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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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

existence_of_nothing 2022. 8. 4. 10:43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노자의 도덕경은 참으로 묵직한 울림을 주는 말로 시작한다.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고 철수하고 부르면 철수가 아니다. 이 말은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그 해석에 따라, 노자를 읽는 전체 독서의 방향성도 설정된다. “도”를 언어로써 규정지을 때, 그 언어의 여백 사이의 의미가 상실되고 도는 언어의 그물망을 벗어나서, 저 곳으로 달아난다. 또한, 우리가 “도”라고 말할 때, 그 도는 이미 과거의 “도”이기에, 변화 무쌍한 변화로서의 의미를 캐치하지 못하게 된다.

 

김춘수의 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로 시작한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 꽃은 존재와 무존재의 경계선상에 있는 그러한 채로 있다고 우리가 그 꽃을 바라보고 그 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부터 그것은 내게 존재로서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그의 세상에서 꽃은 원래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부여한 의미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꽃은 원래 그대로의 꽃은 아니다. 마치, 나무가 의자로 변화하면서 나무로서의 의미를 잃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장자의 내편 소유유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신하여 9만리(지구 한바퀴)를 날아간다는 “붕”의 얘기로 시작한다. 비록 이 자리에서는 천하고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무한한 사유성 그리고 자유를 향한 처절한 노력을 통해서 그는 타인들이 보지 못하는 곳, 가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주변의 매미와 새는 왜 그리 힘들여 9만리를 날아가려고 하는지, 왜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마천은 장자와 노자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노장 사상, 혹은 도가 사상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러나, 그 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도”의 존재에만 일치를 하고 있을 뿐, 많은 부분에서는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르다. 노자의 도덕경을 혹자들은 개인을 위한 훌륭한 수련서로 이해하고, 다른 이들은 군주/신하를 위한 처세서로 이해한다.

 

텍스트는 저자를 떠나는 순간,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누군가는 경전 그 자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들이 무엇인가를 알기 전에, 그는 알기 위한 사유의 틀을 갖춰야 하며, 그 사유의 틀은 사회/구조/개인적인 경험이 강요하는 의식적인 틀뿐 아니라, 공동체(밈)와 무의식조차도 스며들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노자에서 군주에게 헌화된 처세과, 무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민중들을 수탈하는 방법론을 읽는다. 무위, 무리하게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지 말고, 때가 되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하라. 무리하게 세금을 걷으려고 하지 말고, 적당하게 적게 거둬서 나라의 안정을 꽤하라. 무리하게 민중을 다스리지 말고 덕을 통해서 백성들이 따르게 하라. “도”와 “덕”에 관한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철학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반대인 군주를 위한 훌륭한 처세론으로 노자를 해석해도 그 텍스트는 해석되며, 강신주의 충격적인 해석 방법은 학계의 또 다른 노자 해석법으로 등용된다.

 

최진석은 노자에게는 변화가 없고, 장자에는 변화가 있음으로 그 둘을 차별화한다. 노자는 모든 변화하는 것들의 근원으로서 “도”를 얘기한다. “물질은 무성하다가 제각기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근원으로 되돌아감을 고요한 정적의 상태라 한다. 정적의 상태를 제 운명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복명함은 항상 불변함이라고 말한다.” 변화의 바탕에서 변화하지 않고 고정된 말로 할 수 없는 그것.. “도”를 얘기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노자는 정적인 것을 얘기하기에 (나의) 변화를 가정하는 수양서로는 적합하지 않으며 장자는 동적인 것을, 시간과 변화를 얘기한다고 얘기하며 노자는 평면적, 장자는 입체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장자(BC369~BC286)는 노자의 한 세대 다음 사람으로 송나라 출신으로 맹자와 동시대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강신주는 “대붕”의 해석을, 자신과 마주치는 더 큰 자신 혹은 낯선 자신의 “타자”와의 조우로 설명하며, “타자와의 소통”을 장자를 관통하는 철학적 주제로 이해한다. 송나라 모자 상인이 월나라에 갔더니 모두 머리에 문신을 하여 모자가 필요없었다는 우화, 노나라 왕이 바다새를 자신의 방식대로 대접하려다 도리어 아사시킨 우화 등을 통해서 자신과 다른 타인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해석한다.

 

장자는 “기”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우주 만물의 움직임의 근원을 기의 운행으로, 생명은 기의 뭉침이고 죽음은 기의 흩어짐(생은 기취, 사는 기산)으로 본다. 사실, 노자가 도를 얘기할 때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라고 설명을 하는데, 여기서 하나를 “기”로 둘을 “음양”으로 셋을 “화기/청기/탁기 혹은 천/지/인”으로 해석하기도 하기에 “기”의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다. 도가 하나를 낳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마치 “빅뱅”을 연상케 하는 언사이다.

