
중세 교부 철학을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철학은 좋은 대답보다는 좋은 질문을 하는 학문이다. 철학의 많은 질문들은 사실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혹은 무한개의 대답이 가능한 것들이 많다. 이미 신이 존재한다는 답을 정해 놓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교부학자들이 노력한다. 이것은 질문을 고민하는 행동이 아니라 답변에 대한 합리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후 안셀무스(1193-1109), 아퀴나스(1224-1275)로 연결되는 그들은 이미 답은 정해진 상태에서 얼마나 더 정답같이 보이게 할 지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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