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파울클레, 칸딘스키, 화이트헤드 본문
파울 클레(1879-1940)은 20세기 최고의 인텔리 화가라고 불린다. 현대 추상 회화의 시조라고도 불리며 9000여점의 다작을 남긴다. 7세에 바이올린 연주회를 하라 정도의 음악신동이었으나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상징주의의 대가 프란츠 폰 슈타크에게 그림을 배우고, 뒤셀도르프 미술학교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수학/물리학/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다.
"미술이 대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문학과 같은 세부 묘사에 머물면서 모방의 노예가 될 것이다", 1912년 로베르 들로네와의 만남을 통해서 색체를 강조하는 상징주의적 화풍으로 변신한다. 선이야 색이냐... 클레는 색을 선택한다.
<세네치오,1922><고양이와 새, 1928><금붕어,1925>
책에서 파울 클레라는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예전에 벤야민에 관한 글을 쓸 때, 벤야민이 반한 그림, anagelus novus,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 그림을 보고 감명하여 구매한 후, 자신이 간행하는 잡지의 이름도 앙겔루스 노부스라고 이름짓는다. 천사는 죽은자들을 깨우고 부서진 것들을 모으고 싶어하지만, 미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에 떠밀려 간다고 해석한다. 아래 그림에서 그런 상상을 하다니... 그냥 빠마한 얼큰이 같은데 ㅠㅠ..
바실리 칸딘스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1866년 모스크바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5살때 이혼의 충격으로 그는 내면의 세계로 침잠한다. 그후, 이모 엘리자베스 티체바가 매일 들려주는 동화책을 통해 상상의 세계속에 빠져들던 아이는 훗날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된다. 촉망받던 법학자였던 그는 나이 30에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을 보고 화가의 길로 들기로 결심한다.
초기에는 고전적인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리던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던 그는 관현악곡을 들으며 색채를 떠올리는 묘한 경험을 하면서 추상화가로 변신한다. 클레와 함께 독일의 미술/공예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보는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칸딘스키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바라본 데로, 표현하고 싶은데로 그리자는 생각을 가지고 뜻이 맞는 예술가들을 모아 청기사파를 만든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화실에 놓인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감탄하다가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인 것을 알고 실망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철학같은 내적인 정신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객관적인 자연 묘사가 아니라 대상을 보고 화가가 느낀 감동/감상을 가장 간단한 도구로 표현해야 한다는 추상주의를 탄생시킨다.
<몇개의 원, 1926> <노랑-빨강-파랑,1925> <다채로운 삶,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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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과정의 철학자 화이트헤드 (1861-1947)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철학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사실 오래된 철학자이다. 러셀과 함께 “수학 원리 (Principia Mathematica)”라는 수학책을 완성하였고, 당연히 수학자로 시작하였다가 1924년 63세의 고령의 나이에 미국(하버드 철학과)으로 건너가면서 철학을 시작하였다. 우리 말로는 백두(white head라서...) 선생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수학 원리”와 “과정과 실재”이다. 유기체 철학이라고 불린다. 모든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도 상당히 난해하다. 일단, 용어부터 이전 철학자와 통일되지 않고 그만의 용어들을 창조한다.
나무위키에 "수학원리"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들이 있다. 3권으로 되어 있고, 집필에 10년이 걸린 대작이었지만, 난해한 공식으로 뒤덮여 있어서 비교적 쉬운 1권 외에는 아무도 사지 않았다. 600파운드의 손실중, 출판사가 300, 왕립학회가 200, 나머지 100은 러셀과 함께 반띵으로 손해를 감수했다. 원래 4권, 기하학까지 집필할 계획이었지만, 당연히 포기한다. 러셀이 나중에 얘기하길, "2권과 3권을 읽은 사람을 딱 여섯 명 알고 있었는데 그중 세 명은 폴란드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히틀러에게 제거된 것 같다. 나머지 셋은 텍사스 사람인데 그나마 나중에 사회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사실 주류보다는 변방에 가깝다. 사실 늦은 나이까지 그의 주 전공은 수학이었기에 철학계에 기여할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 20세기 초에 여러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이 이루어진다. 뉴턴역학을 뿌리부터 흔든 상대성이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을 요구하는 양자역학의 태동이 그것들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반영한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인식론, 유기체 철학을 만든다. 아래는 1929년 저술한 "과정과 실재"이다.