 

노자와 장자의 일치점은 보이지 않는 “도”와 “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인간에 앞서 자연을 얘기하고 있는 점, 그리고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진리를 강조한다는 것에 있다.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또한 상보적임을 얘기하고 장자도 또한 혜자와 “박” 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전혀 쓸모 없을 것 같은 박도 용도에 따라서는 좋은 쓰임이 있을 수 있음을 그리고 전혀 가지를 내지 못하는 나무도 큰 그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즉, 무조건 나쁘거나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임을 깨우치게 한다. 노자가 무위의 통치술을 권하는(“통치자들이 만약 이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 만물이 스스로 와서 복종할 것”) 군주의 바람직한 처세를 얘기한 반면, 장자는 모든 권력의 허구성을 통렬히 비판하고 절대적인 가치에 의한 차별보다는 상대적인 가치에 따른 차이를 강조하는 아나키스트였다는 점에서 그 둘은 큰 차이를 보인다.

 

공자는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일보다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의 해결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소승으로서, 개인 해탈의 수단으로서의 불교는 중국에 와서는 의미가 퇴색되고, 민중 구원으로서의 대승 불교로 탈바꿈한 것도 그러한 것에 연유한다.

 

물론, 공자도 주역의 방대한 주석을 연구하고, 또한 변화를 일으키는 그 무엇인 “역”을 “도”와 비슷한 것으로 언급하기는 한다 (공자에게의 “도”는 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윤리적 목표로 간주된다). 사실 제사를 강조하는 유교에서 실제로는 귀신과 사후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남송의 주희는 현실로서의 유학에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성리학”이라는 후기 유학을 만든다. 주희의 원래 의도는 불교와 도교의 과도한 관념성, 인간사에 대한 의미 축소, 가치 중립성과 이로 인한 도덕의 붕괴를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불교와 도교의 많은 부분을 차용하였으며 다만 그를 토대로 자연과 우주가 아니라 인륜과 도덕을 얘기하였다.

 

성리학은 “성즉리” 즉 인간의 성품의 본질이 바로 우주의 근본 바탕인 “리”와 동일하다는 즉 천=인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공자는 "리"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고, 맹자는 "리"를 "결"의 의미로 간략히만 언급했다는 점에서 초기 유학과 구분되고 따라서 후기 유학이라고 부른다. 송나라 시기에 "훈고학"과 "불교"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학문이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를 뒤엎고 등장한 조선시대에 불교를 배척하는 주자학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유용한 학문이었고, 정작 중국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었는데, 조선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통치 이념이 된다. 오래전 춘추전국시대의 4서(논어/맹자/중용/대학) 5경(역/시/서경,예기/춘추)의 원래 취지로 돌아가자는 복고적 학문은 금나라에 쫓겨 남송으로 밀려난 한족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이에 대중들이 불교로 돌아서자 이에 대한 대안 프라파겐다(propaganda)로 눈에 보이지 않는 "리"와 "기"에 따라 우주가 운행된다고 주장한다.

 

리가 태극, 기가 음양오행의 운행원리에 해당한다. 주희가 자신의 “리”와 “도”를 다르게 설명하려고도 노력하였지만, 사실 그 둘은 거의 차이가 없는 동일한 개념이다. 문제는 “리”와는 뗄레야 뗄 수 없으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기”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여기에서 많은 갑론을박이 등장하고 조선에서는 "주기론"과 "주리론"으로 분화한다.

 

아래 글들은 예전에 써 둔 성리학 관련 글들인데, 비슷한 내용이라 함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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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난으로 당이 멸망한 후(907), 오대십국(907-979)의 혼란기를 조광윤이 960년에 수습하고 송나라를 세운다. 북송(960-1127)은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밀려나 남쪽으로 내려와 항저우를 도읍으로 남송(1127-1279)을 세운다. 금나라는 1234년 테무친(칭기즈칸)에게 멸망당하고 1279년에는 남송을 밀어내고 몽골족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한다.

 

남송의 주희는 공자/맹자의 고대 유교 철학에, 불교/도교의 사상을 결합/비판하여 성리학(주자학)이라는 새로운 유학 학파를 창시한다. 주자의 성리학은 이기이원론에 따라 "리"(이)라고 불리는 존재원리에 따라 "기"가 운행하여 물질과 영혼들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 인간의 심성은 우주적 본성(이성)인 "리"와, 감정적 요소인 "기"가 결합한 것이라는 "심성론"을 얘기한다.

 

감정은 4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칠정(희노애구애오욕)으로 4단은 "리"에서 칠정은 "기"에 따른 것이라고 퇴계 이황은 해석했다. "리기"를 구별할 수 있으며 "리"의 작용 후 "기"가 뒤따른다는 이황의 주리론(영남학파, 동인)과 "리기"는 동시에 작용하며 구분불능하다는 이이의 주기론은(기호학파, 서인) 조선사회를 당파 분쟁으로 이끈다.

