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중세사, 장미의 이름 본문
움베르트 에코(1932-2016)는 중세 역사/철학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가 쓴 소설 “장미의 이름”은 유럽 중세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방대한 사료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기에, 책을 읽기 전에 이야기의 배경 유럽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소설이 아니라 복잡한 암호문처럼 보일지 모른다. 에코의 소설은 재미있으면서도 또한 철학적으로도 심오하다. 그가 농담으로, 자신이 소설을 어렵게 쓰는 이유는 “소설을 너무나 가볍게 읽는 독자”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라고 얘기한다.
앞선 게시글에서 얘기한데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로마 교황은 끊임없이 권력 투쟁을 벌인다. 하인리히 4세의 카노사 굴욕과 그 보복이후 신장된 교황권은 프랑스 필리페 4세의 아나니 습격 사건과 아비뇽 유수로 바닥에 떨어진다. 소설에서는 프랑스 편에 붙은 요한 22세(1316-1334, 아비뇽유수 클레멘스 5세 후임)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1314-1347)의 대립과 이에 따른 교황파(구엘린)와 황제파(기벨렌)의 갈등을 보여준다. 신성로마제국은 제후들의 투표로 황제를 선출하는데 루트비히 4세의 반대파에서 프리드리히를 또다른 황제로 선출하여 그들은 7년동안 전쟁(1315-1322)을 한다. 루트비히는 프리드리히를 잡아서 거세시키고 황권 강화를 염려한 요한 22세는 루트비히를 파문시킨다.
장미의 이름은 1327년 11월말의 7일간의 얘기이다.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프란치스코 수도회(황제파)의 월리엄 수사와 그를 따르던 어린수사 아드소이다. 당연히 에코는 오컴의 면도날의 월리엄 오컴(1280-1349)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바스커빌의 월리엄으로 나온다. 월리엄 오컴에서 오컴은 지명을 의미한다). 월리엄 오컴(1280-1349)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이자 철학자이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안셀무스(1093-1109),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와 함께 중세를 대표하는 신학/철학자이다.
교부학자(어거스틴/안셀무스/아퀴나스)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신에 대한 사유가 가능하고, 신이 존재함을 이성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데 반해, 오컴은 신학과 철학의 분리를 주장하고, 신학의 영역은 순수 믿음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들보다 한 세대 앞선 진보주의 철학가인 로저 베이컨(1214-1294)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소설에서 로저 베이컨은 월리엄의 스승으로 나온다. 당연히 오컴은 종교 재판에 넘겨져서 요한22세 교황에게 이단으로 낙인찍힌다.
신앙과 이성의 분리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당연한 얘기였겠지만, 그 당시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사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창조 과학회에서 다시 이성과 신학을 결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역사는 반복해야 한다고 해야 할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어쨌던 이러한 용기있고 실천하는 자들의 밑거름으로 자연과학과 근대 철학이 발전할 밑거름이 만들어진다.
월리엄 오컴의 오컴의 면도날 (Ocam’s Razor)은 누구나 들어본다. 여러 이론들이 동일한 현상을 모두 잘 설명하면 그 중 가장 간단한 설명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다. 필요한 개수 이상의 parameter, assumption을 설정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오류 혹은 오해가 발생한다. 만약 우주 현상이 신이라는 parameter가 없이 설명이 된다면 신에 관한 생각은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을 믿는다. 그것이 순수 믿음의 영역에 있다면 그것은 과학과 전혀 상충하지 않는다. 문제는, 신념을 진실로 오해하는데 있다.
오컴은 또한 유명론으로도 유명하다. 나중에 철학사에 관련해서 글을 올리겠지만 중세에 유명론과 실재론 논쟁이 뜨거웠다. 보편 개념.. 예를 들어 개별자인 특정한 장미가 아니라 보편자인 "장미"라는 개념이 실제로 실재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관한, 사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논쟁이었다. 플라톤이냐 아리스토텔레스이냐? 오컴은 당연히 유명론, 즉, "장미"는 이름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어쨌던, 권력 투쟁과정에서 청빈과 무소유를 주장하는 프란치스코 영성파의 주장을 루트비히 4세가 지지를 하고 (또한 프란치스코파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이에 교황파는 이들을 단죄한다. 극단적인 청빈을 주장하는(사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무일푼/무직업 알거지 들이였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파의 주장이 교황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기에 (“너들이 그러케 말하면 재산 조금(?) 가진 난 모가 되니?”) 요한 22세는 프란치스코회원들이 강제로 재산과 부동산을 가지게 하였다 (“너들, 손 너무 깨끗해.. 흙좀 묻혀“). 이를 지키지 않차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수많은 청빈자들을 죽였다.
이에 오컴의 월리엄등 프란치스코 영성파에서 강력 반발하고 1324년 루트비히 4세가 영성파의 편에 서서 교황을 이단으로 비난한다. 실제로 프란치스코파와 그 교리는 황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실제로는 황제의 반대적인 입장이었겠지만), 황제가 지지했기에 그냥 황제파로 분류되었다. 소설에서 황제측과 교황측 사이의 회담을 위해 개최장소인 수도원에 황제파 인사로 도착한 월리엄 수사에게 원장이 비밀스럽게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얘기한다.
소설속에 도미니크 수도회의 이단심문관인 베르나르 기의 잔혹한 행위가 나온다. 월리엄수사는 베르나르(툴루즈 지방 이단 혐의자들의 씨를 말린자라고 언급)에 대해 “정의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변질되었다고 평한다”. 장미의 이름의 큰 주제 중 하나가 “정의에 대한 지나친 탐욕을 경계하라”로 이해한다. 월리엄 수사는 아드소에게 “절대적인 것을 경계하라. 절대적인 것은 절대 그대를 죄로 물들여갈 것이니.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
장미의 이름에 베네딕트,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수도회에 관한 얘기들이 나온다. 베네딕트회는 6세기초에 성 베네딕트가 몬테 카시노에 세운 수도원이다. 금욕적이고 엄격한 생활을 하지만 수도원 차원의 재산소유를 인정하고 그 재산에 기반한 자급자족 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은 고서의 필경에도 신경을 쓴다. 소설에서 필경사 중 한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웃음”에 관한 진실을 탐구하다고 신념에 찬 장님 수도사(호세)에게 살해 당한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209년 성 프란치스코가 “작은 형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한 탁발 수도회이고 1223년 교황 호노리오 3세에게 승인받는다. 교회이던 수도사이던 일체 무소유의 청빈운동을 벌이지만 극단적인 “돌치노파”는 교회조직 자체가 악의 근원이며 그들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한다. 이후 ‘돌치노파’는 탄압을 피해 팔레트 칼바산으로 이동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인근 마을을 약탈하고 (무소유이기에… 먹을게 없다… 삶의 아이러니 ^^) 결국은 잡혀서 (1307)모두 화형에 처해진다.
장미의 이름에 “베지에 학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우리 나라의 4/3 양민 학살사건과 비슷한 사건이다. 십자군들이 1209년 프랑스 리용에서 집결한다. 그들은 먼저 유럽내 이단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베지에(Beziers) 지방에 쳐들어간다. 그곳에는 영지주의를 믿는 카타리파(선악 2원론을 믿는 영지주의 분파) 외에도 정통 카톨릭 신자도 많았지만 구별이 잘 안된다는 이유로 2만명의 주민들을 모두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지나친 정의에 대한 신념은 무신념보다 훨씬 위험함을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