철학의 많은 문제들을 보면 사실 큰 카테고리로 분류를 할 수 있다. 목적론적인 세계관이냐 아니면 기계론적인 세계관이냐, 본질주의이냐 상대주의이냐 등이 큰 부류 중 하나일 것이다. 뉴턴 역학이 태동하기 전만 하더라도 존재들의 운동에는 존재 자체에 내재한 목적인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모두들 믿었다. 뉴턴에 의해서 목적인은 제거되고 작용인, 인과 관계만이 세상을 설명한다. 작용인이 강조되면서, 세상은 기계적 질서에 의해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그렇다면 세상에 변화와 진화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영원한 반복만이 존재할 것인가?
화이트헤드는 그 둘의 조화를 시도한다. 그에게, 이 세상의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간단히 소립자, 미립자들을 생각하자)들은 스스로의 주체적 결단에 의해서 "만족"의 상태에 이를때까지 타 존재들과 유기적으로 협력/변화한다. 다자의 현실적 존재는 일자를 이루면서 만족을 이루고 만족의 상태에 이르러 현실적 존재는 소멸하고 타 존재의 동일한 과정을 위한 배경적 상태를 구성한다. 이를 "이행"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현실적 존재는 합생과 이행 혹은 생성과 소멸을 계속하면서 진행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바로 "실재"라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불교의 무아/연기설을 떠올리는 주장이다.
모든 현실적 존재가 각자의 주체적 결단을 한다면 세상은 아노미 상태가 될 것이다. 네모난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은 허용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눈에는 어떤 정해진 형식으로서의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 파랑, 빨강, 세모, 네모, 수학적 공식... 등등, 존재하지만 변하지 않는 개념들, 이러한 보편자들을 화이트헤드는 "영원한 객체"라고 부르며, 영원한 객체들은 현실적 존재들을 유혹(?)하여, 주체적 결단을 하게 만든다. 플라톤의 이데아, 중세의 유명/실재논쟁을 떠올리는 주장이다.
영원한 객체와 현실적 존재가 관계맺게 되는 중재자로서, 다자가 일자를 이루는 과정에 또 다른 현실적 존재인 "신"이 개입한다. 화이트헤드에게 신은 우리가 말하는 인격적이고 완전무결하고 선한 신이 아니다. 신은 "현실적 계기"와 함께 현실적 존재를 구성하는, 그 자신도 생성과 소멸의 대상인 데미우르고스적인 존재이다. 다만, 신은 현실적 존재의 배경으로서 존재해야 하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세상 모든 것들, 현실적 존재들은 신/영원한 객체와 관계를 맺어야 하기에, 세상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여 있다는 "범재신론"을 얘기한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보다보면 창조진 진화, 질적인 시간, 존재 내부의 탈주의 원천인 엘랑비탈을 주장한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과 유사함을 느낀다. 또한, 철학자들의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무한 양태, 범신론의 개념도 차용하고 있으며, 보편자의 실재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모습도, 존재 내부의 목적인을 부분적으로 허용한다는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일부 보인다. 또한, 개별 존재들 내부의 창조성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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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떠한 맥락속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화이트헤드가 정확히 무엇을 얘기하고자 한 것인지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간단히 "현실적 존재"가 무엇인지, 소립자같은 원자 수준의 물질을 말하는 물리적인 의미인지, 진화의 단위인 생명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 대상으로서의 말로 할 수 없는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정의하거나 얘기하지 않는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의 배경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등장에 따른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의 파괴, 양자역학/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른 뉴턴이래로의 기계적인 세계관의 파괴, 빛과 물질(전자)의 파동/입자로서의 이중성과 이로 인한 과학적 인식의 한계, 모든 가능성의 중첩 상태로 존재하는 파동함수가 관측의 순간에 하나의 실재로 결정된다는 "관찰자 효과"등이 한꺼번에 도출되는 시기였다. 그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그의 철학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가 얘기하고자 한 바에 동감이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