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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인식하는 물질, 존재와 의식... 자연철학적 접근

1840년의 아편전쟁은, 동양 근대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중화사상의 중국,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조선, 천황/쇼군 봉건제의 일본 모두에게 영국 군함 몇 척에 천하의 중국이 힘도 못쓰고 항복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동양세계의 서양세계에 대한 완패였으나, 당시 청과 조공관계인 화이질서(華夷秩序)의 체재하의 조선은 중국 관보의 왜곡된 시각을 받아들여, 그냥 하나의 해프닝 쯤으로 여기게 된다. 실제로, 동양의 귀퉁이 나라인 조선에 대해서 타 제국의 관심이 그다지 크지도 않았기에 잠시는 문제가 없었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근대화 시점을 당길 수 있는 안타까운 기회를 놓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네들란드가 전해준 생생하고 비참한 동양의 현실을 그대로 접하게 되고, 이미 ..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초반을 대표한다. Fauvism, 야수파의 두목이다. 전시회에서 그의 그림들과 함께 전시된 다비드 상을 보고 평론가가 "이곳은 마치 야수들에 들러쌓인 다비드 상같다"고 비판적으로 얘기하자.. "오홍? 좋은데 야수파.. 좋아 우리는 이제부터 야수파라 하자"... 구글링을 하니, 생기기도 야수처럼 생겼다. 그의 그림은 외부를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사물을 과감하고 단순하게 변형하고, 터치도 비뚤비뚤 자유로우며, 색채의 대비도 강렬하다.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나서 22세에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맹장염에 빠진 그를 위로하기 위해 어머니가 가져온 그림들은 그의 진로를 바꾸고, 1893년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구스타프 모로에게 배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흔히 "근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과대학에 입학한 세잔은 결국 적응하지 목하고 외톨이가 되고, 이를 염려한 아버지는 포기하고 그를 파리로 보낸다. 그러나, 원하던 미술학교 입학도 낙방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은행원으로 일한다. 근데, 여기에서 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또 때려친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전형적인 loser의 모습이다. 우유부단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때문이었다. 운이 좋게도 부유한 모자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다시 23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후원으로 다시 파리로 건너가고 운이 좋게도 스승 '피사로'를 만난다. 그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에 따라 미술을 계속하지만 그의 외골수 성격덕에 세잔은 당시의 인상파 화가들..

푸앙카레 (1854-1912) 는 프랑스 로렌 주낭시의 부르주아 명문가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5세때 디프테리아에 걸려 유약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부유한 공무원 집안 출신이라 유럽 각지를 주유하면서 보낸다. 1873년 프랑스 최고 이공 대학인 에콜 폴리테크 이공과에 수석입학/차석졸업한다. 졸 업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미분방정식에 관한 연구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캉 대학/파리 대학에서 교수직을 이어간다. 다른 많은 천재들과 달리, 짜증나게도, 그는 걍 쭈욱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따라서, 사실 얘기할만한 감동적인 스토리는 별로 없다. 정치적 성향도 거의 중립적이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의 입장을 변호하여 검찰측에 과학적 반론을 한다. 푸앙카레는 수학계에서 “the last un..
어떤 이들은 젊은 나이에는 인문학을,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 과학을 공부하고 또 다른 이들은 반대로 젊은 나이에는 과학을, 늦은 나이에는 인문학을 공부한다. 사실, 전자의 경우는 숫자도 많지 않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기억력/이해력이 떨어지고, 특히 수학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리어, 자연과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문학적인 의미를 붙이는 후자의 경우가 훨씬 흔한 편이다. 그러나, 사실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면 젊었을 때에는 많은 인간관계가 존재하고, 인생의 주요한 판단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인문학적 소양이 크게 필요하고,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면서,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정리할 필요성이..

파울 클레(1879-1940)은 20세기 최고의 인텔리 화가라고 불린다. 현대 추상 회화의 시조라고도 불리며 9000여점의 다작을 남긴다. 7세에 바이올린 연주회를 하라 정도의 음악신동이었으나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상징주의의 대가 프란츠 폰 슈타크에게 그림을 배우고, 뒤셀도르프 미술학교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수학/물리학/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다. "미술이 대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문학과 같은 세부 묘사에 머물면서 모방의 노예가 될 것이다", 1912년 로베르 들로네와의 만남을 통해서 색체를 강조하는 상징주의적 화풍으로 변신한다. 선이야 색이냐... 클레는 색을 선택한다. 책에서 파울 클레라는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예전에 벤야민에 관한 글을 쓸 때, 벤야민이 반한 그..

1206년 테무친은 몽골을 통일하고 칸에 오른다. 이 후 남방 서하와 금나라를 제압하고 서방 원정길에 오른다. 먼저 중앙아시아 최대 강국 "호라즘"왕국을 격파하고 카스피해까지 진출한 후, 다시 동남 원정을 통하여 1227년에 서하를 멸망시키고 금나라 원정길에 병사한다. 2대 오고타이칸(태종)은 1239년 금나라를 멸하여 중국 북방과, 다시 서방원정하여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4대 뭉케칸은 서아시아의 아바스 왕조를 5대 쿠빌라이칸은 남송을 1279년에 멸하고 ,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역을 통치한다 (사실 식민지까지 포함하면 1위는 대영제국). 또한 우리나라도 1231~1259년, 고려 고종 치하에서 9차례에 걸쳐 "여몽전쟁"으로 국토를 유린당하고 몽골의 부마국이 되는 치욕을 겪는다. 칭..

5호16국의 마지막 왕조 북량을 선비족의 척발규가 멸망시키고 북위(386-535)를 창건한다. 북위는 다시 동위(534-550)와 서위(535-557)로 갈라지고, 동위는 북제(550-581), 서위는 북주(556-581)로 갈라진다. 북주의 무제는 북제를 멸하고, 북주의 장군 장군 양견(수문제)는 북주를 무너뜨리고 "수나라"를 창건한 후(581) 남조를 멸하고 다시 전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다. 수문제는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과거제를 도입하고, 부역/세금을 감면하고 검소한 생활을 솔선수범하여 20여년간 태평성대를 이룬다. 수나라의 피륙은 당나라가 수나라 멸후 20여년간 사용할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이룬다. 뒤를 이은 수양제는 수백만 백성을 노역에 동원하여 대운하를 건설하고 다시 수백만의 노역을 동원..