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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오 토노니 - 파이

existence_of_nothing 2021. 4. 10. 10:57

 

파이: 뇌로부터 영혼까지의 여행          by 줄리오 토노니

 

의식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 연구에서 성배에 해당하는 분야가 바로 의식의 출현이다. 요즘 이공계의 가장 큰 화두는 AI연구이며, 국가 연구비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지원되는 분야이다. 구글의 궁극적인 연구도 결국은 새로운 지능의 탄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자동 주행 차량, 인공 지능 그리고 양자 컴퓨터의 연구가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  구글이 전통적인 슈퍼 컴퓨터로 1만 년 걸리던 연산을 단 200초 만에 풀 수 있는 양자 컴퓨터 기술을 개발했다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에 관한 논문을 네이처지가 발표하였다. 경쟁 연구 집단인 IBM에서는 그 연구는 훌륭하지만, (기존 컴으로도 이틀 정도면 계산 가능하기에) 양자 우위를 입증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뇌세포는 이미 아는데로 1000억개의 세포와 세포마다 1000~10000개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된다. 신경회로망 (artificial neural network)은 뇌세포를 모사하게 설계되어 있다. 세포에 해당하는 노드들과 시냅스에 해당하는 가중치(weighting factor)로 구성된다. 인공지능(신경회로망)이 하는 일은, 인간의 뇌가 하는 것과 비슷하게 결국은 범주화이다. 학문적인 용어로는 classification이다. 비슷한 패턴을 하나의 보편자의 형태로 분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x100 화소, 가로 세로 100화소의 영상은 기본적으로 10000 차원의 엄청난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한 화소당 8bit로 표시한다면 2^(80000)의 패턴이 가능하고 이것은 우주 원자 전체의 개수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존재들은 그렇게 많지 않고, 뇌는 입력 신호로부터, 특징(feature)을 추출하여 사물을 범주화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범주화 기능에서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를 잘 모사하고 있다. 이미, 차량, 번호판, 신호등 과 보행자 인식에서 인간보다 더 빠른 시간에 훨씬 적은 오류율을 보인다. 법률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인간들이 자신들의 오류를 즐기는 (드라이빙) 충동만 배제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율주행 차량을 도입하는 것이 교통 사고 예방에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부분적인 판단 능력의 수준에서도 이미 인간은 AI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체스, 바둑, 전략 게임 모두 인간은 AI에 완패를 당하고 있다. 바둑의 경우, 현재의 국면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라는 전략 게임인데, 컴퓨터는 수천년 인간의 지혜가 축적된 “정석”을 가볍게 비웃고 있다. 요즘, 바둑계에서는 AI를 보면서, 왜 저 초절정 고수는 저런 판단을 한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의식의 발현은 다른 문제이다. 의식은 단편적인 판단이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결합해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추상적인 형태를 유추해야 하고, 인간적 의식에 이르면 자의식, 즉, “나란 무엇인가, 누구인가”에 관한 논리적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뇌라는 기계는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신경 학회에서 관련 논문을 무수히 쏟아내고 있다.

 

의식 연구에 관해서 현재 가장 hot 한 연구는 통합 정보 이론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이다. 위스콘신 대학의 줄리오 토노니 교수가 제창한 학설이다. 그에 따르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모든 사물들은 기본적으로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의식의 수준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그 척도를 pi(파이)라고 명명한다. Pi가 0이 아닌 어떤 사물들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 범심론을 연상케 한다. 내가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컴퓨터도 의식이 있고, 동물도 식물도 심지어 광물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

 

의식의 정도는 개별 입력 정보들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증가하는 정보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그의 주장은,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이해가 될 것이다. 환원적인 분석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심리를 분석하는 Gestalt psychology(게슈탈트 심리학)도 비슷한 얘기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를 한다. 책에서는 photo diode라는 단순한 광센서 소자도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도 의식이 있을 것인가, 우주도 의식이 있을 것인가, 돌 하나하나도 의식이 있을 것인가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의식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논의, 정보로부터 반응을 유발하는 인과성을 얘기할 때, 우리는 짧은 시간, 우리 주변의 공간만을 주로 얘기하기에 대부분은 수많은 정보 교환이 아주 좁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소우주, 뇌의 경우에만 의식은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파이”는 줄리오 토노니 교수가 그의 통합 정보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서평은 별로 좋지 않고, 특히 이공계 생들에게는 쓸데없는 얘기가 너무 많고, 정작 알갱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인문계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말의 향연에 약간은 매료될 수 있다.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뇌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지, 뇌에 이상이 생기면 사고(영혼)에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지, 물질로 이루어진 것들 (뇌를 포함하여) 이 어떻게 서로간에 정보를 주고받아서 의식을 창출하는 지를 설명하고 있다.

 

토노니 교수가, 지적인 유희를 위해서만 파이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연구 그룹의 주된 연구 테마는 현재 뇌사/혼수/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가, 겉으로는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정량적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서 주인공 "장 도미니크 보비"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미세한 눈꺼풀과 의식만으로 세상과 교류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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