 

사실, 유학에서 말하는 "리기"론을 우주론적 관점에서 해석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무의미한 의미 붙이기이다. 유학은 존재론 자체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성리학은 도교와 불교의 이론이 그 철학적 체계의 우수함은 인정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한다고 비판한다. 도교의 무위론과 불교의 무아론 모두, 기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위험한 사변철학임을 비판하고 철저히 인간 중심, 체제 중심의 정치/사회 규범을 확립하는데, 어쩌면 윤리학으로서의 철학적 임무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리기"론도, 실제로 "심성"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적 의미로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학에서 "제사", "혼백", "선조의 은덕"을 얘기하지만, 정작 그 철학적 근간에는 현재의 삶이 가장 중요하며, 사후의 일은 지극 형이상학적인(추상적인) 추론으로 간주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유교에서는 천국/지옥과 같은 심판주의적 사후 세계, 육체와 무관하게 순수 이성으로서의 영혼의 존재와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죽음은 혼과 백을 모두 흩어지게 만든다는 얘기는 사실, 불교의 무아론 철학에 더 가까울 수도 있으며, 현대 과학이 얘기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내용이 어찌되었던, 형식상으로는 도교의 "도", 불교의 "공", 유학의 "기", 모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존재 원리를 가정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현대 과학이 보이는 부분에 대한 많은 신비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한 때는 기계론적인 세계관에 의해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지만, 오늘날 과학은 다시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이는 것들의 밑바탕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다. 물론, 수학이라는 좀 더 정교한 언어를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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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불교/도교/서양철학 등 다른 여러 철학에 비해, 동양적 유교사상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타고난 반골 기질을 가진 나에게, 나의 주체적인 선택 이전에 이미 주어진, 선과 악의 프레임, 그리고 가슴에 와닿는 정당한 이유도 없이, 그 프레임에 순응해야 선으로 취급받는 기성세력/기득권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가 대승불교와 차이가 많듯이, 원래의 유교 사상은 다분히 성선설에 기반한 이상 세계를 추구했을지 모르지만, 항상 그렇듯이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과 조선에서 성리학(주자, 1130-1200)이 유행한 이유는 지배층의 집권을 합리화하는데 도움이되었기 때문이다. 리와 기에 의해서 만물이 생성되고 운용된다. 가벼움과 무거움, 하늘과 땅, 천자와 일반 평민등, 만물에는 이미 생성의 단계에서 위계적 질서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심성에 있어서도 인간 본연의 도덕성(본연지성)이 이미 존재하고 이를 따르는 것이 선이며, 개인의 본능적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기질지성은 인욕으로 억제되어야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부패한 황족이라도 주변국들은 이들에 충성해야 하고, 백이와 숙제같은 맹목적인 충심은 훗날 크게 장려된다.

 

왕수인(1472-1528)은 삼수 끝에 28세에 과거에 급제해서 관리가 되지만, 중앙 정부의 부패상에 대응하다가(환관 유근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림) 용장으로 귀양간다. 삶과 죽음을 오가던 유배지에서 어느날 돈오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는다. 즉,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데에는 수많은 공부와 수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본성을 알아채리기만 하면 된다라는 "심즉리"사상이다. 불교의 "심즉불", 즉, 내 안에 불성이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의 내용중 "격물치지"란 말이 있다.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깨우치면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신수는 깨달음이 올때까지 오랜 기간 공부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점수), 혜능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바라봄으로 한 순간에 세상의 이치를 깨닿는다 (돈오). 왕수인은 격물치지로 성리학을 공부하던 와중에 돈오로 "심즉리"사상을 깨닫는다. 세상의 이치는 내 마음에 있으며, 알고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선지후행"), 실천을 통해서 앎을 추구하는 "지행합일"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왕수인은 "심즉리", "치양지", "지행합일"을 주장하는 양명학을 창시한다.

 

"격물치지"는 4자의 성어로 된 단순한 언어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칸트의 물자체 혹은 헤겔의 관념론으로 전혀 다른 세상으로 빠질수도 있다. 주자는 물자체가 존재하며, 이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서 사물의 본성/질을 파악하여 만물의 리/기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양면은 물자체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인식이 되기에 관념과 물자체의 구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즉, 우리는 마음/인식작용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주자에게 도덕은, 마음의 작용을 떠나서 이미 세상에 새겨진 선한 본성의 코드이며, 마음은 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이 코드를 바꿀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양명은 세상의 선악과 도덕규범은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나타나며, 예를 들어 효와 같은 것은 부모와 자식이 존재할 때에 마음의 작용에 따라 나타나는, 즉, 선험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리"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리"의 형태로 드러난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에 따라 도덕적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에, 인간 보편적인 선의 구현을 위해서 "정심", "정사, "위선거악시격물" 같은 인간의 행동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사실 주자/양명학은 비슷한 얘기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퇴계 이황은 양명학이 주자학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졌으며, 리의 상이 심인데 심즉리를 주장하는 것, 심즉리에 따라 주관주의적 유심론에 빠질 수 있다는 점, 양명학이 불/선의 사상을 일부 따른다는 점, 선행후지의 성격을 갖는 지행합일을 통해서 선을 자각/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궁리를 통해서만, 즉 정확히 선을 이해하고서야 그 실천적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여러 점에서 양명학을 사문난적의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것은 조선 전체를 통해서 구한말까지 이어진다. 중국과 일본에서 양명학이 정통 학문으로 장려되고 연구되었던 반면, 조선 사회에서 양명학은 그 철학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연구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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